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강한 나라, 강한 지도자가 되려면?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8-13 16:06     조회 : 4905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 신성대(辛成大)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대한십팔기협회부회장,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 우리나라 전통무예 붐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십팔기와 양생기공을 지도 보급중. 저서로는《무덕》이 있음 
서해교전 5년이 지나서야 전쟁기념관 전몰군경 명단에 새겨졌다고 한다. 해군이 그동안 높은 곳 눈치 보다가 지난 5월에야 슬그머니 명단을 넘겨주었다 한다. 비겁하기 짝이 없다. 이게 우리 군의 현주소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2002년 서해를 지키던 해군 참수리 357정이 북한 경비정의 도발로 침몰하고 이들의 붉은 피로 서해 바다를 물들일 때,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붉은 옷을 입고 축구공 하나에 광분하고 있었다. 잔치집 분위기 망칠까봐, 죽거나 말거나 애써 모른 척 하며 "떼-한, 민, 국!”을 외쳐대면서 두고두고 4강의 여운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유가족들의 섭섭함은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고, 그런 이 나라가 죽기보다 싫어 훈장을 반납하고 아이들 데리고 이민 간 가족도 있다. 얼마나 한스러웠으면 남편이 목숨 걸고 지킨 조국을 등지고 이 나라로부터 멀리, 한국사람 안 보이는 먼 곳으로 가버렸겠는가. 저승에서 이 꼴 지켜보는 영령들, 오늘도 피를 토하며 황천강을 물들이고 있을 것이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도대체 어쩌다가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나? 왜 맨날 이 꼴인가? 먹고 살기 바빠서? 축구 4강이 국력 4강이라도 되는가? 월드컵 분위기 깰까봐? 남북화해를 저해할까봐? 노벨평화상에 티끌 묻을까봐? 이기지도 못한 전투라서? 보상비가 아까워서? 북한이 무서워서? 동족끼리 싸우다 죽었으니 억울하면 북한에 가서 따져라? 뭐, 그만 일로? 모르긴 몰라도 아마 모두 다일 것이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주권이 군주의 것이든 국민의 것이든 전쟁을 하는 것은 하나의 법칙이다. 정치권력의 행사는 내부적으로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고, 외부적으로는 전쟁에 맞서는 것이므로 시민의 평화와 전쟁은 같은 것에서 유래한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군주가 시민에게 ´네가 죽는 것이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할 때 그는 죽어야만 한다. 그가 지금까지 안전하게 살았던 것은 오직 이 계약 조건하에서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주권은 힘(武力)과 법(文力) 모두를 말한다. 순수한 덕(德)이란 무엇인가를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까닭에서만 그만한 가치를 지닌다. 전쟁을 치르고 법을 준수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지워진 의무인 것이다. 진심으로 행동하지 않을 때 그것은 아주 비루하게 행동하는 것이고, 의무의 법칙을 모면할 온갖 교묘한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연예인들의 병역특례 비리가 또 불거지고 있다. 으레 일어나는 연례행사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조사를 안 해서 그렇지, 잘나고 많이 가진 자와 지도층(?) 자녀들 언제든지 조사하면 나올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일이라 국민들도 “자식, 재수 없게 걸렸군!”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게끔 면역이 되었다. 병역기피는 이제 더 이상 부끄러운 일도, 지탄받을 일도 아닌지 오래되었다.

조선시대의 선비 문화, 일제 강제 징병에 의한 헛된 죽음, 만주 들판에 뼈를 묻은 독립투사들, 6.25 동족상잔의 한 맺힌 죽음, 월남전 등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우리 민족의 뇌리에는 전쟁에서 ‘죽으면 저만 손해’라는 인식이 각인되어 있다. 그들의 죽음을 그저 ‘개죽음’으로 내버려두고서는 이런 비뚤어진 인식을 바로잡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자이툰부대 오중위 죽음은 자살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또 군 복무 중 사고로 부상을 당하거나, 병으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군부대 내에서 단순 사고나 갈등으로 인한 자살 또는 살해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때마다 군에서는 쉬쉬하며 황급히 사건을 얼버무리려는 습관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더 자주 발생할 것이다. 군대란 원래 그런 곳이다. 반드시 전시에만 희생이 생기는 곳이 아니다. 또 군대라서, 위험한 무기를 다루는 곳이라서 그런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 사는 곳에는 항상 그런 일이 일어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유치원에서도 이런 저런 원인의 황당한 사망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문제 학생이라 해서 군대에 안가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엔 초등학교 소방교육에 참관했던 어머니들도 참변을 당했다.

