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대세를 따르겠다.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8-13 16:03     조회 : 5590    

안중근 의사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무예계(武林)에는 온갖 영웅담들이 회자되는데, 그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자객(刺客)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즘 말로 하면 암살자를 말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는 이들의 이야기를 〈자객열전(刺客列傳)〉으로 묶어 후세에 전하고 있다.

중국의 춘추(春秋) 말기에는 전문 자객의 출현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있었다. 그들은 민간에서 생활하며 부귀를 도모하지 않고, 절개를 숭상하여 용감함과 뛰어난 실력을 갖춘 무사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권신 혹은 귀족들과 친분을 맺으며 자신을 알아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였다. 《전국책(戰國策)》에는 당시 가장 유명했던 자객 예양(豫讓)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진(晉)의 예양은 권신 지양자(智襄子) 순요(荀瑤)의 중시를 받았고, 그를 절친한 친구로 여겼다. 후일 진에 내란이 일어나 권신들이 서로 다투어 지양자는 조양자(趙襄子) 무휼(毋恤)이 연합한 위(魏), 한(韓)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조양자는 지양자와의 원한이 뼈에 사무쳐 지양자의 머리를 베어 검게 칠하고서 술잔을 만들었다.

이에 예양은 지양자의 복수를 위해 성과 이름을 바꾸고 궁중으로 들어가 내시가 되었다. 한번은 세면장에서 몸에 칼을 숨기고 조양자를 찌르려 하였는데, 그만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양자는 그의 ´의로운 사(士)´의 품격을 크게 칭찬하고 그를 놓아 주었다.

하지만 예양의 굳은 맹세는 변함이 없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몸을 문둥병 환자처럼 꾸미고 석탄을 삼켜 벙어리 노릇을 하며, 수염과 눈썹을 밀고 저잣거리에서 구걸을 하였는데 그의 아내조차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조양자가 외출하기를 기다려 다리 아래에 매복해 있다가 죽이려 하였으나, 이번에도 역시 조양자에게 발각되어 붙잡히게 되었다.

예양은 처형당하기 전에 자신이 ´죽음으로 맹세한 의(義)´를 완성시켜 줄 것을 청했다. 그리고 검을 뽑아 세 번 뛰어올라 조양자의 옷을 맹렬히 찌르며 하늘을 우러러 "내 이제 구천에 가서 지백(智伯)에게 보고하겠노라!"고 소리친 후 칼을 입에 물고 자결했다. 그의 죽음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고, 조나라의 사(士)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디 중국에서만이겠는가. 신라 황창랑(黃昌郞)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오늘에까지 전한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십팔기 가운데 하나인 <본국검(本國劍)>이 이 황창랑에 그 연기(緣起)를 두고 만들어졌음을 설명하고 있다.

"<예도(銳刀)>와 같이 요도(腰刀)를 사용한다.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이르기를 "황창랑은 신라 사람이다. 언전(諺傳)에 나이 7세에 백제에 들어가 시중에서 칼춤을 추었는데, 이를 구경하는 사람이 담을 이룬 것 같았다. 백제 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불러들여 마루에 올라와서 칼춤을 추도록 명하였다. 창랑이 이 기회를 타서 왕을 찔렀다. 이로 인하여 백제국인들이 창랑을 죽였다. 신라인들이 창랑을 애통히 여겨 그 얼굴 모양을 본떠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었다. 지금도 전한다."

황창(黃倡)은 황창(黃昌)이라고도 한다. 곧 신라에 설치하였던 화랑(花朗)이다〔신라의 군신들은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데 근심이 없다. 미모의 남자를 취하여 장식시켜서 화랑이라 부르는데, 무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로 인하여 사람이 간사하고 정직함을 알아보고 가려서 쓴다〕. 술랑(述郞), 영랑(永郞)〔언전에 "신라의 술랑(述郞), 남랑(南郞), 영랑(永郞), 안상(安詳)이 통천(通川)의 총석(叢石)에서 놀았다"고 한다〕의 유와 같은 이들이다. 그런고로 황창랑이다. 화랑의 도중(徒衆)이 수천인이나 되었는데, 서로 충성과 신의를 갈고 닦았다. 또 신라는 왜국에 이웃하고 있으므로 그 춤추는 칼들이 반드시 전해졌을 것이나 상고할 수가 없다. 이제 황창랑으로 인하여 <본국검>의 연기가 된다."

