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염치(廉恥)를 알아라!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8-13 16:07     조회 : 5324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찾아보기 힘든 단어가 바로 ‘부끄러움(恥)’이 아닌가 싶다. 지난 세기 동안 식민지배, 동족상쟁,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때로는 구차스럽게 살아와서 그런지 낯가죽이 많이 두꺼워졌나 보다. 다들 저 잘난 맛에 살고, 저 잘나지 못해 안달을 하는 세상에 이런 말을 들먹이다가 시쳇말로 또 쪼다 소리를 듣기 딱 알맞다.

부끄러운 짓을 부끄럽지 않게 해치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몇 년 전 노대통령의 공개적인 망신주기에 한강 투신한 그 분이 부끄러움을 아는 마지막 사람이었나 보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보다 더 부끄러운 희한한 대통령을 보고 웃었을 텐데.

조선시대 민화 가운데 문자도(文字圖)라는 것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일명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라고 하는 팔자도(八字圖)이다.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는 조선시대의 감계적(鑑戒的) 사상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서, 유교적 윤리 강령을 여덟 글자로 압축해 놓았다. 《논어(論語)》에서 유래한 ‘효(孝)’‘제(悌)’‘충(忠)’‘신(信)’과 《관자(官子)》26)에서 따온 ‘예(禮)’‘의(義)’‘염(廉)’‘치(恥)’란 여덟 자를 소재로 각각의 한자 자획 속에 해당 글자의 의미와 관련된 고사나 설화 내용을 대표하는 상징물을 그려 넣은 것이다.

이처럼 염(廉)과 치(恥), 즉 염치(廉恥)를 선비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덕목으로 꼽았다. 청렴하여 체면을 차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어찌 선비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기본 심성일 것이다. 여기서 치(恥)란 ‘부끄럽다’는 것이 아니라 욕됨을 알고 ‘부끄러움을 안다’는 의미이다. 또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여 부끄러울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 속에는 “네 분수를 알라” 그리고 “부끄러움을 알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이 염치(廉恥)를 모르고, 혹은 소홀히 하다가 망신당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감방을 당당하게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수많은 정치인들과 그 주변에 붙어 기생하는 온갖 잡충들. 하기야, 어쨌거나 한 나라 대통령까지 지낸 인물들이 자식들 앞세워 가며 감방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드나들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판이니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그야말로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세상이다. 웬만한 부정부패는 하루치 1단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장관 벼슬에 올랐다가 며칠 만에 개망신당해 쫓겨나는 일이 이젠 그저 흔해빠진 뉴스거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선(善)을 빙자한, 다시 말해 인(仁)을 베푼다는 핑계로 부끄러운 일을 서슴지 않는 가증스런 일들이다. 종교를 빙자해서, 혹은 자선 사업을 한다며 ´OO원´을 차려 놓고 온갖 못된 짓해서 돈 버는 일이 이젠 아예 새로운 유망 직종으로 자리잡았다. 그들에겐 종교조차도 야바위 상품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차마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곤 한다. 러시아의 유명 음대 가짜 박사들이 모여 연합회를 만들고 연주회까지 열었다고 한다. 학생들 앞에서 자위행위 시범을 보이는 용감한(?) 교사, 성추행한 교사를 위해 탄원서를 꾸미는 동료교사들. “예(禮)가 있는 자 서로 위하다 죽고, 예(禮)가 없는 자도 역시 서로 위하다 죽는다”고 했다. 한마디로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다. 마주보며 눈꺼풀을 깜박거리며 눈알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물론 이 땅에서 염치를 모르기는 정치인들이 단연 으뜸이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국회의원 배지 달고 과거사 청산을 부르짖는가 하면, 성추행을 해서 망신을 당하고도 미적거리는 국회의원, 경건해야 할 국경일에 독립지사묘에 참배하러 가기는커녕 업자들과 골프 치다 망신당해 쫓겨난 총리, 거기에다 똥색도 동색(同色)이라고 우기며 변명을 거드는 주변머리 정치인 등등. 왕은 무치(無恥)라더니, 권(權)자를 잡으려면 먼저 무치가 되어야 하는 모양이다. 뻔뻔함이 도처에서 묻어나고 있다.

