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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무예와 도가양생기공(道家養生氣功)을 이해하기 위한 서설
  글쓴이 : 박청정     날짜 : 07-11-15 17:30     조회 : 7547    

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기공과학과 졸업
한국무예원 무덕회 관장
현재 한국 도가양생기공회 수석연구원
저서 : ' 무예도보통지주해'




오늘날이 과학의 시대요, 기계문명의 시대라면 근대국가 이전에는 인본의 시대요, 정신문명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영(靈)과 육(肉)이 결합되어 있는 존재로 정신을 연마함과 동시에 기계문화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면 이상적인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태고로부터 인간은 먼저 정신문명을 개화시켜 왔는데, 오늘날은 기계문명이 발달하면서 인류의 무궁한 자산인 정신문명을 많은 부분에서 유실하였고, 일상의 생활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이 글들은 옛 기록을 통하여 이를 거론하고 기계문명과 균형을 취할 수 있는 정신문명의 복원을 시도하여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무예와 기공은 인간이 자연에서 도출한 가장 뛰어난 정신문명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상고시대로부터 우리 겨레는 ‘무예민족’이라 불릴 만큼 무예의 단련을 즐겨하여 무용(武勇)과 상무(尙武)의 나라로 이름이 높았고, 다른 이민족의 추앙(推仰)과 경모(敬慕)를 받아온 사실이 여러 동방의 서적에서 증명하고 있다.

인간의 몸은 내외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세포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기혈(氣血)이 전신을 운행하고 근골과 정신을 움직이면서 운동하는 유기체(有機體)인 것이다. 무예는 본래 이러한 인간 유기체에 잠재된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는 수승(修乘), 즉 수도(修道)의 목적으로 창안된 것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세(人間世)가 욕심으로 타락하게 됨으로서 무예는 적(敵) 또는 상대와 대적하여 나의 권리를 지키는 살상의 기술로 용도의 전이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봉건국가의 시대에는 군사들의 격자기술로 유효하게 발휘되었고, 지금까지 동양권에서 무예는 군사기술로 인식되어 왔다.

무용(武勇)의 기상이 남달리 뛰어났던 우리 겨레의 역사를 돌아보면, 문(文)을 숭상하는 지나(支那)의 풍습이 이 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오랜 시기 동안 우리는 무예의 단련하는 풍습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무예의 단련으로 활달한 기운이 사라지면서 대륙과 해양세력의 침습을 수시로 받게 되었고 사대(事大)의 모멸을 당한 불행을 겪게 되었다.

선비의 나라였던 근세조선에서 문장수업(文章修業)만을 장려하고 상무의 기풍을 폐기하더니 결국은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이란 전대미문의 양 병란을 당하여 백성들의 시체가 산과 들에 뒹굴게 되었다.

전쟁을 통하여 새삼스럽게 무비(武備)의 중요성을 통감한 조선 정부는 내치(內治)의 목적을 벗어나 국방(國防)을 위한 목적으로 전승무예와 당대의 선진 군사기술을 정리하여 우리 겨레의 표준무예를 새로이 세우게 되었다.

임진란 중에 훈련도감의 한교 선생이 《무예제보》를 정리하였고, 광해조에 훈련도감의 최기남이 《무예제보》를 보충하여 《무예제보번역속집》를 남겼으며, 이후에 영조 때에 섭정한 장헌세자가 《무예신보》를 편찬하였고, 정조 때에 겨레 무예의 결정판으로 《무예도보통지》가 편찬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무예 서적의 편찬 과정에서 국가가 정한 우리 무예의 공식적인 명칭으로 ´십팔기(十八技)´란 이름 석 자가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조선의 국방 무예였던 십팔기는 정조 때에 당시의 법전을 한 권에 묶은 《대전통편(大典通編)》에 군사조련과 무과시취의 과목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렇게 정립된 《무예도보통지》는 고대 무예가 기록된 유일무이한 군사무예의 전서(專書)이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온전한 한 세트의 군사무예를 정리하여 후손들에게 전수한 예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가장 훌륭한 전통의 무예 문화를 전수받은 것이다.

