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조선시대의 다양한 기록 속에 보이는 십팔기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7-07-25 14:49     조회 : 3012    
글쓴이 : 박금수(서울대 체육교육학과 박사과정)


십팔기는 조선시대의 국기(國技)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조선시대의 기록들은 그 수가 매우 많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것만을 추려 간단한 설명과 원문의 이미지를 실었다.

1. 『훈국총요(訓局摠要)』 「창설(刱設)」

훈국이란 조선후기 최대 군영이었던 훈련도감을 말한다. 『훈국총요』는 이 훈련도감의 제반사항을 정리한 책으로 고종(高宗)대에 출간되었다. 「창설」편은 훈련도감의 처음 창설되어 변화되는 과정을 요약한 것으로 아래부분은 훈련도감에서 연마하던 무예가 정립되어 십팔기라는 명칭이 정해졌음을 설명하고 있다.

"영조 기묘년에 소조께서 죽장창, 기창, 예도, 왜검, 교전, 월도, 협도, 쌍검, 제독검, 본국검, 권법, 편곤 등 12기를 증입할 것을 명하고 예전의 6기와 합하여 18기가 되었다. 십팔기의 명칭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2. 『훈국총요(訓局摠要)』 「군총(軍摠)」

『훈국총요』의 「군총」에서는 훈련도감을 구성하는 각 군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그 중 별기군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별기군(別技軍)은 마보군(馬步軍)과 대년군(待年軍) 중 나이가 어리고 건장한 자를 가려 뽑아 교관을 붙여 십팔기를 연마하는데 2월부터 9월까지는 비파정(琵琶亭)에서, 10월부터 정월까지는 하도감(下都監)에서 훈련한다."

별기군이란 훈련도감군 중에서도 무예가 가장 뛰어난 자들로 다른 업무는 거의 보지 않고 오로지 무예수련에만 전념하는 자들이었다. 또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들은 임금을 호위하는 무예청(武藝廳)이 될 수 있었다.





3. 『일성록(日省錄)』 1790년 4월4일

일성록은 정조대왕의 친필 일기로 정조 개인의 생활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정조년간에 펼쳐진 여러 정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자료이다. 그중 정조 14년인 1790년 4월 4일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장용영(壯勇營)의 십팔기군(十八技軍)에게 매 초(哨)마다 15명씩 돌아가며 기예를 연마하도록 명하였다."

장용영은 정조의 친위부대로 정조시대에는 훈련도감과 맞먹는 규모를 갖고 있었다. 이를 통해 장용영에 '십팔기군'이라는 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 『일성록(日省錄)』 1793년 12월 26일

앞에서 살펴본 일성록의 중 정조 17년의 기록 중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보인다.

장용영의 십팔기교관(十八技敎官) 장평을 변장(邊將) "에 제수하도록 명하였다."

장용영의 십팔기교관을 맡은 장평이라는 장수가 여러 해 동안 노력하여 군사들의 무예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이 장수를 변장(邊將)에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5.『장용영대절목(壯勇營大節目)』「외영류방(外營留防)」

『장용영대절목』은 장용영의 운영세칙을 정리한 책으로 장용영의 운영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 중에는 「외영류방」편이 있는데, 외영이란 수원 화성에 있는 장용영의 외영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외영류방」편은 장용영의 모든 군사가 수원 화성으로 이동하여 훈련을 하는 방식을 설명한 것이다. 이 중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초일(初日)에는 시진(布陣 : 진법을 펼치는 것)을 연습하고 중일(中日)에는 시진과 기예(技藝)[십팔기]를, 종일(終日)에는 휴식하며 번을 선다."

즉 첫째 날에는 진법을 연습하고 둘째 날에는 기예를 수련하는데 여기서 기예는 바로 십팔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석을 달아 명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