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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가의 무예와 저잣거리 무예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10-17 11:35     조회 : 6849    

◇ 십팔기 중 <권법>. 모든 무예를 익히기 전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종목이다.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 페르디낭 슈발(1838-1924)이라는 우편배달부가 있었다. 그는 항상 이상적인 궁전을 상상으로 그려 오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발부리에 채인 돌멩이를 보고서 문득 그 꿈을 실현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날부터 그는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시골길에서 눈에 띄는 예쁜 돌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3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홀로 밤늦도록 자신이 꿈꾸던 궁전을 지어 나갔다. 숲 속의 작은 궁전, 성, 사원, 집, 짐승의 우리, 굴, 나무 등등. 이 아름다운 궁전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안타깝게도 80년도 채 되지 않아 부서지고, 조각은 해체되고 마멸되어 가고 있다.

다른 대부분의 건물과 조각품들은 이보다 훨씬 오래간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주류 전통에 속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만들어져야 하는가, 또 만든 뒤에는 어떻게 보존되어야 하는가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지어지고 보존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시골 농부 겸 우편배달부의 작품은 아무런 전통도 없이 자신만의 상상에 의해 지어졌다. 한마디로 ´미친´ 농부의 소꿉놀이에 지나지 않은 작품이었다.

앞서 무예는 과학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좀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과학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인간의 온갖 지혜가 스며들면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 왔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만들어 온 문명에는 ´창조´란 결코 없다고 할 수 있다. ´모방´과 ´개선´, 그리고 ´응용´만이 있을 뿐이다. 제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앞서 축적된 과학 지식을 전해 받지 못한다면 새로운 성과를 이루어 내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훌륭한 스승의 지도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과학에는 축적된 수많은 공식과 법칙이 있다. 철학, 사회과학, 역사는 물론 심지어 문학이나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그 법식(法式)을 찾아낸 사람을 우리는 학자(學者)라 부른다. 또 그러한 행위를 공부(工夫) 혹은 학문(學問)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남들이 이미 찾아 놓은 공식, 법칙, 사실들을 단지 설명해서 전달해 주는 사람을 학자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학 교수라 해서 모두가 학자라고 일컬을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지식을 전달해 주는 월급쟁이일 뿐이다.

무예 또한 한 치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단지 여기에는 개인의 목숨, 나아가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으며, 항상 상대(敵)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속성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상대의 좋은 기술은 어떻게 해서든지 받아들이고, 나의 것은 상대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의 첨단 산업 기술 분야와 같다. 그래서 산업 혹은 기술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무예의 바로 이러한 특질이 정해진 기예만을 고집하는 일반 체육(놀이)과 구분되는 점이다.

예로부터 명문의 무가(武家)일수록 이를 더욱 엄격히 지켜왔다. 비단 무가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도가,불가 등 수양하는 곳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무가가 가장 엄격했는데, 문전제자(들락거리면서 배운 속가제자), 문안(문중)제자, 그리고 방안(입실)제자의 구분이 분명하여 그 가르치는 범위와 수준에 엄청난 차별이 있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한두 명의 입실제자 이외에는 그 문중의 무예를 온전히 전해 받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독자들은 당장에 무슨 무협지나 영화에서 보듯 문중의 비전절기를 몰래 한 명의 수제자에게만 가르쳐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반드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대개 똑같은 걸 가르치는데,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자질과 심성에 따라 가까이 두고 보다 깊이 있게 가르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특별히 차별해서 남달리 가르친다기보다 가까이 모시다 보니 보고 듣는 것이 다른 제자들보다 좀 많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 스승의 잔소리나 꾸지람을 남보다 더 많이 듣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곧 구전심수(口傳心授)한다는 말이다. 십팔기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무예도보통지》에는 열여덟 가지 무예 종목과 네 가지의 응용 종목, 그리고 두 가지 오락 종목이 실려 있다. 수많은 참고 자료와 해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무예 이론이 거의 없다. 단지 〈기예질의(技藝質疑)〉편에 명(明)의 허유격(許遊擊)과 한교(韓嶠)가 나눈 대담이 실려 있는데, 무예와 전술에 대한 원론적인 몇 가지 이야기뿐이다. 그리고는 각 종목마다 세명(勢名)의 동작 설명과 함께 총보(總譜)와 총도(總圖)로서 투로(套路)를 그려 놓고 있다. 심지어 동작 설명만을 따로 언해본으로 추가해서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도 누구든 따라 할 수 있게 해놓았다. 대개 이 정도면 웬만한 문중에서 제대로 배운 무예인이라면 그 동작들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웬만한´ 문중이 문제다.
 
구한말 임오군란(壬午軍亂)을 계기로 구식 군대가 해산되고, 한일합병과 함께 전설 속으로 사라져 버린 ´십팔기´라는 이름 석 자는 해방이 되고도 한참 후인 1969년 10월 3일(해범 선생이 처음으로 십팔기 도장을 개관한 날)에서야 비로소 다시 드러나게 된다. 유일한 전승자인 해범(海帆) 김광석(金光錫) 선생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이외에 누구도 십팔기를 하였노라고 나선 사람이 없다.

