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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전선언, 영구분단으로 가는길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8-31 14:56     조회 : 4816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대개의 권력자, 특히 최고 권력자들은 원천적으로 독재자일 수밖에 없다. 단지 그 강도에 있어서 국민들이 감내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정부 수립과 더불어 군사 정권이 들어서고, 독재 정치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혼란기에는 이런저런 사정 다 헤아려 가며 나라 살림을 꾸려나갈 수가 없다. 무엇보다 먼저 구심점이 되는 강력한 정권이 들어서야 잘됐던 못됐던 다음 일을 진척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남한 진주와 함께 당연히 미국과 말이 통하는 이승만을 책임자로 한 꼭두각시 정권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는(만들어 가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불행하게도 이승만이 항일 투쟁 시기 김구 선생 이상으로 큰 역할을 하였거나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더라면, 그리하여 당연지사로 알고 환영하였더라면, 한국이 겪어야 할 온갖 불행들의 일부는 잉태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잘못 끼워진 첫 단추였던 셈이다.

이승만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인(武人)이 아니다. 그는 골수 선비이다. 미국의 신탁 통치 덕분에 문인(文人)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왕 독재 정권이 들어서려면 무인(武人) 정권이 들어섰어야 했다. 고집은 세지만 문약(文弱)할 수밖에 없는 늙은 선비를 남쪽의 지도자로 삼기로 결정한 이상 이제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방해가 되는 걸림돌, 즉 그보다 잘나고 당당한 인물을 제거해 주어야 했다.

흔히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로 이승만을 지목하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암살 후 유야무야 묵인은 했지만, 결코 그가 직접 암살을 지시했거나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는 고집스런 선비다. 미국에서 독립 운동을 하였다지만, 그곳에서의 독립 운동은 전투적인 일이 아니다. 외교 업무, 즉 행정적이고 사무적인 일들뿐이다. 그는 직접 자기 손으로 적을 쏘아 죽여 본 일도 없고, 전투에 직접 참가해 본 일도 없다.

살생이나 살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선비는 결코 못한다. 직접도 못할 뿐더러 누굴 죽이라고도 못한다. 당연히 미국의 사주를 받았거나, 충성파들이 알아서 벌인 걸림돌 제거였을 것이다. 만약 이승만이 무인(武人)이었고, 또 사전에 암살을 지시했더라면 뒤처리를 그렇듯 우유부단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두희와 그 일당 몇을 골라 곧바로 빨간 보자기를 씌워 처형시켰어야 했다. 이젠 모두 다 죽어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버렸으니 그저 짐작으로 사실을 꿰맞추는 수밖에 없겠지만, 어쨌거나 이 사건은 이승만 정권이 어설프고도 희귀한 문인(文人) 독재 정권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단초가 되었다.

이에 비해 북쪽에는 무인(武人)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족의 재앙은 필연적이 된다. 이승만이 차라리 독재다운 독재자, 즉 무력을 선호하는 군인(무인) 출신의 독재자였다면 당연히 그는 먼저 군사력을 키우는 데 최우선적으로 힘을 쏟았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가 전문인 그는, 구한말 위정자들이 그러하였듯이 외세(미국)를 잘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큰소리치다가 결국은 남침을 당하고 만다.

직접 전투를 이끌며 항일 투쟁해 온 김일성이 볼 적에 이승만은 그저 늙은 고집쟁이 선비에 지나지 않았다. 싸운다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것이다. 만약 김구 선생이나 다른 독립투사가 남한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김일성은 남침할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북침을 염려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6.25는 이승만에게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할 터이다. 비록 간접적인 것이긴 하지만.

문인(文人)이 지도자가 되면 설령 안으로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밖에서는 만만히 여겨 여차하면 쳐들어가 점령하고자 한다. 반면 무인(武人)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면, 백성들을 잘살게는 못해 준다 해도 다른 나라가 함부로 침범하지는 못한다. 나라 살림은 엉망이지만 싸움은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쿠바나 북한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다.

권력의 핵심은 무력이고, 무력의 한가운데에 권력이 있다. 목적으로서의 무력은 전체주의를 부르고, 도구로서의 무력은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도전으로서의 무력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무력은 군사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경제력도 무력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군사력이 뒷받침하지 않는 경제력은 결코 무력이 되지 못한다.

요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통일에 앞장서겠다고 아우성이다. 통일의 유관순, 통일의 안중근, 통일의 김구가 되고 싶은 것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통일투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이제 낡아빠진 독립투사, 민주투사, 노동투사, 환경투사는 저리 비켜라? 백두대간 산등성이에서 벌거벗고 통일염원 달리기를 하고, 누가 더 철책에 가까이 가서 통일 푸닥거리를 하는가가 경쟁이다.

통일목사, 통일스님, 통일신부, 통일무당, 통일작가, 통일춤꾼, 통일음악가…… 바야흐로 통일산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게 생겼다. 아무렴 좋고말고! 그저 좋은 게 좋지! 그렇게 오두방정을 떠는데 왜 아니 통일되겠나! 문무(文武)의 성질도 모르면서 통일하겠다고? 통일은 힘으로 하는 것이지, 기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알량한 선심이나 한류 바람이 통일시켜 주기를 바라는가?

무력이 없는 민주 평화 통일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독일은 스스로 원해서 동서로 쪼개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반도는 강대국이 개입하기 이전에 분명 스스로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념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문(文)의 갈래이기 때문이다. 전 세기의 장벽이 천연기념물처럼 한반도에 남아있다.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이 민족을 하나로 묶는 끈이 필요하다. 그저 만만한 단일 민족이라는 연(緣)이니 정(情)의 끈이 아닌 공통의 정서, 공통의 가치를 지닌 민족의 덕(德)을 만들어 내야 한다. 힘(力)과 신(信)을 바탕으로 한 흔들리지 않을 확고한 그런 덕(德)을 말이다.

천방지축 달려온 이번 정권이 말년에 한 건 올리려고 애쓰는 바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나무라는 것도 아니나, 판문점 철조망에 붙어서 속곳 벗어 들고 나불대는 꼴은 영 아니다. 쥐새끼같이 미국과 북한 안면 살피고 있다가 잽싸게 나서 종전선언 해주겠단다. 이전에 부시가 공언한 걸 가로채겠다고 나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김정일 손을 한번 잡아보고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통일되면 다 자기 공(功)으로 돌릴 수 있을 테니까.

정상회담 대신 종전선언이라도? 제발 꿈 좀 깨길 바란다. 김정일이 바보가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결코 통일이 아니다. 체재보장, 즉 독립국가로 인정받는 것이다. 핵실험 하나로 이미 영구분단(종전선언)을 미국으로부터 보장받았다. 남한이야 헛기침만 해도 알아서 조공 바치는데 뭐가 아쉬워 ´가는 세월´을 만나주겠는가. 그는 이미 남한을 손가락 하나로 조정할 수 있는 자신의 꼭두각시로 보고 있다.

지루한 군사 정권에 대한 염증 때문에 문민 통치를 주창하는 정권이 계속되고 있지만, 결코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니다. 무력을 마치 통일의 걸림돌로 여기고, 감상적인 국민 염원과 알량한 외교력만 믿고 강대국 사이에서 이쪽저쪽 눈치만 보다가는 자칫 또 나라를 망치게 될 것이다. 하루빨리 문무(文武)의 균형 잡힌 정권을 세워야 한다.

"종전선언, 아무나 함부로 하는 것 아니다. 먼저 국민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