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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예 수련의 단계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12-21 20:36     조회 : 8112    

권법(拳法)을 배우든 병장기술을 배우든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은 권법의 기초가 되는 보형(步型)과 퇴법(腿法), 그리고 단권(單拳)이다. 이 세 가지는 평생을 두고 수련할 때마다 빠짐없이 익혀야 한다. 목적은 자세를 바로잡고, 힘을 기르는 데 있다. 흔히들 이 세 가지를 중국무술에서 온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사람의 몸과 팔다리가 나라마다 다를 수가 없듯이, 어떤 무예나 운동 혹은 무용을 하더라도 각기 그 기본 동작에서는 크게 벗어날 수 없다. 혹여 누군가가 자신은 그것을 따르지 않겠다거나, 이와 다른 기본 동작을 따로 만들어 그것만 사용하겠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무지하고 편협한 생각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무예의 기본 정신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이 기본동작들은 어느 시대에 누가 하루 아침에 만든 것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무예를 익히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듬어져 지금과 같은 형(型)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을 해보았더니 지금처럼 하는 게 가장 좋더라는 것이다. 그걸 네 것 내 것 따지면서 마다한다면 이미 시작부터 그른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의 권법보(拳法譜)에도 이러한 기본에 관한 자료가 잔뜩 나열되어 있다.

흔히들 십팔기를 수련하는 기본적인 단권이 중국무술 도장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다해서, “십팔기는 중국무술이다” 라고 단정 짓는 것은 스스로의 무지함과 편협함을 자랑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같은 종류의 병장기를 다루는 기예가 그 기본에서는 결코 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긴 세월을 이어오는 무가(武家)에서는 대개 이런 단권을 대여섯 개 혹은 이십여 개 이상씩 개발해서 수시로 익히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단권도 서로 같거나 유사할 수밖에 없다. 또 없거나 부족하다 싶으면 사해를 두루 살펴 좋은 것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새로 개발하면 된다. 그런다고 해서 자신의 본디 무예가 변질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똑 같은 기예라 할지라도 그런 좋은 동작들을 흡수함으로써 더욱 높은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단권(단수)들을 따로 익혀서 연결하면 하나의 권법이 완성되는데, 반대로 그 권법의 한 동작, 한 세를 따로 떼어서 그것만을 반복해서 숙련시키는 것이 바로 단권이라고 이해해도 된다. 예를 들면 십팔기나 중국무술 도장에서 나름대로 연습하는 있는 삼충권, 고사평, 현각허이세, 요단편 등등은 모두 십팔기 중의 하나인 <권법>에 나오는 것들이다. 또한 여타의 다른 권법에서도 결코 빠지지 않는 동작들이다.

그러니까 이 <권법>을 이루는 각각의 세(勢)를 따로 떼어서 연습하면 이십여 개의 단권이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이들 중 열 가지 내외의 가장 기본적인 단권들은 거의 모든 권법의 근간이 되는 동작들이다. 따라서 이 단권들을 제대로 익혀 놓으면 다른 문중의 어느 권법을 배우더라도 쉽게 소화해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착실하게 권법과 그 기본동작을 익히고 난 다음, 본격적으로 병장기 수련에 들어가게 된다. 이외에도 수련 전후에 갖가지 도인체조로 몸을 풀거나 현대적인 각종 기구들을 이용해서 근력을 다지기도 한다. 이 모두가 자신이 익히고자 하는 기예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몸을 건강하게 해주기 때문에 굳이 남이 하던 것이라 해서 거부할 이유가 없다.

축구하는 사람이 공을 차기 전에 달리기 등 온갖 트레이닝을 하고, 골프 치는 사람들도 쉼 없이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근력을 다지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양궁이나 사격에서는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명상법도 도입하고 있지 않은가. 당연히 종합병장무예인 십팔기를 익히고, 보다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타의 이런 좋은 운동법이 있으면 얼마든지 받아들여야 한다. 이 기본에서부터 권법 단련까지가 본격적인 무예를 익히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문파마다 이 기본형을 가져다 수련을 하되, 조금씩 그 모양새에서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근본을 틀어지게는 하지 않으나, 그 문파의 무학(武學) 수준에 따라 약간씩 혹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보형(步型) 가운데 한 동작을 예로 들어 보자.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마보(騎馬步)와 궁전보(弓箭步)이다.

