십팔기의 형성과정

임진왜란과 <무예제보(武藝諸譜)>

『무예제보』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임금이 압록강까지 피난 가는 사태가 벌어지자 조선은 다시금 무비(武備)에 힘쓰게 된다.

당시 명(明)의 원병이 사용했던 척계광의 병법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효신서(紀效新書)》를 입수하고 명나라 장수들에게 기예를 배워 이를 조선군에게 훈련시켰다.

이를 위해 조선후기 최대의 군영으로 발전하는 훈련도감(訓練都監)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왜구를 물리친 후, 선조는 곤봉(棍棒) · 등패(藤牌) · 낭선 · 장창(長槍) · 당파 · 쌍수도(雙手刀)의 6가지 무예를 정리한 《무예제보》를 편찬하여 다시는 무예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후금(後金)의 위협과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

명(明)이 기울어지며 새로이 부상한 후금(後金)은 조선에게 새로운 위협의 대상이었다. 왜구와는 전혀 달리 주로 기마전술(騎馬戰術)을 사용하는 후금에 대비하기 위해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 · 협도곤(俠刀棍) · 구창(鉤槍) 등의 무예가 도입되었다.

그리하여 선조 다음에 등극한 광해군(光海君)은 위의 기예들과 《무예제보》의 편찬과정에서 빠진 권법(拳法) · 왜검(倭劍) 을 추가하여 《무예제보번역속집》을 편찬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이 인조반정을 통해 강제로 퇴위된 후로 이 책은 조선의 공식 무예서로 전해지지 못하였다.

병자호란 그리고 사도세자의 <무예신보(武藝新譜)>

드디어 명(明)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한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조선에 본격적인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유연하게 대처하던 광해군과는 달리 인조(仁祖)는 명분론을 앞세워 청나라에 정면으로 대항하다 결국 1636년 병자호란을 맞아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였다.

이러한 치욕을 씻기 위해 효종은 북벌(北伐)을 강조하여 다시금 무비(武備)에 힘을 쏟았다.

비록 북벌은 실행되지 못하였으나 계속되는 청나라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은 다양한 무기의 개발과 무예의 확립에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를 위해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우리의 무예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무예까지 우수한 것들을 모두 수합하여 다듬어나갔다.

그러한 노력으로 숙종(肅宗) 대에 이르기까지 죽장창(竹長槍) · 기창(旗槍) · 예도(銳刀) · 본국검(本國劍) · 왜검(倭劍) · 교전(交戰) · 월도(月刀) · 협도(俠刀) · 쌍검(雙劍) · 제독검(提督劍) · 권법(拳法) · 편곤(鞭棍) 등의 12가지의 다양한 기예가 점차 추가되어 갔다.

또한 청나라의 기병에 대항하기 위해 장창, 월도, 쌍검, 편곤 의 말을 타고 사용하는 기예도 정리되었다.

영조(英祖) 대에 왕세자로서 대리청정을 한 사도세자(思悼世子)는 이러한 무예들이 훈련도감 · 어영청 · 금위영 등의 군영에서 서로 다르게 훈련하던 것을 통일하고자 《무예제보》의 6기에 앞서 말한 12기와 기창(騎槍) · 마상월도 · 마상쌍검 · 마상편곤을 묶어 《무예신보》를 편찬하였다.

이로부터 십팔기(十八技)라는 명칭이 탄생하였다.

십팔기의 확립에는 조선 무예의 표준, 즉 국기(國技)를 세운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당시 각 정파별로 장악하고 있던 5군영의 기예를 통일시키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군사훈련이 가능해졌다.

여기에는 일원적인 병권을 장악하려고 한 사도세자의 의지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정조와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사도세자가 노론의 견제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자 그의 아들인 정조(正祖)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비운에 죽어간 아버지 사도세자를 복권(復權) 시키고 그 뜻을 이어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사도세자가 《무예신보》를 편찬한 업적을 이어 여기에 '격구(擊毬)'와 '마상재(馬上才)'를 추가하고, 십팔기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집대성하여 교본으로 편찬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무예도보통지》이다.

정조 당시 최대의 군영이었던 장용영(壯勇營)에 '십팔기군(十八技軍)'이라는 제도를 두어 군사들의 무예수련을 직접 독려했을 만큼 십팔기 확립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던 정조에 의해 십팔기는 국기(國技)로서 그 위치가 확고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