우리의 무예 서적에서는 이 땅과 백성의 생명을 지키려 하였던 옛 선조들의 뼈를 깎은 노력과 민족성이 스며든 기예와 병(兵)과 무(武)를 이해하는 남다른 사상과 정신, 그리고 무예의 용도를 자세히 전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록 문(文)의 나라였던 조선조에서 편찬한 서적이지만 우리 겨레의 상고 내지 고대에서부터 전수된 희귀한 무예사료까지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이어주고 있으니 참으로 ‘무예민족’이란 말이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라고 하겠다.

이러한 무예 서적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국민들은 일심(一心)으로 단결하고, 개개인은 심신을 튼튼히 갈고 닦으며, 외세로부터 우리의 주권과 생활 터전을 지키는 정신무장을 철저히 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본다.

선인들이《무예도보통지》에서 바라고 있는 오늘날의 무예 용도는 한 마디로 국민들의 후생(厚生)이다. 후생(厚生)은 ‘국민들의 삶을 두텁게 한다’는 의미로 오늘날의 의미로 말한다면, 바로 건강이나 양생이라 하겠다.

무예는 신체 내부에 에너지를 축적하는 내공(內功)과 일련의 무예 자세가 연결되어 음양(陰陽) . 강유(剛柔) . 허실(虛實)로 신체를 율동하는 투로(套路), 그리고 상대를 가상하여 공격과 방어로 구성한 공방(攻防)과 격타(擊打)를 담고 있으니 가장 탁월한 신체단련의 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군사기술로서의 용도가 없어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무예수련이 필요한 제1차적으로 중요한 가치는 바로 여기 국민들의 신체건강, 즉 국민보건(國民保健)에 있는 것이다. 무예는 과거 선인들의 정신과학에서 도출된 가장 우수한 건강법이라는 것이며 이를 계승하여 자신의 건강법으로 삼는 것은 바로 현실적인 지혜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는 왜정 35년의 시대를 지나면서 전통의 유산을 많은 부분에서 인위적으로 단절되거나 상실 또는 왜곡되어 버렸는가 하면, 광복 후에 연이은 산업화 . 민주화 . 정보화 . 서구화 . 세계화라는 숨 가쁜 사조 속에서 우리는 거의 모든 방면에서 전통적인 정신문화의 유산이 파괴되어 버렸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전통의 무예와 기공 문화를 다시 계승하고 수련하는 일은 작게는 개개인의 건강과 문화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일이며, 크게는 민족사적인 정통을 이어서 변화된 세기에 새로운 정신문화를 수립하여 대다수 국민들의 실질적인 복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

도가양생기공은 도가(道家) . 양생(養生) . 기공(氣功)이란 세 개의 용어가 결합되어 있는데 무예와도 필연적인 관계에 있다. 오늘날에는 생소한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아득한 상고시대로부터 전해져 온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개념을 따져보면, 무예는 기공의 한 부분으로 최상승기공(最上乘氣功)이 바로 무예이다. 기공 또한 양생(養生)의 한 부분으로 핵심적인 양생방법이 바로 기공이다.
양생이란 개념이 가장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양생(養生)은 글자 그대로 ‘생명을 기른다’는 의미이니 좋은 음식이나 보약을 먹어서 몸을 자양(滋養)하는 식이(食餌)와 약이(藥餌)도 모두 양생의 방법에 속하며, 목욕을 하거나 영화를 감상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독서를 하는 것 등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생명에 활기를 불어넣고 돋우는 행위들은 모두 양생에 속한다.

다시 말하여 양생의 한 방법이 무예와 기공이 될 수 있고 기공의 한 방법이 무예인 것이다. 기공(氣功)은 기(氣)에 관한 공부를 통틀어 말하며 여기에서의 기(氣)는 곧 호흡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흔히 기공이라 하지만 옛날 표현으로는 내공(內功)이라고 하였다.

기공의 수련방법에도 많은 종류들이 있다. 그러나 기공과 무예를 구분짓는 것은 바로 공격과 방어의 의식이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공방의 의식이 있으면 무예이고 그 이외에는 무예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호흡을 겸한 체조는 기공은 될 수 있으나 무예는 될 수 없는 것으로 기공이 무예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 되는 것이다. 즉 기공에는 무예가 속할 수 있으나 무예에는 모든 기공을 포함시킬 수 없다.