해범 선생은 《권법요결(拳法要訣)》에서 설명하기를, 기마보(騎馬步)란 “양발을 좌우로 벌리고, 무릎을 굽혀 반쯤 쪼그려앉는 자세이다. 몸은 바로 하고 허리는 곧게 세우면서 양발은 발끝을 안으로 구부려 팔자(八字) 혹은 일자(一字)로 만든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궁전보(弓箭步)는 "좌우 양발을 앞뒤로 벌려 앞발 끝을 반드시 안으로 향해 구부리고, 무릎은 지면과 수직이 되도록 굽힌다. 뒷발은 무릎을 곧게 펴며 발끝은 앞을 향하고 발뒤꿈치는 지면에 반드시 붙인다. 몸은 바로 하고 허리는 곧게 세운다. 마치 활시위를 당긴 것과 같이 앞발은 상체가 기울어지지 않게 지탱하고, 뒷발은 힘을 발출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밟아야 한다.” 고 설명한다.

그밖에 허보(虛步), 독립보(獨立步), 부퇴보(惻腿步)와 운용 보형인 일좌보(一坐步), 좌반보(坐盤步) 등이 있다. 천하의 어떤 문중에서 나온 책이라 해도 이 이상 더 정확하게 설명해 놓지는 못한다. 이게 기본 보형(步型)이고, 누구나 평생을 쉬지 않고 이대로 수련한다. 그러면 이제 다 된 건가?

물론 그렇다, 여기까지는.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명문가와 그렇지 않은 일반 시중의 무예와는 여기서부터 차이가 난다. 그래서 똑같은 자세를 취해도 문파마다 달라진다. 우선 기마보에서 발끝을 왜 안으로 구부려야 하는가? 발바닥에서 앞부분과 뒷부분의 힘의 안배는? 그리고 발바닥 중앙은? 무릎을 반쯤 구부리는데 어디까지? 대퇴부가 지면과의 수평에서 올라가면 힘들고 수평이나 그보다 조금 낮으면 편한데, 어느것이 옳은지? 이때 무릎 힘을 안쪽으로 줘야 하는지, 바깥쪽으로 줘야 하는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 버티기만 하면 되는지?

허리는 곧바로 세운다고 했지만 엉덩이, 배, 가슴은 어떻게? 그리고 어깨는? 목과 턱은? 모두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어떤 결과(폐단)가 생기는지? 좌우 발의 힘의 분배는 어느 정도? 발가락과 뒤꿈치는? 발로 땅을 어떻게 움켜잡는가? 전체적으로 무게중심은 어디에? 사람마다 신체적 조건이 다른데,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해도 되는지? 팔과 손은 어떻게, 왜? 자세를 취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 변형 혹은 응용형은? 종(縱)과 횡(橫)의 구분은?

다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남을 가르치는 자는 이와 같은 질문들에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그 말이 짧게는 즉석에서, 길게는 10년 혹은 20년 후에 반드시 당사자가 느낄 수 있도록 증명되어야 한다. 가장 간단해 보이는 기본자세 하나에도 이처럼 글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경험적 이치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혀가 닳도록 기본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배우는 사람이 이와 같은 내용을 금방 다 깨우칠 수는 없다. 그 몸이 느껴서 깨달을 때까지는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해범 선생께서도 이같은 이야기를 결코 처음부터 다 일러 주지는 않았다. 나중에야 우리들이 “이 말씀을 왜 진작 해주시지 않았습니까?”고 물을라치면, “내가 그때 분명히 말해 주었으나 너희들이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건 너희 몸이 그만큼 숙련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오래 수련하다 보면 자신의 몸이 스스로 깨닫고 의문을 가지게 된다. 만약 초보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꺼번에 해주게 되면 오히려 망치게 될 뿐이다. 그만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그에 맞는 기술과 이론을 알려 주어야 한다.”고 답하여 주시곤 했다.

글쓴이의 경험으로도 위의 내용 가운데 어떤 것은 스승으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건만, 정작 몸이 그것을 깨닫는 데는 20년 혹은 30년이 걸린 예도 있다. 무예로 남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이로써 알게 되었다.

