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짚단베기와 벽돌깨기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8 11:52     조회 : 6614    

◇ 특기적성교육으로 십팔기를 배우는 서울 오금초등학교 학생들의 <곤봉> 시연 ⓒ신성대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하찮은 이야기 하나 늘어놓아야겠다.

조선 숙종 십팔년, 임금이 친히 관무재(觀武才)를 관람할 때, 박천(博川) 군수 양익명(梁益命)의 용력이 뛰어나다 하여 직접 불러 시험하였다. 그 자리에서 양익명은 주먹으로 돌을 쳐서 부수어 버리는가 하면, 네 사람에게 돌을 던지게 하여 모두 손과 발로 막아내자 임금이 감탄하여 그에게 큰 벼슬을 내리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좌의정 목내선(睦來善)이 아뢰기를 "저것은 무예라기보다 잔재주에 불과한 저격놀이일 뿐이니 대수로이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고 만류하자,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다는 기록이 《숙종실록》에 나온다.

예전 중국에서는 무술 도장들이 있으면, 그 문 앞에는 항상 잡상인들이며 떠돌이 무예인들이 판을 벌이고 있었다. 대개 물건을 팔기도 하면서 기예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업을 이어나가는 무리들이다. 조선시대에도 남사당패, 걸립패 등 전국을 떠돌며 기예를 파는 여러 예인 집단들이 있었지만, 이들 중 어느 집단도 무예적인 기예를 행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일제시대에는 신파극을 공연하는 유랑극단이 생겨나고, 또 서양식 기예를 파는 서커스단이 전국의 장터를 떠돌았다. 그리고 길가 난장에서는 약장수들이 차력(借力)을 보여주며 싸구려 약을 팔았다. 그들은 여러 가지 신기한 기예를 펼쳤는데, 특히 약의 효능을 강조하기 위해 초능력적인 강인한 힘을 보여주어야 했다.

대부분 눈속임이지만, 여러 잡기와 함께 무예에서 빌려온 것들도 있었다. 특히 일반인들이 만져 보기 힘든 시퍼런 진검으로 이것저것을 자르고 베는 시범을 보여주면 구경꾼들이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이들은 주로 이곳저곳 도장들을 기웃거리며 배운 몇 가지 초보적인 동작들을 잔뜩 엄숙하게 펼치는데, 대개 일본 만화나 영화 장면을 흉내낸 것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무예계에 이 짚단베기가 도입되어 각종 시범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고 있다. 관중들에게 긴장감과 섬뜩함을 주기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차츰 이 짚단베기가 무슨 대단한 무예의 기술인 양 선전하기 시작했다. 길거리 약장수들이 즐기던 잡기를 무예가 뭔지도 모르는 무예인(?)들이 익히고 있는 것이다. 실제 더 이상 길에서 약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어진 예전의 차력사들이 지금은 도장을 열어 무술인 행세를 하기도 한다.

짚단베기를 좋아하는 무예인(?)은 대충 이 방면의 출신이거나, 그들에게서 배운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칼로 짚단을 베고 대나무를 자르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식 칼장난에 불과할 뿐 무예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예전에 칼을 갈고 나면 옆에 있는 풀잎이나 가는 대나무 옆가지로 날을 살짝 시험해 보았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새 칼을 얻었을 때 내 손에 맞는지 한번쯤 길가의 풀을 베어 보기도 하였다.

요즈음 유행하는 대나무베기나 짚단베기 시범은 개나 원숭이 쇼와 다를 바가 없는 것들이다. 금방 베어온 싱싱한 당년생 대나무여서 아무나 비스듬히 휘둘러도 무처럼 잘 베어진다. 만약 마른 대나무 같으면 베어지기는커녕 칼날만 다 버리게 된다. 짚단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수십 일 전부터 물을 부어가며 푹 썩혀서 잘못 만지면 그대로 부서질 정도다.

진검이 아니라 나무젓가락으로도 자를 수 있다. 썩히지 않은 마른 짚단이라면 어림도 없다. 설령 그것들을 자른다 해도 그냥 뚝심을 자랑하는 것일 뿐 그것이 무슨 무예 기술은 아니다. 칼 장수가 칼을 얼마나 잘 갈아주었나에 달려있다. 마치 허수아비처럼 묶인 죄수를 세워 놓고 어떻게 하면 단칼에 멋있게 벨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지극히 유아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작패기나 소 여물썰기와 다를 바 없는 것들이다.

