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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팔기냐? 24기냐? - 4
  글쓴이 : 박청정     날짜 : 08-03-05 19:18     조회 : 8112    

《무예도보통지》 편서(編書)의 기호글자로 증명하는 십팔기(十八技) 명칭

전통의 무예는 수많은 세기를 지나면서 인간완성이나 자기완성을 위한 수행의 공기(公器)로서, 때로는 국가를 보위하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군사무예로서 국기(國基)를 받들었고, 그 내면에는 스승과 제자로 전수되고 계승된 ‘사도(師徒)의 전승(傳承)’이 도도히 흐르고 있는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특히나 《무예도보통지》에서 전하고 있는 민족무예 십팔기(十八技)는 온갖 역사의 시련을 겪으며 임진란이 일어난 조선조 선조에서부터 정조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차원에서 정립된 국방의 무예였다. 전자의 위력을 타고 새롭게 펼쳐지는 세계화와 문화의 세기에 십팔기(十八技)를 통하여 우리 겨레에게 전하는 선현들의 메시지는 ‘문화 민족의 대각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예도보통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민족무예 십팔기(十八技)의 장(場)은 무덕(武德)을 신앙으로 하여, 스승님과 제자 사이에서 축적된 기능과 지식을 전수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서 삼가 받들어 닦고, 나아가 내외를 겸수하여 인간완성을 도모하는 전인교육의 장이다.


1. 왜곡되는 사도(師徒)의 전승(傳承)

숙연한 무예 교육의 장에서 일정한 사승(師承)도 없이 어설픈 지식이나 조잡한 기술로 무예를 마구잡이로 해석하여 한 단체나 개인의 입신(立身)을 도모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수세기를 지나면서 확립된 민족 무예의 명칭을 함부로 바꾸는 일은 더 더욱 안 될 일이다.

무예 실기에 있어서 무예의 기법 원리와 이치에 따르지 않고 복원이란 말로 외람된 동작들을 구사하게 되면 사람의 심성(心性)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형이 오게 되고,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후학(後學)들까지도 그르치게 되어 올바른 교육과 학습의 장이 될 수 없다. 무예 이론에 있어서도 여기저기에서 마구잡이의 기술을 익힌 사람들은 스승의 지도가 없어서 두서가 없는 잡된 글을 쓴다는 것인데, 이러한 글을 접하게 되면 무예를 통해서 닦을 수 있는 원기 함양에서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무예 십팔기(十八技)의 실기를 평가하는 안목이나 《무예도보통지》를 비롯한 전통무학의 서적에 관한 해석은 실기와 이론을 겸하여 익히는 하나의 정교한 학문의 전문분야이기 때문에 스승님으로부터 전수받은 명문가의 무예인이 아니면 평론할 수가 없고, 일반 사람들은 그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맹점이 있다.

미련하고 어리석고 욕심 많은 사람을 가르치려는 것은 산을 옮기는 것보다 힘들고, 바다를 메우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어리석은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현들로부터 내려오는 《무예도보통지》무예에 대한 명칭이 ‘십팔기(十八技)’였음에도 불구하고 24기란 단체를 만들어 우리 무예의 명칭에 대하여 일반 사람들을 오도하게 하고 나아가 선현들이 정한 무예의 명칭을 자의대로 바꾸는 행위는 역사를 왜곡하고 조종을 부정하는 행위가 되므로 이를 바루고자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를 일깨우는 전통무학의 교육적인 가치와 역할은 문화의 세기에 더욱더 심중(深重)하므로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개방성과 다양성 그리고 창의성을 교묘히 이용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는 전통무예의 전도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로서 사람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큰 강점이지만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주의에 내재한 규범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듯이 전통무예 역시 무덕, 사승, 전승, 전통, 고련(苦鍊), 위인(爲人) 등으로 표현되는 전통무예의 내재적인 울타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수원 화성의 24기 단체는 《무예도보통지》를 종조로 삼는 무예 단체로서 일찍이 ‘대한십팔기협회’와 ‘십팔기보존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예와 단체의 이름을 유사하게 모방하여 같은 무예를 24기로 표방하여 ´24기보존회´란 명칭을 편의대로 조작하고, 신문의 기사와 홈페이지 글로 전통무예계의 본집인 십팔기 단체의 사승(師承)을 비웃으며 무예계의 선배님들을 업신여기는 행위는 무덕의 규범을 벗어난 무도한 짓이다.

