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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팔기냐? 24기냐? -3
  글쓴이 : 박청정     날짜 : 08-02-14 16:49     조회 : 7686    

본조무예십팔반지명(本朝武藝十八般之名)과 24반(般)


몇 년 전에 검도협회의 모 인사가 TV 교육방송에 출연하여 오늘날 《무예도보통지》는 전부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알 수가 없다는 별 희한한 막말을 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전통의 유산으로 전수되는 무예(武藝)는 한문이란 언어의 기호로 후대로 전수하고 있는데, 한문을 익혀서 배울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무식을 그렇게 표현하니 교육방송이 실로 무색(無色)하더라. 언어는 문화를 전수하는 하나의 약속된 기호인데 그 기호를 모르고 어찌 무예, 무도를 학습할 것이며, 완전 통달은 못하더라도 거의 반통달이라도 해야 무예의 학업을 제대로 닦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무학(武學)에서의 문무겸전(文武兼全)이다.

전통의 무학(武學)은 동방의 역사학이나 경학(經學)처럼 한학의 수업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 무예사(武藝史)를 비롯하여 신체의 움직임이나 병기의 운용하는 흐름과 그 정신적인 수행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속적인 무학의 성취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통의 무학을 통철(通徹)하려면 정밀한 한문 수업은 필수이며, 한학을 하지 않고 전통의 무학을 논하려는 것은 그물도 없이 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발상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무예 교육은 엄격한 스승님으로부터 인간됨의 바탕을 먼저 다지고, 그 실기와 이론을 전수받는 것은 오랜 무예가의 전통이었다. 이러한 무예 교육의 전통을 무예계에서는 사승(師承) 또는 사맥(師脈)이라고 하는데, 이는 무예 전수의 근원적인 뿌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통의 무예란 전수된 사승의 맥락이 뚜렷하다는 의미이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무예나 땅에서 그냥 주운 무예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무술계의 사람들이 전통무예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만 전통무예는 무수한 역사의 사연을 담고 항심(恒心)의 단련을 통하여 스승에서 제자로 신체를 율동하는 암묵적 지식으로 대대승승(代代承承), 오늘날까지 전승되어온 하나의 거대한 산맥과 같은 것이다.

무예의 전수는 흔히 스승이 제자의 심신에 몸과 마음으로 심어준다고 구전심수(口傳心授)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무예 학습의 성격상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독특한 특징은 신체를 통한 전수이기 때문에 일반 학문과는 달라서 서적을 통하여 복원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막중한 선현의 무예를 대할 때에는 마음의 자세부터 삼가 경건하여야 하며, 세태의 변화에 따라 가볍게 대할 대상이 결코 아니다. 그 막중함에 비례하여 인간의 심신을 살찌우는 교육적인 영양소가 풍부한 것 또한 사실이다.


1. 전통의 무예를 왜곡한 죄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전통무예가 상업적으로 흥행되는 붐을 타고 놀이 유희의 것에서부터 일본의 겐또(劍道)나 아이끼도(合氣道), 중국의 쿵푸에서 나온 온갖 형태의 무술이나 근본도 없는 저잣거리 잡탕들이 전통무예라고 대중을 기만하고 있지만, 조선이란 나라는 초기에서부터 국가에서 무예를 철저히 관리해온 나라였기 때문에 국가에서 정한 ‘십팔기(十八技)’이외에는 있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따라서 십팔기(十八技) 단체의 기예를 도적질하여 전통의 무예문화라고 대중을 속인 24기 단체는 그것이 전수된 사승(師承)의 맥락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막중한 선현의 무예를 우리의 전통무예문화라고 대중 앞에 드러낼 때에는 당연히 밝혀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

현재 중공에도 전통을 빙자하여 어떤 기예나 문화를 사기하는 자는 바로 잡아들여서 사승(師承)을 문책하고 그 기예를 직접 당장에 펼쳐보라고 하고 만약 사술이 드러나면 바로 사형시켜서 혹세무민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다스린다고 한다.

