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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무예와 주체무예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8-02-12 21:17     조회 : 6659    

근대화와 더불어 서양의 각종 스포츠나 놀이가 이 땅에 밀려들어 올 때, 그 어떤 종목도 우리는 아무런 비판이나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그와 비슷한 우리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다. 비록 스포츠가 아닌 오락 종목이지만, 바로 서양장기이다. 왜 그랬을까? 이는 이미 이 땅에 장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놀이이지만 해봤더니 역시 우리 것이 더 재미있고 정서가 맞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래의 활쏘기가 있었기 때문에 서양 활쏘기가 들어왔을 때 ´양궁´이라 이름하고, 우리 것은 ´국궁´이라 하여 구별하여 보전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민족이 원시시대로부터 활쏘기를 해왔는데, 서양궁, 일본궁, 중국궁, 인디언궁, 아프리카궁이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 그저 활모양이 조금씩 다를 뿐, 그 용도나 요령에서는 다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왜 구별하고자 하는가?

국궁에는 우리의 누천년 역사와 함께 해온 전통과 정서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양궁이나 다른 나라 활을 들고 시위를 당길 때에는 우리 민족의 호연지기나 조상들의 숨결과 정서가 느껴지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굳이 국궁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은가? 양궁을 당길 때 과녁과 금메달 이외에 무엇이 보이든가? 만약 그 양궁을 영국인들이 당길 때는 무엇을 떠올리겠는가? 당연히 로빈 훗이겠지만, 어디 그 뿐이겠는가?

근현대에 들어서 동양의 모든 국가들은 서양문물에 매몰되어 가는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고자 무척 노력해 왔었다. 땅과 민족 뿐 아니라 문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체육이나 스포츠에서는 예외였다. 먼저 주체가 있고 객체가 있어야 주체성을 논할 수 있을 터인데, 객체는 있는데 주체가 없었으니 처음부터 주체성이 성립되질 못했다는 말이다.

그와 같거나 비슷한 것이 이 땅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설사 있었던 것도 사라지고 난 뒤에 들어왔기 때문에 주체성이라는 말을 떠올릴 필요조차 없었다. 따라서 모두 맹목적(거의 맹신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록 보잘 것 없다 해도 자기 것이 있을 때는 결코 그렇게 맹목적으로 되지만은 않는다.

그 연원이 어찌되었던 간에 검도, 유도, 태권도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세월은 불과 한 세기도 되지 않는다. 사실 이 정도의 세월로서는 그 어떤 문화라 할지라도 전통성을 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적어도 한 두 세기는 흘러가면서 민족의 땀방울이 짙게 배어들어 한국적인 특질이 드러날 때에야 비로소 전통문화로서 대접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억지로 역사를 끌어다 붙인다고 해서 전통적인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 위상에서 나온 성급한 욕심에 다름 아니다. 한 개인이 태어나서 살던 이곳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산다고 해서 바로 미국인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역사를 아무리 길게 잡는다 해도 이민 1세대 혹은 2세대의 역사밖에 되지 않는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주체무예의 빈자리를 태권도가 대역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태권도가 개명을 거쳐 한국 것으로 다시 태어나긴 했지만, 전통적인 무예(혹은 놀이)보다는 오히려 근대 서양 스포츠의 형태를 따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호신술로 들여왔지만 곧이어 군사체육으로서 제도권으로 수용되었고, 그것이 월남전을 계기로 따이한의 심벌이 되어 세계인에게 파괴적인 힘, 무시무시한 한국인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후 학교체육으로의 위상을 확보하였으며, 지금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어있다. 덕분에 타 문화권의 무예가 들어 올 때에는 언제나 태권도를 그 주체에다 두고 비교, 분석, 비판해왔었다.

하지만 애초에 호신술로서의 태권도가 일찌감치 격투체육으로 흐르면서 무예로서의 주체적 역할은 제대로 해내지 못했었다. 오히려 그 연원을 전통적인 것으로 조작하여 지금까지도 민족 고유의 무예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무예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굴절시켜 놓고 말았다. 결국 밀려들어오는 일본 무도나 온갖 중국무술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주체적 시각을 갖도록 해주지 못했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알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신의 나라에 전통적인 무예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라가 있으면 당연히 군대가 있고, 그 군대는 각종 무기들과 그것들을 다루는 기예가 없었을 리 만무한 데도 불구하고, 맨손으로 오천년 동안 이 나라를 지켜온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조선의 관군들은 겨우 활이나 쏘다가, 화살이 떨어지거나 적이 가까이 오면 들고 있던 칼이나 창을 내던지고 줄행랑을 친 걸로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때마다 백성들이 씨름, 혹은 태권도나 택견으로 단련된 맨주먹과 낫과 곡괭이를 들고 일어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줄로 알고 있다는 말이다. 구한 말기 대원군처럼 조선 맨주먹이 세계 최강이라 자신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역사적 단절을 겪지 않고 십팔기가 당당하게 전승되고 있었더라면 일본의 무도나 해방 후의 중국무술이 그토록 비판 없이 무혈 입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최소한 십팔기 중 권법만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카라데(空手道)가 태권도로 개명하는 데에 있어 민속놀이인 택견이 계기가 되었다는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주체무예에 대한 인식이 없다보니, 민족 운운하는 교육기관일수록 일본 무도교육에 더욱 열심인 민망스런 일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모든 사관학교, 경찰학교가 그렇고, 유학대학으로 조선 선비정신의 본당으로 자처하는 성균관대학이 일본검도의 총본산으로 자리하고 있는 황당한 일, 심지어 민족의 장래를 책임질 인재 육성을 부르짖는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조차 자신의 무예도 모르고 일본검도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검도가 이 땅에 강제로 이식된 일제 식민무예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이런 어이없는 일은 계속 될 것이며, 치마바지에 일본 검, 아니 죽도라도 들고 버티고 서서 지배자의 기분을 맛보려는 한국의 전통적인(?) 상류층의 비뚤어진 친일적 심미관과 식민사관 또한 버리지 못할 것이다.