이러한 외람된 행위는 전통무예의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바로 24기 단체에는 집안에 어른이 있는 일정한 사승(師承)의 맥락이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십팔기 단체가 《무예도보통지》 무예의 종문의 위치에서 활동하는 한에는 그들이 내세우는 24기는 명분이 없으며, 그들의 뿌리가 일본 겐또(劍道)를 하였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통무예의 개념은 사제(師弟)간에 ‘전승(傳承)된 계통(系統)이 있는 무예’라는 의미이다. 이 ‘사도(師徒)의 전승 계통’은 오늘날 전통무예와 근래에 창작된 무술을 구분 지어주는 하나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24기 단체는 Muye Love.com(무예사랑)이나 대학교의 홈피 등 여러 무술의 사이트에 전통무예를 공연할 시연단을 월급을 주고 모집한다는 광고를 그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서 게시한 적이 있다. 전통무예는 스승과 제자사이에서 전수하고 계승하는 교육의 장이므로 무예를 공연하는 시연단을 돈을 주고 모집하였다면 이미 전통무예가 아니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수원의 화성에서 전통무예 24기라고 선전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우리 전통무예를 수련한 사람들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 무예의 내력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무예의 명칭도 십팔기에서 24기로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계승하는 기존의 십팔기 단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칭을 바꾸어서 선전하는 것은 민족무예의 유일한 명칭을 단순히 상품의 포장으로 이용하여 역사를 왜곡하는 현장으로 전통무예의 내재적인 규범의 울타리를 벗어난 행위들이다.

《무예도보통지》를 중심으로 전수된 전통무예의 명칭이 십팔기(十八技) 이외에도 또 다른 명칭으로 24기가 있다는 것은 하나의 무예서적, 하나의 무예에 명칭이 두 가지라는 것에 대중들은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며, 무예교육을 통하여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난처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기실은 전통무예의 정명(正名)에 대하여는 이미 전편에서 제시한 확고한 문장들이 있기 때문에 논란거리도 되지 않지만, 이러한 논란을 일으키면 그들이 무엇을 하였던 사람인가하는 본질을 비켜가서 오히려 그들의 정체를 감출 수가 있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같은 전통무예를 한 단체끼리 명칭을 두고 논쟁하고 있는 것으로만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이 또한 그들이 바라는 함정일 것이다.

24기란 단어는 무예서적에서 문장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나온 단순한 수량사에 불과한데도 문집(文集)이나 시구(詩句) 등의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후대에 생겨난 상식부족의 자료를 근거로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는 24기라고 완강한 주장을 펴고 있으므로 더 자세한 설명을 첨가하고자 한다.


2. 《무예신보》에서의 22기, 그러나 무예의 명칭은 ‘십팔기(十八技)’

《무예도보통지》<병기총서: 안설>에는 정조 13년(1789) 가을에 임금이 직접 규장각의 각신과 장용영의 무관을 불러 《무예제보》에서 살수6기가 정리된 내력과 조선의 무예 명칭으로 십팔기(十八技)가 규정되었던 《무예신보》가 편찬된 내력을 설명하고, 《무예도보통지》를 찬술하는 목적을 분명히 밝히면서 신하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이 자상하게 실려 있다.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예신보》에서도 마상의 기예를 포함하여 22가지를 싣고서 그 무예의 명칭은 ‘십팔기(十八技)’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마상에서 운용하는 기예(騎藝)는 결국 십팔기(十八技)를 말위에서 응용하는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또한 《무예도보통지》에서의 무예의 종목은 본래 《무예신보》를 그대로 계승하여 22가지일 뿐이며, 격구와 마상재는 무예가 아니라 군사오락과 유희인데 이 두 가지만이 《무예도보통지》를 찬술할 때 첨가되었던 사실도 보인다. 따라서 《무예도보통지》는 ‘십팔기(十八技)’ 무예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더욱 계승 ․ 발양하고 더 충실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편찬된 것이며,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는 역시 ‘십팔기(十八技)’일 뿐이며 두 이름이 있을 수가 없다.