옛말에 “군자는 덕을 행함으로써 자기 몸을 온전히 하고, 소인은 탐욕을 행함으로써 자기 몸을 망친다”고 했다. 인(仁)을 입에 담기 전에 먼저 치(恥)를 생각하였어야 했다. 염치(廉恥)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운다’는 말은 ‘배우고 행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덕행(德行)’이라 하고, ‘선행(善行)’이라 하는 것이다. 저도 이제 남만큼 벌었으니 이제 그럴듯한 감투 하나 얻어 체면 좀 세우고 싶었던 모양인데, 아쉽게도 항상 붙어다니는 염(廉)과 치(恥)를 몰랐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라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간혹 크게 부끄러운 실수를 해서 평생을 두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지도층 인사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일 때가 많다. 그리고 그것은 낙인과도 같아 결코 지워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잘되면 잘될수록,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흉터는 더욱 크고 돋보이게 된다. 본인이야 어떻게 해서든 잊고 싶고 감추고 싶겠지만, 그럴수록 잘되는 사람의 흠일랑은 한껏 꼬집고 싶어지는 것이 세상인심인 것이다. 누구나가 존경해 마지않는 고(故) 이병철 회장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그 좋은 예가 된다.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분에 대한 글을 쓸라치면 반드시 한 줄 덧붙이는 이야기이다. 그게 글쓰기의 습관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여러 사람들이 치(恥)를 몰라서 그러하였을 것이라고는 하였지만 정말 그럴까? 만약 그랬다면 그건 ‘실수’이지, 부끄러운 일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하기야 ‘몰랐을 것’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욕이 될지도 모르겠다. 분명 부끄러운 일인 줄 알면서도 저질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탄받고,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알고서도 그랬다면 실수가 아니고 ‘악행(惡行)’을 저지른 것이다. 마땅히 벌 받고 쫓겨나야 하는 것이다.

“남이 하니 따라서 했다”“나도 모르게 마누라가 저지른 일이다”“오래된 관행이다” 등등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지워지는 일이 아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없었던 것처럼 행세하는 모양새가 영 어색하고 안쓰럽기 짝이 없다. 기껏해야 낯가죽이 두껍다는 공치사밖에 돌아갈 것이 없는데도. 그렇지만 남들이 설령 용서한다 해도 과연 스스로의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무사라면 자결을 해야 할 것이고, 선비라면 조용히 숨어서 없는 듯이 사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면 그 짐을 덜기 위해 평생토록 선행을 쌓으며 살아가든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후, 함께 숨진 경호실장 차지철의 치부를 들춰내기 위해 기관과 매스컴이 동원돼 그의 모친까지 찝쩍거리다가 “내 자식이 설사 나쁜 놈일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은 없다!”는 호통만 듣고 쫓겨났다. 물론 이후 그의 모친 말대로 별다른 꼬투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선거철이 되니 온갖 파렴치한 인물들이 다 나서서, 아직 구린내도 다 가시지 않은 어색한 웃음을 헤프게 날리고 있어 보는 이를 역겹게 하고 있다. 이판사판, 아니 영락없는 개판이다. 진정한 무인은 생리적으로 부끄러운 일을 싫어한다. 병가오덕(兵家五德)에 엄(嚴)이 있다. 무인에게 ‘부끄러움’은 곧 실명(失名)이자 실명(失命)이다. 치(恥)를 알아야 욕됨을 피하고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다. 진정한 용(勇)은 그렇게 나온다.

위대한(?) 지도자에 지쳤다. 지도자에 바라는 국민의 눈높이도 이제는 좀 낮추고, 거품열을 식히는 지혜도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바라건대, 거창한 국토개발(수입보다 유지비가 더 많이 들 수도 있는)이 아니어도, 두 자리 수 경제성장(정부가 간섭만 안하면 저절로 달성될 수도 있는)이 아니어도, 수 십 만개의 일자리(그래봐야 대부분 외국인이 차지하겠지만) 창출이 아니어도 좋다. 이젠 개혁을 부르짖는 혁명가도 아니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경제대통령도 아닌, 그저 부끄럽지 않은, 상식이 통하는 보통의 나라로 이끌어 줄 정직한 관리자형 지도자를 뽑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옛글에 “거짓에 힘쓰면 길게 갈 수 없고, 헛된 것을 좋아하면 오래갈 수 없다”고 하였다. “몸은 엄중하게, 마음은 여유롭게, 표정은 온화하게, 기질은 부드럽게 해야 한다. 말은 간략하고 여유 있게, 마음은 공명정대하게, 도량은 넓고 크게, 의지는 과감하고 굳게, 일을 계획할 때는 주도면밀하게, 그리고 일을 할 때는 타당해야 한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