시대가 바뀌면서 자객의 무기, 즉 암살의 도구도 칼에서 총으로 바뀌었다(기타 여러 가지 암기나 독약 같은 것도 많이 사용되었겠지만 그것들을 이용한 암살은 왠지 좀 비겁한 느낌을 준다. 암살 자체가 원래 비겁한 행위이긴 하지만).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자객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안중근(安重根) 의사와 안두희(安斗熙)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은 항일 운동의 대의명분에 정정당당한 자객이었고, 또 한 사람은 독립 영웅을 죽인, 말 그대로 암살자(왠지 안중근과 차별하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윤봉길(尹奉吉), 이봉창(李奉昌) 등 수많은 애국 자객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왜놈들의 앞잡이가 되어 애국 투사들을 죽인 암살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만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자객(암살)은 모두 무인의 몫이다. 설령 글 읽는 선비가 했다고 해도 그 행위는 무(武)의 영역에 속한다. 앞의 두 사람은 암살의 대상과 목적만이 서로 달랐을 뿐 고전적인 자객들의 행동 규범에는 일치하고 있다. 한 사람은 조국을 위해, 그리고 한 사람은 자신의 주군(이승만?)을 위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 안 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바이거니와, 심지어 일본인조차도 그를 흠모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니, 그 의기충천한 기개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그러나 안두희라는 인물은 무척 별난 사람인 것 같다. 그는 한편으로는 무인다운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무인답다 함은 죽을 때까지 몸을 피해 다니면서도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온갖 사람들이 집요히 그를 추적해 협박과 회유로 역사 앞에서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라 강권하였지만, 결코 주문자나 공범자들을 밝히지 아니하였다(그의 행위가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인답지 못했다는 것은, 왜 비루한 목숨을 진작에 깨끗이 스스로 정리(切)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다. 신(信)을 위해 의(義)를 버렸더라도 절(節)은 지켰어야 했다. 비록 흑도의 자객으로서 민족 앞에 못할 짓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퇴임 후 그들의 가신(혹은 부하)들이 감옥을 들락거리거나 다른 정권에 붙어서 지난 주인을 욕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마다 그들과 안두희를 비교해 본다. 그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것 같은 인사가 있는가 하면, 그보다 못한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이번 정권은 아예 태생에서부터 배신을 깔고 있다. 오직 저 살겠다고 하늘같이 모시든 주인을 물어뜯고 있다. 아무리 주인이 덕이 없고 무능하다 해도 이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그들만의 잘못인가? 신의를 우습게 알고, 배신을 눈감아 주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노대통령이 기어이 마지막 패감을 내밀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이 사표를 내고 당에 복귀하겠다고 했다.(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용도로 써먹겠지만서도.) 자신의 소속당에서조차 송장메뚜기 취급을 하지만 그는 끝까지 이 정권과 함께 하겠단다. 물론 아직도 욕먹음에 갈음할만한 빨아먹을 단물이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라앉는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조타수처럼 각오가 비장해 보인다.

아무튼 대부분의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그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돌봐준 주인을 끝까지 보필해서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이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그 의리 하나만은 높이 사주고 싶다. 개는 주인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쁜 놈이든 좋은 놈이든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신(信)과 의(義) 중 택일을 하라면, 의를 버리고 신을 지키는 것이 무협(武俠)이기 때문이다.

반노(反盧)로 돌아서 먹고 살자고 남의 집 처마밑을 기웃거리는 떨거지 정치인들에게 던지고 싶은 말이 있다. "차라리 안두희 무덤에 가서 잡초를 뽑으면서 신(信)을 배우라"고. 그 배신자를 받아주는 못난 정당이나 머저리 집단에게도 역시 똑같은 소리를 해주겠다. 국민, 아니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를 주저해서는 안된다. 잡초를 그냥두고 어찌 농사 잘 되기를 바라는가? 우리가 아무리 훌륭하고 능력있는 다음 지도자를 선택한다해도 지금같은 넝쿨 잡초밭에서는 제대로 농사가 될 턱이 없다.

무덤에까지 가지고 가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 대의(大義)와 대세(大勢)를 들먹이기 전에 신의(信義)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요즘 고액권 화폐에 들어갈 인물초상을 두고 각계가 서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인물을 내세우고 경쟁을 하고 있는데, 역시 철없고 볼썽사납다. 제발 이번에는 김구 선생과 안중근, 혹은 윤봉길, 이봉창 등 항일 독립 투사들의 초상을 넣었으면 한다.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일본 지폐에 그 초상이 들어가 있다. 굳이 그들과 비교하여 유치한 오기를 부려서가 아니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