○현륭원의 뜻을 짐이 즉위한 원년에 오로지 ○선대의 뜻을 따라서 처음에는 앞서의 십팔기를 이습하도록 명하였고, 시취에는 또 기창(騎槍), 마상월도, 마상쌍검, 마상편곤의 4기를 더하도록 명하였다. 지금은 또 격구와 마상재를 그 아래에 붙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顯隆園志予卽阼初元聿追○先志始命並前十八技肄習試取又增騎槍馬上月刀馬上雙劍馬上鞭棍四技今又以擊毬馬上才附于其下猗歟.

정조 임금은 즉위한 첫날(1775년 3월 10일)에 윤음(綸音)을 내려 말하기를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천명하고 생부였던 소조(小朝)의 무예진흥 사업을 계승하여 소조가 남긴 《무예신보》의 22기 중에서 십팔기(十八技)는 군사들의 조련을 통하여 익힐 것이며, 응용하는 기예인 4기는 무과에서 시취의 과목으로 편입시킬 것을 명한 내용인 것이다.

이러한 무예를 진흥하는 유업의 계승은 현륭원(顯隆園)의 뜻, 즉 임오화변(壬午禍變)이후에 사도세자로 불렸던 선대(先代)의 뜻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선지(先志)는 ‘선왕(先王) 소조(小朝)의 유지’이며 곧 《무예신보》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이 문장에서도 십팔기(十八技)와 마상기예 네 가지를 합치면 《무예신보》에는 22가지가 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장 이외에도 《무예도보통지》에서 문서를 분류한 편집 기호를 살펴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마상의 4기와 함께 22가지 기예를 실어 놓고서도 이 명칭을 22기라고 하지 않고 ‘십팔기(十八技)’라고 한 것에서 십팔기는 기예의 가짓수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국방무예의 정식 명칭이 되었다는 의미이며, 나머지 마상의 4기는 십팔기를 응용하는 기예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또[今又] 격구와 마상재를 그 아래에 붙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라는 문장에서 정조 임금이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에서는 비록 군사오락이고 군사유희이지만 말 타기에 능하게 하고 군사체육의 효과가 있는 격구와 마상재를 《무예신보》의 22기 아래에 붙여서 더 완벽성을 기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면서 신하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今又’라고 적힌 ‘지금은 또’하는 글자는 매우 중요한데, 바로 정조 임금이 신하들을 불려 《무예도보통지》찬술을 명하는 바로 그 시점인 것이다. 따라서 군사오락인 격구와 군사유희인 마상재의 두 가지만이 《무예도보통지》를 찬술할 때 첨가된 것이다. 이러한 제반 사항을 고려할 때 선대의 생부가 남긴 ‘무예 십팔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더 발양하고 보전하기 위하여 《무예도보통지》가 편찬된 것이다.

24기 단체에서 주장하는 《무예신보》에는 십팔기밖에 없었으며 《무예도보통지》에서 24기로 발전하였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무예를 모르는 문외한들이라고 속이는 것이 아니라면 무지에서 비롯된 취지라 하겠다. 예전에 나이든 사람들이나 무예계의 선배님들도 전부 ‘십팔기(十八技)’라고 하였고, 오늘날 사람들도 여전히 ‘십팔기(十八技)’라고 한다. ´24기무예´란 있지도 않았고 최근에 들어 그들이 처음 만들어 낸 것이다.

《무예신보》는 일명 ‘무기신식(武技新式)’이라고도 하였는데, 정조 임금의 생부인 소조(小朝)가 섭정(攝政)하였던 기간인 영조 35년(1759)에 임란 때에 한교 선생이 어명을 받고 편찬한 《무예제보》의 6기에다 《무예제보》이후 계속 증보되어온 12기를 더하여 우리 겨레의 역사상에서 최초로 국가의 무예를 ‘십팔기(十八技)’로 명칭을 정한 무예서이다.