혹자는 이러한 내용을 진작 글로써 설명해 주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눈앞에서 직접 동작을 취해 가며 수없이 반복하여 다듬어 주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배우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꾸준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하듯, 이 기마보(기마세) 하나만 봐도 그 문중의 무예 수준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장담컨대,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조차 지금까지 이 기마보 하나 제대로 잡는 무예인을 본 적이 없다.

손가락 발가락 끝 한마디의 모양과 힘의 안배에 따라 나중에 그 사람의 무예 성취도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러면 또다시 혹자는 “왜 굳이 그렇게 까다로이 해야 하느냐. 내가 보기엔 그게 그것 같은데”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무예이다. 보일 듯 말 듯한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차이에 목숨이 오가기 때문이며, 그에 따른 이치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해범 선생의 《권법요결》《본국검》《조선창봉교정》에는 <십팔기>의 모든 실기와, 선생이 일생 동안 터득해 온 무예 이론이 기초부터 최고경지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행간 한줄 한줄, 단어 하나하나, 글자 한자 한자에 앞에서 제기한 그런 복잡하고 깊은 이야기들이 함축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위의 책을 가지고 무예를 익히는 이들이 이 점을 염두에 두고서 공부를 한다면, 단언하건대 오늘 읽을 때와 내년에 읽을 때, 혹은 수십 년 후에 읽을 때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어쨌든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보형(步型) 하나만 해도 실제 가르칠 때에는 책에 있는 설명보다 몇십 배를 더, 말로 때로는 몸으로 직접 가르쳐야 한다. ‘삼절법(三節法)’만 하더라도 《권법요결》 제일 첫머리에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그만큼 중요한 이론이다. 선생께서는 평소에 “삼절을 제대로 알면 무예를 안다고 할 수 있다. 맨손이든 무기를 들었든 천하의 어떤 무예 동작도 이 삼절법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다. 세상 사람들은 별난 기술만 좋은 줄 알지 삼절법 귀한 줄은 모른다”라고 하셨다.

이 ‘삼절법’이 심법(心法), 안법(眼法), 신법(身法), 수법(手法), 보법(步法)과 결합되어야만 제대로 된 무예 동작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 “삼절(三節) 중에서도 중절(中節)이 가장 중요한데, 이것을 제대로 단련하지 않으면 신법(身法)이 나오지 못한다. 삼절이 하나가 되어야 신법이 나온다. 신법이 나오지 않으면 평생을 수련한다 해도 상승의 무공에 이르지 못한다”고도 하셨다.

물론 《권법요결》에는 이 ‘삼절법’에 대한 원리만 설명되어 있고, 그 수련법은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각 권법 동작의 설명 속에 녹아들어 있다. 비록 본인이 인식은 못한다 해도 바른 기본을 착실하게 쌓아 가면서 꾸준히 수련하면 언젠가는 절로 습득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특히 중절(中絶)의 단련법은 글 몇 줄로는 설명이 될 수가 없어, 10년 이상 수련한 몇몇 제자들만이 조금씩 그 중요성을 깨달아 가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되는 무슨 비밀스런 절기라는 말이 아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알려 주었지만 그걸 제대로 이해하고 완벽하게 익힌 자가 그만큼 드물고 오랜 수련기간을 요한다는 이야기이다.

시중에서 과격한 스포츠나 무예를 오랫동안 익힌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나이 들어가면서 요통과 관절염 혹은 신경통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이유는, 이 중절을 제대로 단련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단련은 고사하고 무리하게 혹사시켜 막말로 골병이 든 것이다. 쉬쉬하고 넘어가는 이야기이지만, 과거 발차기를 많이 했던 연로한 무예인들 중 무릎관절 수술 안한 이를 찾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거의 모든 무예서에서는 강유상제(剛柔相濟)를 이야기하면서 유(柔)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구체적으로 유(柔)를 기르는 방법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다. 그저 부드럽게 원을 그리는 동작쯤으로 설명하는 게 고작이다. 삼절법, 그 중에서도 중절을 이해(단련)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강유(剛柔)를 논할 수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이 보형(步型)이 이후 단권(單拳)과 투로(套路), 그리고 실전(實戰)에서는 어떻게 운용되고 변화되는가? 이런 이야기는 천하의 어떤 무예서(武藝書)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다. 명문가의 담장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배우지 않고서는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알려 주기 싫어서가 아니다. 몸과 마음으로, 즉 구전심수(口傳心授)하지 않으면 그 진수를 다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천하의 무예서들은 한결같이 ‘보형(步型)’은 설명해 놓았으나, ‘보법(步法)’을 설명해 놓지는 않았을 뿐더러 제대로 구분조차 못하고 있는 예도 수두룩하다. 대개 어떤 문파의 투로(套路)든 예외없이 균보(均步)로 짜여 있다. 《무예도보통지》도 균보법(均步法)으로 동작을 설명하였다고 그 범례에서 밝히고 있다. 이때에는 거의 바둑판처럼 진보(進步)와 퇴보(退步)로만 이루어진다.

