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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무덕(財閥無德), 권력무치(權力無恥)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8-13 16:05     조회 : 5288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재벌무덕(財閥無德), 권력무치(權力無恥)
엄(嚴)하지 않으면 강륜(綱倫)이 서지 못한다


한 재벌 회장의 폭행사건이 흐지부지 잦아들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구질구질한 추문을 끝없이 쏟아내고 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평소에 오죽 덕(德)을 못 쌓았으면 사람들이 저리도 모질게 돌멩이를 던질까 싶다. 처음에는 다소 황당하고 지나쳤다 싶더니만, 이제는 차라리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에서 오래 생활해 본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 교육에 있어서의 엄격함에 자주 놀란다고 한다.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엄격해지는데, 아이들을 동반한 모임이나 파티에 참석하다 보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찰싹!”“퍽!” 하는 소리들을 듣게 된단다. 자녀들이 버릇없이 굴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뺨이나 엉덩이를 때려 주의를 주기 때문이다. 어머니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나어린 소녀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가리키며 갑자기 무어라 소리를 지르자 그 어머니가 거침없이 소녀의 팔뚝을 꼬집는다. 옆에서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가차 없다. 그럴 때는 꼭 계모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단련이 된 듯 여간해서는 울지 않는다.

해마다 열리는 파리도서전은 서울도서전과 달리 아이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상히 여겨 물었더니,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덜 극성이어서가 아니라 동네마다 도서관이 잘 갖추어져 있어 굳이 데리고 나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나마 일요일에는 약간의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오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다니기에 그다지 눈에 띄지가 않는다. 간혹 이 부스 저 부스를 깔깔거리며 뛰어다니다 바닥에 주저앉거나, 복잡한 전시장 복도를 휘젓는 아이들이 있는데 예외없이 아랍계 혹은 아프리카계이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주말이라 해도 파리 사람들은 아이들을 잘 데리고 나서지 않는다. 지하철 승강장에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 중에도 아이들은 불과 대여섯 명에 지나지 않는데, 그나마도 어른들처럼 똑바로 서 있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요즈음 한국에서 공휴일 지하철이나 공원 등에 나가 보면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많다. 다 아실 터이지만 얌전히 오가거나 노는 아이는 드물다. 아이도 아이지만,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더욱 한심하기 짝이 없다. 도무지 제지하는 법이 없다. 도리어 대견한 듯이 바라보며 흡족해한다. 공원에서는 더욱 가관이다. ´아빠´라는 사람들은 더더욱 가관이다. 아이가 어른을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아이를 보고 배우는 것 같다. 아빠와 어린 아들이 같이 치고받으며 서로 반말을 해대고 논다. 언제부터 이 나라가 부모 자식이 서로 "야,자" 하면서 놀게 되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무래도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잘못 배운 모양이다. 오륜의 하나인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아마도 ‘부모와 자식은 친구처럼 지내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무릇 엄(嚴)하지 않으면 예(禮)가 제대로 서지 못한다.

예로부터 ‘엄(嚴)’은 ‘병가오덕(兵家五德)’의 하나로서 아주 중히 여기는 덕목이다. 특히 군중(軍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군(軍)은 국가 권력의 모체이다. 국가 구성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다루기가 힘들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조직이다. 나라 국(國)에서 무(武)는 밖으로부터 외적을 막는 수단이지만 언제 안(國, 궁성)으로 향할지 모른다. 무(武)는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반드시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한다.

상하 구분이 명확하고, 공과(功過)와 상벌(賞罰)이 분명하며 공평해야 한다. 공(公)과 사(私)의 구분이 확실해야 하고, 신(信)과 정(情)의 구별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지도자라면 남에게는 관대하고 인자하다 해도 자신에게는 더없이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랫사람이 믿고 따른다. 중세 유럽의 기사들이 지켜야 할 가장 주요한 계율(도덕규범)이 바로 ‘신중(愼重)’과 ‘절제(節制)’였다. 즉 ‘엄(嚴)’에 해당하는 덕목이다.