십팔기(十八技)의 명칭에 관한 중요한 사료로서의 《무예신보》는 조선왕조 최대의 비극인 소조(小朝)가 뒤주 속에서 돌아가신 임오화변 이후, 영조는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하여 왕세자에 관한 사료를 모두 없애라고 명하게 되었고, 이러한 인위적인 소멸과정에서 멸실되었는지, 아니면 병인양요(1866)때 수탈되어 현재 그 원본이 프랑스 파리 동양어학교 도서관에 있는 《무예제보》처럼 해외로 유실되었는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 《무예제보》의 6기와 더불어 그 내용이 모두 편입되었기 때문에 현재 복사본으로나마 그 내용은 볼 수 있는 《무예제보》와 《무예도보통지》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편서의 구성기호를 살피면 그 내용의 대개는 모두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 <범례>에는 편서(編書)에서 사용한 기호에 대한 문장이 나오는데, “그러므로 《대전통편》의 예를 본받아 그 옛것과 새것의 표식을 원(原)과 증(增)으로 하는데 따랐다......(중략)......만약 변증할 것이 있으면......(중략)......안(案) 운운이라고 썼다. 故倣大典通編例隨其舊新標以原增......(중략)......若有辨証......(중략)......書案云云.”이라고 하여 원(原), 증(增), 안(案)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대전통편》을 편찬한 예(例)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옛것이란 《무예제보》와 《무예신보》이며, 새것이란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을 말한다.

《대전통편》의 예란 정조 9년에 이 법전을 새로이 편찬할 때 《경국대전》에서부터 있었던 법조문은 원(原)의 글자를 쓰고, 《속대전》에 있었던 조문은 속(續)이란 글자를 사용하고, 통편하면서 첨가된 조문은 증(增)의 글자를 사용하여 그 문장의 출처를 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구별하였던 것을 말한다.

이 예(例)를 본보기로 하여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에서도 옛것인 《무예제보》와 《무예신보》의 것은 원(原)의 글자를 쓰고, 새것인 《무예도보통지》에서 첨가된 문서는 증(增)의 글자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안(案)의 글자는 공문서의 증거를 조사하는 안사(案査)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본문에서 변증(辨證)하는 문장이라고 명시하였는데,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 완벽성을 기하기 위하여 인용서목에서 그 연원을 발취하여 첨가된 문장인 것이다.

지금 24기 단체에서는 《무예제보》의 것은 원(原)이며, 《무예신보》의 것은 증(增)이며, 《무예도보통지》에서 첨가된 것은 안(案)으로 표시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무예학습이 부족해서이거나, 아니면 《무예도보통지》에서 24기로 발전하였다는 그들의 주장을 자의대로 맞추어서 무예에 관한 지식이 없는 대중을 속이기 위한 것이다.

이 글자의 기호에 따라 원(原)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 가운데에서 현재 그 문서를 볼 수 있는 《무예제보》의 것을 제외하면 《무예신보》의 내용이 될 것이다. 증(增)의 글자는 마땅히 지금 해당 서적에 증보(增補)하는 의미이며, 안(案)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과 함께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 추가된 문장들인 것이다.

이러한 표식에 따라 마상의 기예를 살펴보면 기창(騎槍譜), 마상쌍검보(馬上雙劍譜), 마상월도보(馬上月刀譜), 마상편곤보(馬上鞭棍譜)의 4기에는 원(原)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지금 볼 수 있는《무예제보》에는 마상의 기예가 전혀 없다. 따라서 이 네 가지의 마상기예의 보(譜)는 바로 《무예신보》에서 실린 것이며, 《무예도보통지》에서 정조 임금의 의견에 따라 추가되었다는 격구와 마상재는 모두 증(增)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과 비교되는 것이다.




또한 《무예도보통지》의 <기창(騎槍)>조에서 증설(增說)의 문장을 변증하는 소안설(小案說)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案】《경국대전》에 실려 있는 즉 무과시취의 제도와 지금의 《예보(藝譜)》에 실려 있는 기창(騎槍)은 차이가 있으나 역시 격자의 세를 갖추었기 때문에 지금 모두 기록한다.

【案】經國大典所載卽武科試取之制與今藝譜所載騎槍有異而亦具擊刺之勢故今並錄之.

이 문장에서 ‘지금의 예보[今藝譜]’란 《무예제보》에는 기창(騎槍)이 없으므로 곧 《무예신보》인 것이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무예신보》에서 이미 보병(步兵)들이 운용하는 십팔기(十八技)를 근본적인 기예로 하여 무예의 명칭이 확정되었고, 마상의 4기가 응용기예로 하여 모두 22기가 실려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응용하는 마상의 기예는 4기, 6기가 아니라 십팔반 병기를 모두 응용하더라도 근본기예인 ‘십팔기(十八技)’를 벗어나지 못하므로 조선무예의 공식명칭은 ‘십팔기(十八技)’였던 것이다.

