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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과 미국의 힘,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8-31 15:00     조회 : 5267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교회를 가톨릭의 모든 부패로부터 ´정화´하고자 했던 성공회 교회의 이단자들, 즉 일단의 영국 청교도 무리들은 왕정의 위협을 피해 1620년 9월 16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새로운 예루살렘인 아메리카 신천지를 향해 떠난다. 이들 1백31명은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케이프코트(지금의 매사추세츠 지역)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 신천지에 발을 내딛기 전 정치적 단결을 위해 하나의 문서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메이플라워 서약이다. 이 서약을 통해서 그들은 모든 것을 함께 결정하고, 이후 만들게 되는 정치적 기구의 법을 준수할 것을 맹세하였다. 미국 정신은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서부를 개척해 나가면서 프런티어 정신을 만들어 냈다.

미국인들은 정치인들의 공적, 그리고 사적인 도덕성을 매우 중시한다. 무분별한 사적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신임을 잃은 후보자나 고위공직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1965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반문화와 사회적 반항의 물결에 대항하여, 미국 남부 지역의 여러 목사들은 ´침묵하는 다수´인 백인 그리스도교도를 우파 공화당을 지지하는 정치 세력으로 규합하게 된다.

이렇게 생겨난 보수적 종교 세력은 낙태, 공공 도덕, 학교에서의 기도 등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는 이 도덕성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순례자들로부터 내려오는 청교도적 전통인 것이다.

프런티어(미국 서부의 국경)란 역사적인 개념으로 비약되어 개인주의, 진취적인 기상, 평등, 사회적 혼합, 개척자의 삶을 통한 새로운 인간의 창조와 같은 미국의 정치적 정신적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좀 더 쉽게 말해, 프런티어 정신은 서부 개척 정신이며, 총을 앞세운 정복 정신이자 융합과 팽창의 정신이다. 또한 단순하고도 실용주의적인 보통 사람들의 철학이기도 하다.

광활한 서부 개척에 나선 이들은 누구도 의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 혹은 자기 집단이 정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속박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스스로의 판단과 총을 앞세워 서부로 서부로 험난한 정복의 길을 나섰던 것이다. 서부의 자원은 무궁무진했다. 그렇지만 그 자원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을 진정한 재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피와 땀이 필요했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개인주의적이고 창의적인 미국인의 전형이 만들어졌다. 용기와 끈기, 열정과 투지, 적응력과 기술에 대한 믿음, 노동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적 미덕, 자비와 이윤 추구가 그것들이다.

이러한 바탕에는 청교도의 윤리(절약. 검소. 신의. 선택)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은 항상 새로운 프런티어를 발견해 내고, 그것을 정복함으로써 발전해 나가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곧 ´뉴프런티어 정신´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신대륙에 건너온 이주민들이 정착하여 살아가면서 늘 지니고 있는 적극적인 삶의 원칙이다. 미국은 기아를 피해 온 사람이건 어려운 생존 조건을 벗어나고자 온 사람이건 간에 그곳에 온 모든 이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약속했고, 지금도 그것을 약속하고 있는 땅이다. 일단 뉴욕 앞바다에 있는 엘리스 섬(이민 사무국이 있다)에 도착하면, 모든 이민자들은 열린 사회에서 맨주먹으로 성공하여 중산층에 이른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종교적 . 정치적 자유의 약속이기도 하다.

19세기말에 이르러 이제 더 이상 개척할 서부가 없게 되었을 때, 미국은 산업 국가가 되었다. 석유의 록펠러, 철강의 앤드루 카네기, 철도의 조지 폴먼 등, 이들 사업가들은 무자비하고 거침없이 경쟁 규칙을 어겨 가면서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았다. 이 부자들은 노동력의 착취와 부패에도 불구하고 거의 조작된 그들의 자서전 등에 의하여 뉴프런티어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다.

이들이 만든 신화는 영국의 허버트 스펜서와 미국의 윌리엄 섬너가 다윈의 ´종의 기원´을 모방해서 만든 ´사회적 다윈주의´ 이론을 통해 정당화된다. 그것은 한 사회에서 어떤 개인이나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최강자의 법이라는 이론이다. 일종의 자연의 법칙처럼 제시되는 이 이론은 부자들에게 그가 가진 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점점 확대되는 빈곤에 대해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었다.