비록 십팔기가 역사적 굴곡에 의해 그 실기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무예도보통지》란 책이 있어 그 실기를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동작이 아주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해범 선생을 기다려서야만이 비로소 그 실기가 재연(再演)될 수 있었을까? 이는 앞서 지적한 대로 웬만한 문중에서 무예를 익힌 자가 그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책이나 비디오 등을 구하여 무예를 흉내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옛날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문중 사람이라 해도 입실제자가 아니고서는 평생을 가도 무예서 하나 구경할 수 없었다. 보통 사람이 무예를 배우고자 하면 담 너머 눈동냥으로 몰래 익혀 흉내내든지, 저잣거리에서 무예를 팔고 다니는 이들에게서 한두 가지 기예를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비록 저잣거리 무예라 하더라도 직접 배워서 익히지 않으면 한 동작도 제대로 흉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해범 선생이 나중에 펴낸 세 권의 책(권법요결, 본국검, 조선창봉교정)에는 실기는 물론이고 엄청난 무예 이론이 다 들어가 있다. 예전 같았으면 평생 무예를 수련할 입실제자가 아니고선 결코 접해 볼 수 없는 귀한 이론들이다. 세상에 내놓아 봐야 제대로 이해할 사람도 없을 텐데 하며 망설여지는 것들도 모두 다 실어 놓았다. 심지어 십팔기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도가(道家) 문중의 귀중한 수양법까지 내놓았다. 무예와 함께 익히면 더없이 좋을 것들이다. 공개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제자들간에 논란이 없지도 않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르기로 하여 아낌없이 실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내포된 품은 뜻과 변화는 실기를 완전히 익힌 다음 그 동작과 함께 다시 설명을 들어야만 깨우칠 수 있는데, 그 정도에 이르러야 비로소 무예의 참맛을 안다고 할 수 있다.

소싯적부터 십팔기를 익혀 온 해범 선생이 도장을 연 지 36년, 그리고 책을 펴내어 그 실기를 공개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었고, 또 수많은 공연을 통해 직간접으로 십팔기를 알리고 보급해 왔다. 덕분에 지금은 십팔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많이 나아졌고, 덩달아 이를 흉내내는 무예인과 무예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전통 무예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어디에 숨어서 무슨 무예를 하다가 갑자기 나타났는지 모르겠으나, 어쨌건 명분이나마 전통 무예를 한다고 하니 반가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본인이야 자기도취에 빠져 ´희한한´ 전통 무예를 하든지 말든지 상관없지만, 기인(奇人) 행색을 하고 하찮은 재주를 생업의 수단으로 팔고 다니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나 싶다. 그걸 무슨 대단한 무예인 줄 알고 따라서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리 너그럽게 봐준다 해도 무(武)자 근처에 닿지도 않는 기예들이다. 글쓴이도 이제까지 무(武)의 기역자 하나 제대로 아는 이를 만나 본 적이 없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스스로 안목을 키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재야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제도권 밖에서 공부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들 대부분은 스승이 없거나 있다손 치더라도 대개 제대로 학통(學統)을 밟지 않은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의 학문도 때로 훌륭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아 기초가 부실하고, 자신의 주장이 논리적인 비판을 받을 기회가 없어 외길로 쭉 가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자가당착의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 끝까지 고집하는 바람에 점점 옹졸해지고 편협해질 수밖에 없다.

수양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땡초´라는 말이 있다. 계통을 밟아 스승을 모시고 출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처님 앞에서 머리를 깎고 불도를 닦는 중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그 중에는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깊게 수양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앞에서 예로 든 우편배달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거울을 만들겠다고 평생을 벽돌 가는 일에 바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거나, 스승의 말 한마디면 알 수 있는 기초적인 문제를 혼자서 수십 년을 바쳐서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수밖에 없다.

"근본이 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혼자 골방에서 육법전서를 달달 외워 사법고시 합격한 사람과 명문대학에서 자타가 존경하는 스승 밑에서 체계적으로 법학을 공부해서 합격한 사람이 생각이나 품격 면에서 비슷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의사, 약사시험과는 달리 전공자가 아닌 아무나가 사법고시에 응시하도록 한 것부터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법의 정신, 법의 철학이 책이나 시험지만으로는 전해질 수 없는 것이다.

학문이든 기예든 그 맥과 전통을 고집하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무학(武學)은 더욱 그러하다. 수천 년 동안 몸으로 체득하여 대대로 전해져 오는 심오한 이론과 무덕(武德)은 때로는 말로, 때로는 몸으로, 때로는 마음으로 전할 수밖에 없다. 요즈음 해범 선생의 책이나 비디오를 보고 십팔기를 흉내내면서 스스로 복원했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신들은 《무예도보통지》를 보고 복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거의 대부분의 기예는 《무예도보통지》의 설명만으로는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결코 지금의 그 동작으로 복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전승이 아니면 불가능한 동작들이라는 말이다. ´짝퉁´이니 ´짜가´니 하면서 하찮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군데군데 연결동작은 해범 선생이 그동안의 경험을 가미시켜 더욱 높은 수준으로 재현해 놓은 것들도 많다. 전승의 기예에는 각 동작 하나하나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그 변화동작 등의 설명이 말과 실연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주입된다. 직접 전해받지 않고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명가의 무예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전승과 복원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수준차가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복원자의 안목으로는 도무지 그 점을 알아채지 못 할 따름이다. 무언(武諺)에 이르기를 "가르침이 엄하지 않으면 권(拳)이 바르지 못하고, 배움이 전일하지 않으면 권(拳)이 외람된다 敎不嚴 拳必歪, 學不專 拳必濫"고 하였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