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승자의 예(禮), 패자의 예(禮)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8-13 16:08     조회 : 5260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전국책(戰國策)》에는 “이기고도 교만하지 않으면 남을 감복시킬 수 있고, 스스로 단속하여 성내지 않으면 이웃과 화목할 수 있다 勝而不驕 故能服世(승이불교 고능복세), 約而不忿 故能從隣”(약이불분 고능종린)라는 글이 있다.

예전에는 미국의 타이거 우즈를 두고 골프황제니 뭐니 하면서 한창 떠들썩거리더니, 요즘에 들어서는 그가 우승을 하든 말든 그다지 큰 뉴스 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으레 하던 우승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다지 반갑게 들리지도 않는다.

처음 그가 어린 나이로 미국 골프계를 평정했을 때는 우리도 괜히 기분이 좋았다. 한창 반미 열풍도 불고 있었고, 유색인종이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골프계를 마음껏, 이름 그대로 호랑이처럼 필드를 휘젓는 것에 대리만족 비슷한 것을 느낀 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그의 성공은 웬지 별로 곱게 느껴지지 않았다. 골프가 어떤 것인가? 현존하는 스포츠 중 가장 신사적인, 에티켓을 중시하는 경기가 아닌가.

처음 어렸을 적엔 고함을 지르고 신경질을 부려도 사람들은 그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러려니 하고 귀엽게 봐주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걸핏하면 잘 안 된다고 골프채를 내리치며 신경질을 부려댔다. 우승을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황제라 칭하지만 인간되기는 한참 멀었었다. 오직 이기는 법만 배웠지 골프의 정신, 스포츠맨십은 못 배운 탓이다.

그의 경기를 보는 것이 즐겁지 않을 뿐더러 왠지 짜증이 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요즈음은 조금 철이 들어 예전 같지는 않다지만 어쨌든 그 후부터는 그가 나오는 경기 중계는 안 보게 되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각국의 선수단이 알파벳순으로 입장하게 된다. 엄숙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입장하는 각국의 선수단 대열은, 그러나 미국 선수단이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장내는 물론 대열 전체가 화들짝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른 나라 선수단과는 달리 미국 선수단은 대열이 있으나마나 완전히 제멋대로다. 엄숙했던 분위기가 난장판, 심하게 말하면 개판이 되고 만다. 그야말로 의례가 뭔지도 모르는 천박한 양키 근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뿐 아니다. 각종 경기 중 특히 미국 선수가 이겼을 때에는 역시 응원단이나 선수의 환호가 유별나게 요란스럽다. 거의 광분에 가까울 정도로 펄쩍펄쩍 뛰면서 발광을 해대며 괴성을 지른다. 간혹 한국 선수들도 이들에 비해 모자람이 없을 만큼 천박하게 환호하는 경우를 보여 여간 민망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 이겨서 금메달 땄으면 됐지, 무슨 잔소리냐고 하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올림픽 금메달은 각 종목마다 혹은 체급마다 4년에 한 개씩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 금메달을 위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10년 혹은 20년 세월을 땀 흘려 왔다. 마지막 결승까지 오른 선수 말고도 수많은 선수들이 그 과정에서 쓰디쓴 패배를 맛보고 밀려났다. 진정한 스포츠맨이라면 그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스포츠맨십이란 정정당당하게 겨루어 승자에겐 박수를 패자에겐 위로를 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승자의 미친 듯한 발광은 패자로부터 진정한 승복과 박수를 받을 기회를 날려 버리고, 또한 패자(결승까지 오지 못한 수많은 패자들까지 포함해서)에게 위로를 보내기는커녕 더욱 무참하게 만들고 만다.

전쟁이 끝나면 아군들의 시신만을 수습해서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 아니다. 죽은 적군의 영혼도 함께 위로하는 제를 올린다. 그런 후에야 논공행상이 행해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예(禮)이다. 승자든 패자든, 비록 적이라 해도 훌륭한 장수나 충직한 병사들은 마땅히 칭송해 주어야 한다.

또한 고수든 하수든 시합에 임할 때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천하제일의 무림고수가 한참 아래 하수의 도전을 받아 물리칠 때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비록 천하의 하수라 해도 상대는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오기 때문에 마땅히 이쪽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까짓 하수쯤이야 하고 대충 장난하듯 칼을 휘둘러 물리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모멸이자 승부의 예를 저버리는 것이다.