성공한 사람은 그럴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며,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강자에 승복하듯 부자를 존경하게 만든 것이다. 더불어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도 강요하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번영의 비참》에서 “패권을 쥔 미국은 사람들의 정신을 빌려 만들어 그 자신을 경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그곳에서는 민주주의가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되고 있으며, 각자의 가슴에 창의력과 역동성, 때로는 숭고하기까지 한 위대함이 발견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것을 단순히 천민들의 기분 전환, 카우보이의 원초적인 오락쯤으로 깎아내린다면, 그건 느긋한 심정으로 우리 자신의 탁월성에 대해 안심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런 광휘를 깎아내리고, 투쟁과 폭력과 어리석음의 낙인을 찍어 이 문명을 우스꽝스런 무엇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한들 우리로선 덕볼 게 하나도 없는데도 말이다.

이성은 우리더러 반미가 되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힘을 저지하려면 스스로 힘을 갖추어야 한다. 이 힘이 상대의 힘에서 영감을 받고 공동의 가치에 기반을 둔다면 상대와 균형을 이룰 것이다. 미국과 경쟁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미국을 닮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런 미국식 모델을 따르는 한국에서의 자본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논리적 근거(혹은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의 부자는 존경받지 못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기업)의 형식만 받아들였지 그 정신(윤리. 철학)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업가 정신은 곧 무(武)의 정신과 상통한다. 무덕(武德)은 더 이상 무인(武人)들만의 도덕규범이 아니다.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새로운 미국의 보편주의는 정복적인 제국주의처럼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 정치적 . 경제적 규칙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 지금의 미국이 지니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는, 제국주의 체계가 아니라 실상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제어되지 않는 성장 시스템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미국이, 결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제국주의 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발전하고 영광을 누리고 있는 진정한 이유는 점점 미국 내부의 성장 때문이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과 다문화주의가 그 모태인 외부의 재능 . 두뇌 . 자본을 끌어들이는 힘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세계의 유일한 강대국이기 때문에 역사상 지금의 미국에 비교할 만한 예는 고대 로마제국밖에 없다. 바야흐로 ´모든 길은 미국으로´ 인 것이다.

다만 오늘의 미국은 힘을 지나치게 숭상하다 보니 예(禮)를 소홀히 하여 다른 나라로부터 빈축을 사는 일이 잦다. 심지어 실컷 도와주고도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 오히려 배척당하기도 한다. 또한 ´뭐든 가능하다´는 약속을 기초로 한 야심은, 실지로 미국이 더없이 혐오스런 무엇임과 동시에 크나큰 유혹으로 다가오게 한다. 미국은 우리 모두의 신경을 거스르는 동시에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흔히 서부 정신을 카우보이 정신, 혹은 총잡이 정신이라고 한다. 개척시대는 법이 골고루 영향을 미치지 못해 총(힘)이 곧 법인 시대였다. 그래서 그들은 총의 정신을 숭상한다. 총기 소지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끊임없이 총기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어린 학생이 학교에서 교사와 다른 아이들을 난사하는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나곤 하더니 기어이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총기 소지를 금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도검류 . 총기류 단속을 하는 문치(文治)의 나라 한국의 시각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래 미국이란 나라가 무법천지인데다 사람들이 난폭해서 자위 수단으로 총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모양이라거나, 부시 대통령이 총기 제조업자들로부터 후원을 많이 받아서 고의적으로 묵인하고 있을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짐작은 미국을 전혀 모르고서 하는 소리이다. 미국은 헌법을 함부로 바꾸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인에게서 총을 빼앗는 일은 미국 정신을 빼앗는 거나 다름없다. 총은 곧 서부 정신(프런티어 정신)의 상징이자 그들의 길지 않은 역사이며 문화다. 물론 그 뿌리는 신사도, 즉 유럽의 기사도에 있다. 힘과 정의와 개척 정신을 상징한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엔 힘이 넘치고, 정의와 모험 . 희생이 빠질 수 없는 소재가 된 것이다. ´람보´는 미국으로 건너온 ´쾌걸 조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총 없는 ´람보´는 ´람보´가 아니다. 진정한 미국의 힘은 총에서 나온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