자기 것이 있어야 사물과 형상을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주체성을 가지고 남의 문화를 비판하고, 받아들여서는 자기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터, 자기 것이 없다보니 당연히 주체적인 판단이 서질 못하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동화되고 만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일제 식민시대에 이 땅에 강제 된 일본무도에 대한 자각과 반성, 그리고 우리 민족성에 끼친 영향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점잖게 말해서 ´문화의 세기´라 하지만 속내는 이미 ´문화전쟁의 세기´이다. 이런 일이 어찌 무예에만 국한되겠는가마는 몸으로 익히면서 형성된 관념은 글로만 배운 지식보다 훨씬 더 깊게 베어들어 종교에 버금가는 끈끈한 흡인력을 갖게 된다. 중국무술(우슈, 쿵푸)를 배운 사람들은 중국문화가 최고라고 받들면서 중화사상에 스스로 물들고, 일본 검도를 익힌 사람들은 사무라이정신을 최상의 경지로 치며, 요가를 수련하는 사람들은 인도정신문화를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출입 통계표만이 국민 소득을 올려준다는 답답한 사고를 이젠 버려야 한다. 어느 개인이 어떤 이유로든 어느 나라의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단순 관광을 넘어서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파생시켜준다는 점 때문이다.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이 땅에 들어온 카라데가 개명을 거쳐 한국의 대표적인 스포츠로 된 태권도가 한국에 가져다준 경제적 이익 외의 부가가치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미국의 야구, 중국무술, 검도, 유도 등등 스포츠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 춤, 음악, 놀이, 음식 등등을 떠올려보라. 아니면 감동 깊은 영화나 그 주인공을. 당신이 그 중 어느 것을 좋아하고 그것이 생겨난 나라를 떠올릴 때 어떤 감정이 드는가? 심지어 어떤 상품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밴츠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독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밴츠가 괜히 비싼 것이 아니다. 기술, 디자인 모두 현대차나 별 차이 없다. 그런데도 두 배나 비싸다. 왜? 밴츠는 자동차만 파는 것이 아니라 독일문화 밴츠문화를 얹어 팔기 때문이다. 판매가는 두 배지만 원가와 비용을 제하고 난 이익은 수백 배이다. 드라마 <대장금>이나 <겨울연가>가 가져다 준 경제적 가치는? 히딩크가 한국에서 벌어간 돈이 연봉과 광고모델료 뿐일까? 그에 대한 신뢰와 호감은 곧 네덜란드 제품, 네덜란드 문화에 대한 신뢰와 호감으로 전이되어 네덜란드의 국부로 축적된다. 문화적 호감이 곧바로 경제적 효과로 드러난 경우이다. 바로 이것이 문화전쟁의 핵심이다.

세계 최고의, 가장 완벽하게 정리되어 전승되어 오는 고대 동양 무예의 결정판인 자기 무예가 있는 줄도 모르고, 누천년을 맨손으로 지킨 나라인줄 착각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무지하고 답답한 노릇인가? 조상들이 피와 땀으로 물려준 세계 최고의 문화상품을 스스로 발로 밟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남의 것을 입 벌리고 바라보고 있는 꼴이다. 그 빈자리를 식민무예와 짝퉁전통무예들이 차지하고 앉아 주인 행세를 해 왔기 때문이다.

비록 해범 선생이 일평생 기울인 노력 덕분에 가까스로 그 이름이 다시 살아나자마자 짜가십팔기까지 우후죽순 생겨나 저자거리 생업의 수단으로 팔려나가고는 있지만, 십팔기가 본디 국가의 무예임을 하루빨리 깨달아 국가가 두 팔 걷고 나서 제도적으로 보전 육성해야 할 것이다.

무예문화의 가치는 무한하다. 십팔기를 국가 전략사업으로 개발시켜 문화전쟁의 선봉에 세워 민족문화의 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반드시 그리 되어야 하고, 또 그리 되고 말 것이다. 십팔기는 조선의 국기이자, 대한민국의 진정한 국기이며, 이 땅과 이 민족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늦어질수록 그만큼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