만약 정확히 밝히지 못할 경우 전통무예를 왜곡한 죄를 물어야 할 것이며 무예의 전수와 교육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24기를 지방문화재로 지정하려는 문화재 위원이나 해당 공무원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2. 조선 후기의 법전 《대전통편(大典通編)》에 기록된 십팔기(十八技)

우리나라의 전통무예는 《무예도보통지》로부터 전수된 십팔기(十八技)의 전수 맥락 이외에는 일찍이 없었다는 것은 단언할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는 십팔기(十八技)가 전부요, 뼈대이며 조선의 정부에서 규정한 공식적인 명칭이 ‘십팔기(十八技)’이다.

구한말 외세의 동점(東漸)과 일제의 교활한 계략 앞에 조선이 망할 때까지 십팔기는 조선의 국기(國基)를 받들고 있던 국방의 무예였다. 《대전통편》은 조선 초기에 완성된 《경국대전》과 《속대전》그리고 각종의 전록(典錄)과 교령(敎令)의 전장(典章)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으로 정조 9년(1785년)에 어명으로 새로이 추가 정리된 조선의 법전이다.

이 법전의 제4권 <시취(試取), 관무재초시>조에 정조 임금이 즉위 초에 《무예신보》에 실려 있는 십팔기(十八技)와 마상의 기예를 무과에서 인재를 선발하는 시취(試取)의 과목으로 이습(肄習)할 것을 명(命)한 교령이 기록되어 있다.

관무재 초시......(중략)......철전, 유엽전, 편전, 기추 [증]기창교전, 편추, 마상언월도 이상 장교 및 마군(馬軍); 조총, 유엽전, 편전, 용검(用劒), 쌍검(雙劒), 제독검(提督劒), 언월도(偃月刀), 왜검(倭劒), 교전(交戰), 본국검(本國劒), 예도(銳刀), 목장창(木長槍), 기창(旗槍), 당파(鎲鈀), 낭선(狼筅), 등패(藤牌), 권법(拳法), 보편곤(步鞭棍), 협도(挾刀), 봉(棒), 죽장창(竹長槍) 이상 보군(步軍).

觀武才 初試......(중략)......鐵箭, 柳葉箭, 片箭, 騎芻 [增]騎槍交戰, 鞭芻, 馬上偃月刀 已上 將校 及 馬軍 鳥銃, 柳葉箭, 片箭, 用劒, 雙劒, 提督劒, 偃月刀, 倭劒, 交戰, 本國劒, 銳刀, 木長槍, 旗槍, 鎲鈀, 狼筅, 藤牌, 拳法, 步鞭棍, 挾刀, 棒, 竹長槍 已上 步軍.

《무예도보통지》는 정조 14년(1790)에 편찬되었고, 《대전통편》은 정조 9년에 편찬된 법전이며, 정조 임금의 생부가 이룩한 《무예신보》의 22가지 기예를 무과의 시취에 사용하라고 명(命)한 것은 즉위 초에 하였다고 《무예도보통지》<병기총서 안설>에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군사놀이와 유희인 격구와 마상재를 포함하여 마상 기예 6가지가 추가되어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로 발전한 것이 아닌 것이다. 격구에서 손에 쥐고 경기를 하는 구장(毬杖)이라는 공채는 병기(兵器)가 아니며, 마상재는 더더욱 맨손으로 말 위에서 유희하는 것인데 어찌 병기를 운용하는 무예의 종목이 되겠는가? 우리 선조들이 무예와 오락 유희도 구분도 못하는 분들이었는가?