며칠 전, 영국의 축구단 맨유가 방한해 친선 경기를 갖고 떠났다. 그동안 한국을 방문한 그 어떤 선수단보다도 몸 안사리고 화끈하게 경기를 치러 많은 축구팬들을 열광케 해주고 떠났다. 보는 이로 하여금 “진정한 프로는 저런 것이구나” “진정한 츠포츠는 저런 것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해주었다.

예전에 한국 대표팀의 실력이 자기들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2,3류급 수준의 선수단을 보내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적당히 몸풀기 하듯 시합을 치르고서 훌훌 털고 가버리는 꼴을 우리는 수도 없이 당했다. 그때마다 기분이 어땠는가? 미국 프로 선수로 이루어진 농구팀들이 올림픽에서 장난하듯 깔깔거리면서 경기하는 모습을 본 세계의 시청자들은 어떤 기분이었는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시합에 임하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다.

무릇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만물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 식물이건 동물이건.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그 목숨을 취할 때에는 경건해야 한다. 사라지는 것에 욕됨이 없도록, 물러나는 자에게 부끄럼이 없도록. 그래야만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고도 패자로부터 존경과 박수를 받지 못했다면 그를 진정한 승자라 할 수 없다. 그래서 옛말에 “이겼으나 교만하지 않고, 패했으면 원망하지 않는다 勝而不驕 敗而不怨(승이불교 패이불원).”고 하였다.

세계 바둑의 제일인자인 이창호는 언제 누구와 겨루어도 항상 겸손하다. 상대가 누구든간에 항상 “열심히 배우겠다” “최선을 다하겠다”로 일관한다. 아무리 큰 기전(棋戰), 아무리 힘든 승리를 쟁취했어도 환호하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겨우 이겨서 미안하다는 듯한 계면쩍은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다. 그리고 대국 중에도 이왕 이길 바둑이면 상대의 돌들을 더 많이 잡아서 대승을 거둘 수 있는데도 웬만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 약간의 집으로 승리를 거둔다.

그게 바로 진정한 고수의 덕(德)이다. 그래서 진 사람들은 그가 진정으로 자기보다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고수든 하수든 그저 이번에 아깝게 졌으니 다음에 한 번 더 겨루면 이길 수 있을 듯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분발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깊이와 높이를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대국 중에는 유리하든 불리하든 표정에 변화가 없다. 진정한 무인은 누구에게도 그것을 내보이지 않는 법이다. 병법 《삼십육계(三十六計)》에서는 “빈 것은 더 빈 것처럼 보여서 적이 추측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虛者虛之 疑中生疑.”고 했다. 크게 이겨서 승리의 쾌감을 만끽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당신은 하수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심법(心法)부터.

여권의 후보는 아직 윤곽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야권의 두 유력 후보 간의 경쟁이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두 진영의 치고받는 싸움이 점점 격해지고 있다. 서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 그래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제발이지 품위만은 지켜 달라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 입을 열 때마다, 무슨 대단치도 않은 선심성 정책을 부자집 둘째 아들 주머니 풀듯이 쏟아내는 후보들의 전근대적인 사탕뿌리기식 공약이 국민을 또 다시 ‘쪽팔리게’ 한다. 국민을 구호품이나 적선에 손 벌리게 하지 말라. 그건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다. 유치한 흠집내기 싸움도, 떼거지 몸싸움도 역시 국민을 ‘쪽팔리게’ 한다.

좋아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존경할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이다. 경제를 살려서 배부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품위와 기강을 세워달라는 말이다. “쪽팔린다”는 말을 다시는 듣지 않게 해달라는 말이다. 지난 5년 동안 ‘쪽팔려’ 살아온 국민의 자존심을 세워 달라는 말이다. 그러면 국민은 다시 힘내어 열심히 일 할 것이고, 경제는 절로 일어날 것이다. 이건 상식이다. 상식만 통해도 경제는 절로 굴러간다.

경쟁은 공명정대해야 한다. 또 그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할 준비도 항상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었보다도 뒷말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지고도 이기는 길이며, 다음 시합에 출전할 자격이기도 하다. 인기와 존경은 별개이다. 덕(德)이 그 기준이 된다.

예로부터 무가(武家)에서는 “기예를 익히기 전에 먼저 사람이 돼라”고 하여, 그 사람됨을 중시하였다. 해범 선생께서는 항상 “천하의 어떤 고수(高手)를 상대로도 만합(万合)을 겨룰 수 있어야 하고, 천하의 어떤 하수(下手)를 상대로도 만합을 사양치 말아야 진정한 고수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