전쟁은 희생을 강요한다. 적을 죽이는 것이지만, 또한 그만큼의 자기 부하를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혹독한 것이고, 책임이 막중하다. 그러다 보니 군사(병영) 문화란 것이 한없이 경직되고 폐쇄적이며, 민간 문화에 대해 배타적이다. 각종 내부적 사고나 자신들의 과실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기를 꺼린다. 일본이 과거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숨기려 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집단 문화의 고질적인 병폐이다. 지(智)나 인(仁) 혹은 의(義)의 반려를 받지 못한 엄(嚴)이다. 이때마다 항상 들먹이는 말이 ‘군의 사기 저하’이다. 역시 재벌이 사고를 치면 벌 줄 생각은 않고,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들먹인다. 모두 비겁하고 옹졸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실수를 인정한다고 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근엄함을 고집한다고 위엄이 서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무인(武人)은 솔직하지 못함을 지극히 싫어한다. 변명과 몸보신은 무(武)의 정신이 아니다. 언제든지 목숨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언제든지 모자 벗을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그는 참다운 군인이 아니다.

IMF 이후 명예퇴직 때문에 일반 직장에서도 진급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는데, 요즈음 고위 공직에 오르는 게 당사자들에겐 여간 망설여지는 것이 아닐 터이다. 임명되자마자 과거의 몰염치한 행위들이 들춰지는 바람에 제대로 해먹지도 못하고 개망신만 당하다 쫓겨나오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는 단골 메뉴이고, 특혜, 뇌물, 인척 비리, 병역 기피 등을 이유로 중도 하차하는 일이 끊임없다. 모두 수신제가(修身齊家)를 못한 탓이요, 스스로에게 엄(嚴)하지 못했던 탓이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관료들의 엄격함과 투명함이 무엇보다도 우선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 당사자인들 법과 규정, 그리고 공직자의 윤리와 갖춰야 할 도덕규범을 몰라서 그런 짓을 했을 리 만무하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평소 엄(嚴)의 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면서도 그랬던 것이다.

사람의 도덕이나 윤리 수준을 면접이나 필기시험으로 알 수는 없다. 처음 뽑는 신입사원이라면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 물어보아서 그 사람됨을 추측해 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작자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과거 행적을 추적해 보면 금방 드러난다. 그 사람의 생각이나 양심을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의 행실을 묻는 것이다.

엄(嚴)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와 법률을 갖추었더라도 온전히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전엔 너도나도 관례처럼 행하던 편법 또는 불법 투기 때문에 아까운 관료를 자르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하지만, 사적인 일에 관용차를 사용했다거나 남보다 싸게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지탄을 받거나 쫓겨나는 외국(대개는 선진국들)의 예를 보면 그다지 큰일도 아니라고 봐야 한다. 이런 일은 현 정부의 개혁 정책 때문이라기보다는 세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일 뿐이라고 봐야 한다. 단지 그 속도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들만이 미래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속된 말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고들 하지만, 앞으로는 진짜 털어서 먼지가 안 나야 한다. 그것이 곧 세계화의 기준이다. 이 요건에 부합하지 못하고서는 미래, 아니 현재 세계에서도 결코 주도적인 국가가 될 수 없다. 기업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점점 더 엄격해져야 한다. 방심은 곧 나태로 이어지고, 결국 도태되고 만다.

조금 미안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해외로 도피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예로 들어 보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유행어를 남기며,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세계를 향한 도전의 꿈을 심어 주었던 그가 끝없는 도망자 생활로 자신의 업적과 명예에 먹칠을 해버렸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가 진작에 돌아와 당당하게 모든 책임을 지고, 죄값을 치를 것은 치르고, 용서를 구할 것은 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용(勇)과 절(切)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도 진정한 용기임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결국 한낱 장사꾼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런 그가 도망자의 신분으로 프랑스와 베트남을 오가며 이런저런 일로 재기를 꿈꾸고 있다는 기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하였다.