이러한 마상기예에 관한 보(譜)가 소조(小朝)의 명으로 편찬된 《무예신보》에 십팔기(十八技)와 함께 실려있었다는 것은 마상의 기예는 십팔기를 응용하는 기예일 뿐이라는 것과 평소에 소조(小朝)는 유비무환의 소신을 가지고 북벌에 뜻을 둔 무인군주임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더 완벽성을 기하기 위하여 이 마상 4기에 대한 기계제도에 관한 증설(增說)과 역사적인 실례를 조사한 안설(案說), 그리고 기창보(騎槍譜)를 제외한 나머지 마상쌍검보, 마상월도보, 마상편곤보의 3기에 관한 언해보(諺解譜)는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 첨가된 문서이다. 옛 서적을 정확하게 판독하는 방법은 먼저 전서(全書)의 개괄적인 편집 체계를 설명하고 있는 <범례>의 부분을 철저히 숙지하여야 하는 것이다.


3. 마상의 기예는 모두 십팔기(十八技)를 응용하는 기술이다.

말 위에서 운용할 수 있는 기예는 기실, 《무예신보》에서 4기나 《무예도보통지》에서 6기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낭선(狼筅)처럼 너무 길거나 무거운 병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무기라도 말위에 올려서 운용할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없는 궁시(弓矢)라든가 극창(戟槍), 낭아곤(狼牙棍), 장병부(長柄斧), 철퇴(鐵槌)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능한 것이다.

다만 소조(小朝)가 《무예신보》에서 네 가지로 추린 것은 각 종의 병기에 대한 대표적인 것들이며, 비록 네 가지이지만 마상기예는 십팔기(十八技)의 응용기술이기 때문에 어떤 병기든 마상에서 운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옛 선인들의 지극한 지혜를 엿 볼 수 있다.《무예도보통지》의 편서(編書)의 구성은 <범례>에서 나타내었듯이

“군사기술은 자(刺), 감(砍), 격(擊)의 삼법(三法)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창(槍), 도(刀), 권(拳)의 삼기(三技)로서 책머리로 삼아 각각 종류를 따르게 하니 교전은 왜검에서 나왔기 때문에 왜검에 붙였고 마재(馬才)는 격구에 가까우므로 그 아래에 차례 하였다"

兵技不出刺砍擊三法故今以槍刀拳三技爲首各以類從交戰出於倭劒因以附之馬才近于擊毬次其下.

라고 하였다. 방의 유(儒), 선(仙), 불(佛)에 대한 경서(經書)는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이 그 의미를 수 없이 되새겨보아야만 하듯이 전통무학에 관한 경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찌르는 병기인 창류(槍類)의 머리는 장창(長槍)으로 삼았고, 찍어 쪼개는 병기인 도류(刀類)의 머리는 쌍수도(雙手刀)로 삼았고, 내리치는 병기인 권류(拳類)는 권법(拳法)으로 그 머리를 삼았다는 말인데, 여기에서 마상의 종목들이 어디에 편성되어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각 그 종류를 따르게 하였다.[各以類從]’고 하였는데 먼저 마상에서 창을 운용하는 기창(騎槍)은 제1권의 장창, 죽장창, 기창(旗槍), 당파의 다음에 기창(騎槍)과 기창교전(騎槍交戰)이 배치되고 그 다음에 낭선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앞의 여러 가지 창류는 모두 기창(騎槍)처럼 운용될 수 있고, 낭선은 너무 길고 무거워서 불가능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무예도보통지》 제3권의 도류(刀劒類)에서 쌍검(雙劍) 바로 다음에 마상쌍검(馬上雙劍)이 배치되어 있고, 월도(月刀) 바로 다음에 마상월도(馬上月刀)가 배치되어 편성되어있다. 제4권의 권곤류(拳棍類)에서도 편곤(鞭棍) 바로 다음에 마상편곤(馬上鞭棍)이 편성되어 있다. 이는 모두 마상의 기예는 십팔기(十八技)를 응용하는 기술이며 말위에서 하는 것은 4기이든 6기이든 모두 십팔기(十八技)로 응용하라는 것으로 체제가 잡혀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규정된 ‘십팔기(十八技)’라는 한 명칭이 24기 단체의 명분을 만들기 위하여 왜곡되어서도 아니 되지만 마상의 기예가 단순히 6가지로 제한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4. ‘십팔기(十八技)’란 석자에 담긴 위력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란 전란의 참상을 겪고 우리나라 역사상에서 최초로 종합병장무예로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십팔기(十八技)’란 무예 명칭이 정립되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문화의 세기라 불리는 세계화 시대에 우리나라의 무예 문화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가장 유력한 명칭이 되어 그 명칭 자체가 국가의 문화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의 무예문화 자산을 몇 몇 사람들이 이익을 위하여 무예의 기술은 고사하고라도 정명(正名)조차 호도시키는 작란(作亂)은 민족의 무예문화의 정신을 갉아 내어 우리의 문화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이적(利敵)의 행위이기 때문에 심각하고 중차대한 사안이 되는 것이다.