또한 중략한 문장 가운데에서는 ´마군(馬軍)은 이상의 3기(技)를 추가하고 보군(步軍)은 21기(技)로서 점수를 매긴다´는 기록에서 기(技)의 글자는 가짓수를 나타내고 있으며, 역시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24기(技)의 기(技)도 24목(目)의 기록과 함께 볼 때 ‘기목(技目)’ 즉 기예의 항목을 세는 수량사(數量詞)일 뿐이다. 결코 조선의 국방무예로서의 공식적인 명칭은 아닌 것이다.

위에서 증(增)의 글자는 《대전통편》이 편찬될 때 추가된 내용을 나타내고 있으며, 보군 21기의 시취과목에서 십팔기(十八技)에 해당하는 기예는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 용검(用劍)은 쌍수도(雙手刀)로, 언월도(偃月刀)는 월도(月刀)로, 목장창(木長槍)은 장창(長槍)으로, 보편곤(步鞭棍)은 편곤(鞭棍)으로, 봉(棒)은 곤봉(棍棒)으로 다시 정리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3. ´본조무예십팔반지명(本朝武藝十八般之名)´

서문에서 ‘십팔기지명시차(十八技之名始此)’라고 하여 십팔기 명칭의 유래를 확고하게 밝혀놓은 것 이외에도 <병기총서> 영조 35년 조에도 명칭 명(名), 이름 명(名)의 글자와 함께 더욱 더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삼십오년(三十五年, 1759년)에 ○소조(小朝)께서 서무(庶務)를 대청(代聽)하실 때 《무예신보》를 찬수하도록 명하시어 죽장창, 기창, 예도, 왜검, 교전, 월도, 협도, 쌍검, 제독검, 본국검, 권법, 편곤의 십이기(十二技)를 증입(增入)하여 원보(原譜)의 육기(六技)와 아울러서 십팔기(十八技)로 정(定)하셨다. 본조(本朝) 무예 십팔반(武藝 十八般)의 명칭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三十五年○小朝代聽庶務命纂武藝新譜增入竹長槍旗槍銳刀倭劍交戰月刀挾刀雙劍提督劒本國劒拳法鞭棍十二技幷原譜六技定爲十八技本朝武藝十八般之名始此.




◇ 《무예도보통지》의 <병기총서(兵技總敍)>

《무예도보통지》의 <병기총서(兵技總敍)>는 글자 그대로 조선 태조 원년(1392)에서부터 영조 51년(1775)까지의 군사기예에 관한 모든 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놓은 것이다. 1776년에 정조 임금이 즉위하여 《무예도보통지》가 편찬된 정조 14년(1790)년까지의 치적(治積)에 대하여는 <병기총서> 끝에 ‘안설(案說)’로 붙어있다.

결국은 태조 원년에서부터 정조 14년까지 근 4백년간의 군사 훈련, 무과시취, 군영의 설치, 군사제도, 병서의 간행, 무기(武技)의 변천 등을 연대순으로 총괄하여 서술한 것인데 근세조선의 역대 군문(軍門)과 무예사(武藝史)를 연구하는데 결정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영조 35년에 정조 임금의 생부인 ´소조(小朝)께서 서무(庶務)를 대청(代聽)하실 때´라는 것은 일반적인 사무에 관한 정사를 보았다는 의미이다. 영조는 세자가 15세가 되던 해(영조 25년, 1749)에 예비 군왕으로서 대리청정(代理聽政)을 맡길 때 군사(軍事)를 움직이는 일과 사람을 쓰는 일 그리고 사형에 관련된 것의 결정권은 제외하여 그 권한을 제한하였다.

여기에서 증입(增入)된 십이기(十二技)는 왜란이후 소조(小朝)가 《무예신보》를 찬수할 당시에까지 전승의 무예를 부단히 발굴, 계승하여 정리하여온 무예였음을 광해군 2년(1610)에 훈련도감의 최기남(崔起南)이 편찬한 《무예제보번역속집》이라든가 《실록》등의 사료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원보(原譜)의 육기(六技)’란 왜란 때 한교(韓嶠) 선생이 어명을 받들어 편찬한 《무예제보》에서 정리된 살수육기(殺手六技)를 말한다. 이 육기(六技)와 십이기(十二技)를 꿰어서 조선의 국방무예로서 ‘십팔기(十八技)’라는 명칭이 확정된 것이다.