하물며 각양각색의 성격과 성장배경을 지닌 피 끓는 젊은이들을 한 울타리에 가둬놓고 장기간에 걸쳐 위험한 훈련과 똑같은 교육을 시키는데 사고가 안 난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걸 너무 나무라다보니 요즘 군은 훈련보다 안전관리에 더 치중하고, 사병들은 점점 더 나약해져 가고 있다. 물론 그런다고 사고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늘기만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용감한 군인보다 몸보신 잘하고 눈치 잘 보는 인물들이 별과 요직을 다 차지하고 있다.

전쟁에 이겨 공을 세워 오면 영웅이고, 지고 오면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다. 이런 잘못된 관념은 비단 군에서만 해당되지 않는다. 체육계나 학계, 기업 등에도 이런 문화가 배어들어 있다. 오직 성공만이 보상을 받을 뿐이다. 실패하면 그동안의 노력과 연구결과 모두 쓰레기통으로 보내버린다.

벌써 잊혀져가는 사건이지만, 미국 버지니아 총기사건 후 희생자를 위로하는 자리에 가해자인 조승희씨의 자리도 함께 만들어, 같은 학교 학생으로서 그 영혼을 위로 하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그걸 용서나 관용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그건 죽음에 대한 삶, 사자에 대한 생자의 편견 없는 예의이다. 그래서 삶이 더욱 소중해지고, 죽음은 한없이 경건해지는 것이다.

전시든 평화 시기든, 순직이든 병사든, 타살이든 자살이든, 공을 세운 영웅이든 패전한 포로든, 어떤 원인으로 죽었다해도 군인으로 죽는다는 것은 모두가 영광된 죽음이어야 한다. 전쟁없는 오늘 비록 허망하게 목숨을 버렸지만, 만약 전시였다면 그들은 어쩌면 영웅으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자살이라 해도, 그가 그때 군 복무 중이 아니었다면 다른 길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죽음을 절대 차별하거나 소홀하지 말고 지극정성으로 예우해주어야 한다.

의로운 죽음이든 피치 못한 죽음이든 모두가 역사의 물결을 온몸으로 껴안고 이 땅을 지켜낸, 이 땅을 살다간 그들의 아픔이자 우리의 상흔이다. 역사엔 부끄러움이 없다. 부끄러운 역사란 있을 수 없다. 단지 스스로가 부끄러울 뿐이다.

그리고 늦었다 말고 지금이라도 이민 간 서해교전 유족을 찾아가 그 맺힌 한을 풀어주고 남편과 아버지의 이름 밑에 꽃을 바치도록 배려해야 한다. 백 번을 다시 찾아가서라도 말이다. 그게 국가의 의무이다. 국가가 제 할 도리도 다하지 못하면서 국민에게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여담 하나 보태자면, 국립묘소에 가보면 일반 사병과 장성들의 묘를 크기와 구역으로 차별하고 있는데, 이는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대단히 잘못된 처사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허세와 허명에 대한 편견일 뿐이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소중한 것이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이다. 죽음에는 계급이 없다. 죽음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무명의 졸병들 사이에, 사고사한 병사들 사이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사병들과 나란히 누웠다고 체면 구겨지는 것이 아니다. 계급 따지지 말고, 공적 따지지 말고, 어떻게 죽었는지 따지지 말고, 평수 따지지 말고, 순서대로 안장해야 할 것이다. 죽음조차 남하고 비교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고 편협한 짓이다.

나라꼴을 바로 세우려면 무엇보다 먼저 지난 시절 경제 우선주의 시대에 만든 병역특례제도를 반드시 없애야 한다. 병역기피나 특례비리가 실력이나 능력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나라의 기강이 흐트러져 있다. 정히 특례를 주려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용사들의 자녀에게나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그들은 그 혜택(?)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건 가문을 부끄럽게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한 나라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이기 전에, 부끄럽지 않은 나라에 살고 싶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