24기(24반) 단체의 주장은 24기가 단순한 기예의 가짓수인 수량사(數量詞)를 가리키는 단어에 불과하다면 십팔기(十八技) 또한 무예의 열여덟 가지 가짓수이고, 24가지가 십팔기를 함유하여 더 나은 것이 아니냐는 발상은 ‘십팔기(十八技)’란 무예 명칭 석자에 담겨 있는 위력을 모르는, 몰염치에서 비롯된, 어리석고 무지한 논리인 것이다.

십팔기(十八技)는 열여덟 가지 기예를 의미하는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 제정된 명칭으로 우리 무예의 역사성과 독자성, 상징성과 대표성을 지니며 우리 겨레 무예를 통칭하여 단 세 글자로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선현들이 남긴 무예의 명칭을 혼란시키는 행위는 문화전쟁의 세기에 우리의 문화 경쟁력을 제고(提高)하고 우리의 무예문화를 재정비하는 작업에 역행하는 일이 된다.

중국을 예로 들면, 한 종문의 무술을 대표하는 소림권, 태극권, 무당권, 형의권 등 여러 종류의 무술 명칭들이 있지만 세계화 시대와 더불어 중국무술을 총칭하는 이름으로 ‘우슈(Wu-Shu)’라는 명칭이 통일 제정되었다는 사실은 중국무술 문화의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오늘날 ‘십팔기(十八技)’란 이 하나의 무예 명칭에는 근세조선이 지나(支那)가 차지한 대륙에 종속된 문화가 아닌 독자적인 무예문화를 창조하였다는 사실을 웅변하여 주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그리고 문화의 세기라 불리는 무한경쟁시대에 그 이름 자체가 가장 막강한 경쟁력을 지니며, 역사적으로 오래된 명칭의 유래만큼이나 실제로 막강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예가 될 것이다.

동양 3국 어느 나라도 일찍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무예의 명칭을 제정하고, 일련의 완벽한 국방무예서적을 편찬한 예가 역사상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무예민족의 기상이 온갖 수난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로 자랑스러운 무예민족의 자긍심을 가지게 되며, 우리의 후손들은 조종의 뚜렷한 무예문화의 맥락을 학습하면서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가질 수 있는 힘이 내재하여 있는 것이다.

수많은 외세의 도전을 응전으로 극복해온 우리나라의 무예를 간단한 하나의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는 ´十八技´ 라는 석자의 무예 명칭은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렬한 무예문화의 경쟁력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예도보통지》라는 서적과 그 기예는 본래 국가에서 만든 국가의 무예로 국가의 문화자산인 것이다. 대한십팔기협회와 십팔기보존회는 청산되지 않은 식민지무도와 온갖 외래 무술만이 횡행하였던 1980년대 초반에 협회를 창립한 이래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국가의 지도자들이 무예문화의 소중함을 깨달아 국가에서 교육, 문화관광, 군사체육, 국민보건의 정책에 활용하기를 기다리며 그 기예를 보존하여온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와 그 실기인 십팔기(十八技)는 조선이 왕업을 잃은 뒤로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수양하는 집안의 어른들의 한 맥에서 보존되어 내려오는 국가의 문화유산이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할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바로 잡을 권리와 바루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무예의 검(劍)만이 칼이 아니라 사람의 말과 글도 칼이 되어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어릴 때부터 언행의 조신(調愼)을 배운다. 본인은 지금 《무예도보통지》로 비롯되는 우리 무예의 명칭을 증명하는 글을 마침에 혹, 나의 글에 기경(氣勁)이 들어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없었을까하고 돌아본다. 만약 그러한 분들이 있다면 깊은 사과의 말씀을 전하며, 민족무예의 장도를 같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바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