´본조(本朝) 무예 십팔반(武藝 十八般)의 명칭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한 문장은 조선의 국기(國技)에 대하여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본조(本朝)란 조선의 조정을 말하고, 무예 십팔반(武藝 十八般)은 열여덟 가지의 병장무예, 즉 십팔기(十八技)가 열여덟 가지로 된 종합병장무예의 명칭이니 십팔기(十八技)의 다른 표현이며, 십팔기(十八技)와 동일한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항간의 전통무예계에서는 ´24반(般) 무예´라는 표현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무예도보통지》의 전서(全書) 어디에도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후 여타 역사서에서도 사용된 적이 없다. 이 역시 ´무예 십팔반(武藝 十八般)´을 흉내 낸 것으로 한 치도 어긋날 수 없는 무예계에서 사용할 수 없는 용어라 하겠다.

본래 한문으로 표현하는 문장은 그 글자를 사용하여도 의미상에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자가 있으면 같은 문장 내에서 동일한 글자 사용은 피하고, 단어의 글자를 분리하여 쓰는 습관이 있으며, 고유의 명사라도 고유의 의미가 살아있으면 묘(妙)를 부려서 의미의 전달을 더 확실하게 하여주는 것이 한문의 용자법(用字法)이다.

이 문장에서도 정해졌다 또는 규정, 확정되었다는 정(定)의 글자와 명칭, 이름을 뜻하는 명(名)의 글자가 분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합치면 명칭이 정해졌다는 ‘정명(定名)’이란 단어가 나오고, 본조(本朝)라는 조선의 조정, 무예 십팔반(武藝 十八般)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동사인 시작 또는 비롯되었다는 시(始)의 글자가 있고, 시간적인 장소를 가리키는 대명사로서 차(此)의 글자들이 있으니 모두 합쳐서 해석을 해보라. 이처럼 상세하게 설명하여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사람을 대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겨레의 온갖 신고(辛苦)의 역사과정 속에서 우리 선조들이 국가와 겨레의 생명줄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승의 무예를 대(代)를 이어가며 정립하였고, 무예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우리 무예의 정명(正名), 즉 바른 이름은 ´십팔기(十八技)´였던 것이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우리나라는 지금 지식 정보화의 시대와 더불어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글로벌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시대를 흔히 문화의 세기 또는 무한경쟁의 시대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단어들을 맞추어 보면 ‘문화전쟁’이란 말로 귀착되며, 이는 우리 겨레가 극복해야 될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으로 인식된다.

문화전쟁의 시대는 한 나라의 축척된 문화로서 각 국이 경쟁하는 시대를 말하는데 오랜 세월을 시대마다 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온 우리 겨레는 겨레의 유전자속에 잠재되어있는 문화 인자를 슬기롭게 일깨울 수만 있다면, 우리 겨레는 비약적인 대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의 무예는 그 자체가 거대한 문화의 보고(寶庫)이며, 겨레의 문화 인자를 일깨울 수 있는 하나의 도화선이 될 것이며, 문화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 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문화 인자를 간직한 우리 겨레의 무궁한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민족무예 ‘십팔기(十八技)’는 본래 조선이란 국가에서 정립한 국가의 무예요, 국가의 유형, 무형의 문화 자산이다.

오늘날 십팔기(十八技)의 무예 문화를 본래 국가의 문화자산이니 국가 정책의 차원에서 세심한 배려를 하여 청소년의 공교육과 문화 관광의 자원, 성인들의 평생교육과 의료, 국민보건과 군사체육 등으로 무예 문화의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에 앞서 우리 무예의 이름 바로 세우기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