무예에는 우리나라 전통무예의 보전인 《무예도보통지》에 실려 있는 ‘십팔기(十八技)’ 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태극권 . 소림권 . 형의권 . 팔괘장 . 당랑권 등 여러 종목들이 있다. 청나라 말기에 이름 붙여 대중에게 선보인 태극권은 무예이면서도 대중이 배우기 쉬운 기공의 방법으로 계발된 것이다.

다만, 어떠한 무예 종목에서도 반드시 무예의 본질을 터득한 사부를 만나 체계적인 지도와 무학(武學)에 입각하여 무예 원리를 알려주는 인도를 받을 때 무예수련의 효력이 나타나는 것이지 종목이 무예라 하여 효력이 나타나는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여기에는 오히려 많은 함정들이 있다.

무예 공부를 성취하는 3대 요소가 있는데 첫째가 훌륭한 사부를 만나는 일이며, 다음으로 본인이 항심(恒心)으로 수련하는 일이며, 그 다음이 수련의 세월이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功)이란 노이적야(勞而積也)로서 쌓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효과적으로 무공(武功)을 쌓는 방법을 알려 주는 분이 바로 사부님이시니 훌륭한 무예의 선지식을 찾는 일이 첫째 조건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도가양생기공의 연원 및 내용이 기록된 문헌으로는 상고사서 《한단고기(桓檀古記)》를 위시하여 동방의 유(儒) . 선(仙) . 불(佛) 등 수많은 경전과 《황정경(黃庭經)》 또는 《동의보감(東醫寶鑑)》《내경(內經》과 같은 의서(醫書) 그리고 무예 서적에 두루 흩어져 전하고 있는데 오늘날 이를 복원(復原)하여 생활화 하여야 되는 이유는 전술(前述)하였듯이 바로 이 문화의 국민보건이란 가치에 있는 것이다.

도가(道家)란 《도덕경》에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하였듯이 자연을 본받아 지극한 인간의 정신수계(精神修界)를 도(道)라고 하고, 스스로 자연에 따라 자연에 부합하려는 일체의 수행 문중을 말한다.

중국에서의 도가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제한하고 다른 불가(佛家)나 승가(僧家) 또는 의가(醫家) 등과는 구분하고 있다. 그 두 가지란 소위 노자와 장자의 도학(道學)으로 법을 세운 도교(道敎)나 청정파(淸淨派)와 재접파(栽接派)로 대별되는 선가(仙家)를 이르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도가(道家)의 개념은 아무런 경계가 없다. 유불선(儒彿仙)이든지, 도교(道敎)든지, 의가(醫家) . 무가(武家) . 장가(將家) . 병가(兵家)든지, 하물며 서양의 종교나 학문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경계나 선이 없이 자연을 본받아 스스로 수행하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면 어느 곳에나 마음대로 드나드는 것이 한국도가의 특징이다.

필자는 예전에 어느 날, 해범(海帆) 스승님으로부터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 ‘도가국가(道家國家)’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개념은 한국인(韓國人)만이 가질 수 있는 관념일 것이며, 어쩌면 지구상의 모든 개념을 풀어야 하는 이 나라의 운명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예나 기공의 수련이나 제(諸) 종교의 가르침이나 모든 학문이 성명쌍수(性命雙修)의 학(學)을 벗어나지 못하니 어쩌면 쉽고도 당연한 논리일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일법(一法)을 통(通)하면 만법(萬法)을 통(通)하게 되고, 만 가지 진리는 하나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독자 제현님들에게 올리는 무예와 도가양생기공에 대한 설명은 필자가 공부해온 바, 그대로 우수한 이론과 실기에 기준하며 어느 학문 종교에도 국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도가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전언(傳言)과 수련의 본공(本功)은 있다고 하겠다.

또한, 21세기 벽두부터 시작된 문화의 세기와 더불어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 가면서 문화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문화의 전쟁이란 다른 표현으로 곧 정신의 전쟁을 말한다.

이러한 풍조에 따라 조국은 국외적으로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일본의 재무장이다 하는 일대 위기를 맞고 있으며, 학술도 하나의 문화전쟁의 일환이므로 이에 보조하는 입장에서 우리 민족의 주체성에 입각하여 옛 선인들의 글을 빌려서 전달하려고 한다.

독자 여러분!
저는 오랜 시간을 무예 단련에 집중해온 사람으로 글이 다소 경직스런 부분이 있더라도 넓게 이해하는 마음으로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