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청와대를 옮기자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8-31 14:57     조회 : 5391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건설한 궁궐이 경복궁이다. 그렇지만 역대 왕들이 이곳에 거주한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건국초기 세종, 문종, 단종만 이곳에 거주하였었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경복궁을 기피하여 창덕궁에 기거하였다. 이후 경복궁은 임금이 살지 않는 빈궁으로 남아 있다가, 여러 차례의 전란과 화재로 인해 폐궁이 되다시피 방치되었었다. 그러다가 조선 말 고종(1867) 때 강력한 왕권 회복을 꿈꾸던 흥선대원군에 의해 대대적으로 중건되었으나, 오히려 왕조의 명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한양 천도와 관련하여 풍수지리에 얽힌 전설이 많이 남아있는데, 그중 5백년 왕조사에서 장자에 의한 왕위 승계가 드물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권력을 두고 치열한 투쟁을 벌였었다는 뜻이 되겠지만,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필자가 보기에(결과론적 짜 맞추기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그 원인을 궁궐터와 연관 지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천하의 명산인 북한산이 남으로 뻗어내려 오다가 경복궁 뒷산인 북악산에서 불끈 솟았다가 뚝하고 갑자기 멈춰 선다. 나무로 치면 뻗어 올라가던 꼭대기 본줄기(적통)가 뚝 부러져버리고 좌우 곁가지(인왕산, 낙산, 창덕궁 뒷산 등) 들이 힘차고 무성하게 자라난 형국이다. 거기에다 바위산인 북악산은 어떤가? 영락없이 등을 비스듬히 옆으로 돌리고 엉덩짝을 내미는 꼴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장자승계가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을까? 풍수지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북악산을 광화문 쪽에서 바라보면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 붙어 의지하기가 여간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덕(德)으로 풀이하자면 배덕(背德)과 배척(背脊)의 터라 할 수 있겠다. 손의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 모양을 닮았는데 흡사 주먹을 내미는 꼴이다. 품는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모양새 때문에 건국 초기 일부 학자들이 경복궁을 지을 때 인왕산을 뒤로 업고 동향으로 앉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정히 남향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더라면 북악산 그늘을 벗어나서 지금의 광화문 네거리까지 내다지었으면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다.

일제시대 7대 총독인 미나미 지로(南次郞, 1936-41년 재임)는 이 경복궁 뒤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다 자신의 관저를 옮겨지었는데, 이것이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사용되다가 윤보선 대통령이 이를 청와대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풍수지리를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치부한다 해도 어쨌든 현재의 청와대 자리는 사람이 살기에 왠지 내키지 않는 찜찜한 터이다. 그곳에 들어간 역대 대통령치고 뒤끝이 무사했던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도 그렇고, 정권의 승계도 조선 왕조처럼 순탄치가 못했다는 점이 그렇다. 이런 것을 두고 요샛말로 말로 징크스라고 하는가?

어쩌다 청와대 앞을 지나다가 느끼는 감정은 그다지 개운치 않다. 경계 때문에 근처 분위기가 살벌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역사의 어두운 기억 때문만도 아니다. 금방이라도 바위 몇 개가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도도한 뒷산이 그렇고, 언덕 위에 올라 앉아 아래 동네를 내려다보며 감시하는 듯한 집터도 그렇다.

구중궁궐 뒤편 산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양새가 영판 산적들 소굴 같다. 동쪽 서쪽 좁은 출입문은 약은 너구리 굴 같다. 흡사 조폭이나 마피아 두목이 좋아할 것 같은 집이다.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그곳 소굴에서는 항상 뭔가 엉큼한 음모를 꾸미는 것 같고, 뭔지 모를 의뭉스런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것 같은 곳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나 들락거리는 사람 모두가 그다지 선량한 사람 같지가 않다.

풍수지리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산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다. 그곳은 신의 터이다. 산신각이나 국사당 같은 건물을 지어 귀신을 모시는 자리이다. 그만큼 기가 강하게 뭉쳐있는 곳이다. 옛날 마을 산 밑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성황당이 세워져 있었다. 근대를 맞으면서 그런 주인 없는 터에 성당이나 교회가 들어섰던 것이다. 서울의 오래된 성당이 세워진 곳 대부분은 원래 성황당 터였다. 청와대 터가 처음부터 왕궁의 뒷산이 아니었더라면 진적에 그런 신당이 들어섰을 것이다.

이제 청와대를 옮겼으면 좋겠다. 좁은 산 밑을 벗어나 사통팔달하는 넓은 평지로 당당하게 나왔으면 싶다. 식민시대, 냉전, 독재정권, 권력찬탈, 음모와 배신… 어둡고 칙칙했던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광명정대하게 나라를 이끌겠다는(다스리는 것이 아닌) 각오를 하는 뜻에서 말이다. 대한민국의 현재의 위상이 아닌 오십년 아니, 오백년 뒤의 위상에 걸맞게, 그리하여 우리 후손들의 가슴이 절로 세계를 향해 활짝 펴지게 해주는 그런 멋진 대통령궁을 지었으면 싶다.

덕도 없고 탈도 없는 수십 혹은 수백만평의 평지에 자리해서, 주변에 서울 시민은 물론 세계인들이 찾아도 협소하지 않은 공원과 국가행사는 물론 국제적인 큰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대광장도 함께 만들었으면 싶다. 다음 세대를 위해 둘레에 빈터도 넉넉하게 남겨놓고 말이다.

지금의 청와대는 역사박물관과 역대 대통령기념관으로 사용하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궁중유물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도 그곳으로 함께 옮겨서 경복궁을 제 모습대로 복원하면,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역사문화관광지가 될 것이다. 그러면 주변 동네는 자연스레 글자그대로 문화관광촌으로 가꿔질 것이다. 그리고 뒷산을 시민들에게 개방해서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 해 주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만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자란다면 조금 무리해도 괜찮지 않을까. 장관 바뀔 때마다 신도시 하나씩 건설되는데, 대통령이 그만큼 바뀌었으면 청와대를 옮길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서울에는 넓은 땅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김포공항 가는 길에 전철역 하나가 개통 이후 지금까지도 손님을 받지 못하고, 홀로 들판에 서서 외롭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역’으로 불러주면 아주 좋아할 것 같다.
사탕뿌리기 공약보다 이런 공약이 후세에까지 그 이름을 남기지 않겠는가?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