그런데 우리 모두 김우중 회장에 대해 간과한 것이 있다. 설령 외환 위기가 아니었더라도 어쩌면, 아니 필시 그는 지금쯤 비슷한 상황을 맞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의 대우그룹은 과거 군사 정권과 결탁하여 부실 업체들을 특혜로 인수받아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본인의 의욕(혹은 욕심)이 지나쳐 기업을 한없이 늘리는 데에만 열중했지, 제대로 관리하는 데에는 소홀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가 배운 1970-80년대식 경영 방식(즉 정경유착)을 계속 고집하다가 결국 배탈이 나고 만 것이다. 분명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세계에 나가려면 먼저 자신부터 세계 기준에 맞는 경영마인드를 갖추었어야 했다.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주저앉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갖추기는커녕 기본이 뭔지도 모르면서 OECD에 덜컥 가입해 놓고 우쭐대며 선진국 흉내나 내며 허구한 날 칵테일파티를 벌였으니, 주제를 몰랐어도 한참 몰랐던 것이다.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 한국에서 하던 주먹구구식 장사 수단으로는 선진국에서 통할 리 없고, 그때 그 시절 우리네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폴란드,, 인도, 베트남 등 후진국들을 오가며 옛 영광을 되살리고자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와 비굴하게 법과 씨름(?)하는 그를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세계는 넓고 후진국도 많다? 하지만 세계화 바람에 이제 후진국조차도 옛날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문 밖을 나서면 진퇴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구차해서는 결코 명(名)을 보전할 수 없다. 하물며 무예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선비가 세 치 혀로 화를 부를 수 있듯이, 무예 역시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부를 수 있다. 대개의 무예인들은 생리적으로 호전적이며 협기(俠氣)가 강해 행동이 앞설 때가 많다. 또한 호기(豪氣)가 지나쳐 큰 실수를 저지를 때도 있다. 자신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옛말에 “무릇 지혜로운 자는 망령되이 행동하지 않으며, 참 용기를 가진 자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무(武)를 사용할 수도 있다. 때문에 몸가짐을 항상 엄격히 하고, 긴장되어 있어야 한다. 비록 천하의 고수라 해도 한순간 술에 취하면 천하의 하수에게 그 목을 베일 수 있다. 매일같이 땀 흘려 수련했다 한들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넜다가 차에 치여 죽거나, 위험한 짓을 하거나 방심하다가 사고 나서 다친다면 무예인의 수치인 것이다. 술 담배를 즐기거나 평소 제대로 건신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수행인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막상 전쟁이 일어나 나가서 싸워야 할 때 어딘가 고장이 생겨 움직이지 못하는 전차와 같은 것이다. 유가적(儒家的) 인생관인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아 가정을 정돈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정한다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글 읽는 선비들만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엄(嚴)은 남에게 드러내고 강요하는 외덕(外德)이 아니다, 스스로를 갈고 닦아 절제하는 내덕(內德)이다. 인(仁)과 엄(嚴)을 갖추지 못하면서 권력이나 부(富)를 가진 자들을 우리는 탐관오리라 하고 졸부라 하여, 시기하고 미워하며 경멸하다가 여차하면 돌멩이를 던지는 것이다. 가진 것이 많아 재벌이지 하는 짓들은 시정 잡배만도 못하다. 정(情)과 연(緣)으로 출세하고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인(仁)과 엄(嚴)이 부족하다. 욕심만 많고 덕은 없다. 그래서 결국에는 패가망신하는 것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필귀정이고 정의구현이다. 그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가진 것과 덕이 비례해야 올바른 인간이고, 제대로 된 사회고, 건전한 국가다. 그게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아닌가? 상식도 통하지 않는 나라가 무슨 개혁이니 선진국이니를 들먹이는가.

옛글에 “경솔함이 많은 자는 차분하게 깊이 생각하는 식견이 없고, 두려움이 많은 자는 틀을 뛰어넘는 식견이 없다. 욕심이 많은 자는 비분강개하는 절개가 없고, 말이 많은 자는 진실한 마음이 없으며, 용기가 많은 자는 예술적인 고아한 품격이 없다. 그러므로 재주 있는 사람의 행동은 대부분 방종하니 바른 것으로써 단속해야 하고, 올바른 사람의 행동은 대부분 판에 박은 듯 딱딱하니 운치로써 융통성 있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