초보적인 단계를 거쳐 좀 더 복잡한 투로를 익히거나, 같은 투로라도 능숙해져서 변화, 운용하려면 반드시 보법(步法)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호보(虎步), 창보(搶步), 압보(鴨步), 투보(套步), 편섬보(偏閃步), 체보(掣步) 등을 모르면, 기본 투로에서 한 발짝도 옮기지 못하고 평생을 균보로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들은 모두《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보법들이다.

그러니까 이것들의 의미와 동작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십팔기를 배운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당연히 응용도 못하고, 실전에서는 또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다. 사실 이런 것들은 무예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그래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적인 무예 용어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밖에도 호구(虎口), 호혈(虎穴), 곤살(滾殺), 체수(掣手), 제수(提水) 등등 수많은 무예 용어들이 있어 제대로 된 문중 사람이라면 설명 없이도 척척 알아들어야 한다.

특히 체보(掣步; 掣擊)는 유일하게 <조선세법(朝鮮勢法) 24세(勢)>에서만 나오는 보법으로서, 최고의 고난도 기술로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구사하기가 힘든 것이다. 해범 문중의 고수가 아니면 이해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시중의 어느 검도인은 이 체보를 발을 땅바닥에 질질 끄는 것이라고 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생겨나고 있다(지금의 검도 동작으로는 체격과 체보를 익히기가 불가능하며,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동안 중국의 여러 문파에서 <조선세법>을 기본으로 자신들의 검법을 정립해 나갔지만, 단 한군데에서도 이 체보(체격)를 이해하고 언급한 예가 없다. 당연히 아직까지 중국의 어떤 무예인도 이 24세의 실기를 온전히 해제한 적 또한 없다. 해범 선생께서는 “체(掣)를 이해한다면, 바야흐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무예의 가장 기본적인 호보(虎步)의 뜻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글쓴이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산중에서 무술을 닦는다는 이를 텔레비전을 통해 보다가, 호랑이걸음을 훈련한답시고 산비탈을 두 손 두 발로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배꼽잡고 웃었던 적이 있다. 그야말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면서 무예 운운 하는 꼴이다. 그러므로 이 체격을 구사할 줄 아는 무예인이라면, 당연히 그가 해범 문중에서 십팔기를 제대로 익힌 사람임을 잘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기본자세, 기본 동작, 단권, 그리고 서너 가지 권법 투로를 익힌 다음 약속 교전을 통해 권법의 응용 및 실전 연습을 한다. 그리고 검(劍)과 봉(棒)을 함께 익히면서 본격적인 무예 수련을 시작하게 된다. 당연히 각 병장기술마다 그에 따른 무수한 이론들이 앞서의 보형(步型) 설명처럼 따라붙는다.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이와 같은 과정을 착실하게 거치면서 무한히 능숙하게 동작을 익힌 다음에야 비로소 신법(身法), 경론(徑論) 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무언(武諺)에 이르기를 “권법을 백 번 익혀야 신법이 저절로 드러나고, 권법을 천 번 익혀야 그 이치가 스스로 깨우쳐진다”고 하였다.

근자에 십팔기를 연구하는 무예인들 중 스스로 《무예도보통지》의 원본에 따라 보다 닮게 복원한답시고, 옛스런 그림 동작을 똑같이 흉내내며 뒤뚱거리거나 요상한 포즈를 취하는 황당한 일이 있다. 역시나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다. 비단 《무예도보통지》의 동작 그림뿐만 아니라, 옛 그림 대부분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지만 각 세(勢)의 핵심적인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그 세(勢)의 의미와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그림을 보고 즉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집어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쓸데없이 군더더기 동작인 꼬꾸라진 어깨, 꺾어진 머리, 비틀린 팔다리 흉내를 내는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동작 그림은 한 세(勢)에 한 개만 그려 넣었기 때문에 무학(武學)이 없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전체적인 동작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지금의 사진처럼 연속 동작을 촬영해서 서너 개의 포즈라야 한 세(勢)가 완전히 드러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외한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예도보통지》의 그림 중 어떤 것들은 세(勢)의 완결 동작이 아닌 중간 동작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기본적인 원리도 모르고 흉내내기에 열중하다 보니 무기를 땅바닥에 질질 끌거나, 상대를 앞에 두고 엉뚱한 데서 칼을 돌리는 등 우스운 품새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그 실기를 전승해 오는 문중에서는 굳이 그림과 설명조차도 필요치 않다. 해범 선생이 《본국검》이란 책을 통해 《무예도보통지》에는 그림이 부족한 <예도>와 <조선세법 24세>를 완벽하게 재연해 놓듯이. 그저 세명(勢名)만 가결로 암기하고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해범 선생께서는 그동안 4권의 저서를 통해 십팔기의 이론과 실기를 모두 공개해 왔다. 또 공연이 있을 때마다 비디오로 찍어가 이곳저곳에서 전통 무예를 한다는 사람과 단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불과 1,2년을 배우고 나가 새로운(?) 종목의 문파를 만든 철없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기예들이 조금씩 나아져서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아쉽고 안타깝기도 하다.

모두들 실기 동작 흉내내기에만 여념이 없다. 직접 물어서 배우질 않았기 때문에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달리하면 어찌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들을 함께 가져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형식(式)만 가져가고 용법(法)은 전해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같은 십팔기를 해도 전혀 생뚱맞은 것이다. 그렇게 배워서는 평생을 수련해도 껍데기 몇 가지 흉내밖에 내지 못한다.

그 법을 이어온 전승자에게 묻고 배우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도 혼자서 스스로 깨치려면 수백 번을 다시 태어나 끊임없이 무예를 익혀도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긴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목숨을 건 경험에서 축적된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와 전통을 그토록 중히 여기는 것이다. 상대가 일 초식만 펼쳐보인다 해도 그것들이 다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걸 알아보는 이가 바로 고수이다.

일정한 법식에 따라 지속적으로 수련하는 것을 공(功)이라 한다. 비단 무예뿐만이 아니라 학문이든 예능이든 각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본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는 결코 공(功)을 이룰 수가 없다. 이 기본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집안을 명문가라고 하는 것이다. 담장 밖에서 익힌 것을 가지고 무예라고 떠들어대며 남에게 팔러 다니는 것은 자신과 남을 망치기 십상이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간판을 내걸고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몇 가지 무예 동작을 대단한 것인 양 내세우는 사람, 사이비 종교 교주처럼 희한한 몰골로 호객을 하는 무예인들, 산골짜기에 움막을 치고서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무예를 전수한답시고 극기 훈련이며 지옥 훈련을 시키는 이들, 백 몇 십살 먹은 도인에게서 비밀리에 배워 왔다는 고수들. 이 모두는 아무리 봐도 만화나 무협 소설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어른들의 ‘무예놀이’ 소꿉장난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뻔한 수작에 본색도 다 알 만한 사람들이지만 각자의 생업인지라 옆에서 뭐라 하기도 곤란하다. 하지만 과장이 너무 심하고 미신적인데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정신과 세월을 갉아먹고 있기에, 평소 “남이야 뭘 하든 간섭 말고 너나 잘하라”는 선생님의 꾸중에도 불구하고 얼핏 언급해 보았다.

한창 감수성 예민할 때 여기에 빠진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설이나 영화 같은 허황된 것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들의 머릿속에서는 항상 안개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어 언젠가는 자기도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고수나 신선될 꿈만 꾸고 있다. ‘도라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사회에 나가 무슨 일을 하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무예인이 아니다. 길거리(혹은 산속의) 약장수일 뿐이다. 무예는 미신이나 종교가 아니다. 과학이다. 그것도 지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