또 과거에는 벽돌이며 기왓장, 맥주병, 송판, 각목 등을 주먹이나 발, 심지어 이마로 깨부수는 시범을 많이 보였었는데, 상대나 관중들로 하여금 내가 이 정도로 강하니 아예 덤빌 생각 마라는 경고 또는 과시용이었다. 역시나 그 자체가 무슨 무예의 기술이 되지는 못한다. 보는 그대로 겁주기용 행사였다. 예로부터 그런 것들을 모두 일러 ´잡기(雜技)´라 하였다.

 
불과 1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죄인에 대한 사형 집행은 충격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공개석상에서 행해졌다. 특히 참수형은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는 그 시대 사람들에겐 꽤 괜찮은 볼거리였다.

제2차 세계대전중의 일본군의 잔학한 행위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중 중국을 침략하면서 저지른 난징대학살은 지금도 중국인들의 치를 떨게 한다. 당시 일본의 일간 신문에는 중국 포로를 상대로 목베기 시합을 벌인 일본군 장교들의 이야기가 연일 실려 일본 국민을 열광케 했다. 포로들을 한 줄로 길게 꿇어앉혀 놓고 정해진 시간에 누가 더 많은 목을 베는가를 두고 내기를 벌인 것이다.

사람을 가지고 망나니가 아니라 개망나니짓을 벌인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짚단베기가 그 개망나니 일본군에게서 유래된 것은 아닌지? 사람 목 대신 썩은 짚단이라도 베어서 함께 그 기분을 느껴 보자는 것이다. 짚단베기는 망나니의 목베기 연습일 뿐 결코 무예가 아니다. 어줍잖은 몇가지 칼 동작을 섞어 엄숙한(?) 칼춤을 추며 짚단을 싹뚝 싹뚝 잘라 망나니춤을 추는 것이다.

대개 어떤 무예(호신술)가 개발되어 시장에서 뿌리를 내리자면 아무래도 어떤 과격한 전술이 필요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최배달이 만든 극진(極眞) 가라테이다. 조선인으로 일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이러한 방법을 최대한으로 이용했다.

1960-70년대 한국에 무술 도장을 연 화교 쿵푸인들과 해외에 맨몸뚱이 하나로 코리안 가라테 태권도를 전파한 초기 개척자들도 역시 그러했다. 먼저 현지의 기존 도장과 동네 왈패들의 기를 죽여야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주먹이 바스러지고 몸이 부서지도록 무엇이든 깨부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해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대개 60세 전후에 단명하였다. 그것도 하나같이 몸이 다 망가져 말년을 고통스럽게 살다갔다. 측근 이외에는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걸음조차 제대로 걸을 수 없었음에도 수많은 제자들 앞에선 건장한 듯이 억지로 버텨야 했다.

제대로 된 고급한 무예를 배우지 못하고, 몸을 망가뜨리는 기격 격투술을 대단한 무예인 양 착각했던 것이다. 무예에 무지한 탓에 미련하고도 불행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었다. 모두 무예를 수양의 방편으로 여기지 않고, 호신용 기격술을 생계 수단으로 삼는 바람에 생긴 현상들이다.

강하게 단련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빠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몸을 망쳐 성취는 고사하고 치유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부작용을 반드시 가져온다. 명문가에서는 절대 삼가는 수련법이다. 한번 망가진 몸은 절대 원상복귀 되지 않는다. 한창 젊을 때에는 모르고 그냥 넘어가지만, 40대 중반을 넘어서기 무섭게 일기예보관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요즈음은 태권도 시범에서도 과거와 같이 벽돌이나 가와장 대신 얇은 송판이나 풍선을 사용하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부드럽게 꾸준히, 그리고 평생을 단련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상승의 무공을 이룰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고강해지는 것이 진정한 무예이다. 젊은 혈기와 힘만으로 하는 것은 무예가 아니다. 그건 단지 체육일 뿐이다. 일반노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운동이든 예능이든 어떤 목적을 위해 신체의 일부만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거나 단련시키는 것은 결과적으로 몸을 망가뜨리게 된다. 아무리 인기 있는 스포츠라 해도 결국은 노동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그건 체육만도 못한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 경기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신체의 일부분을 혹사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의 몸은 머리털이나 손톱 하나까지도 보호의 대상이다. 도구로 삼아 단련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또한 필요 이상으로 팔, 다리 등 신체 부위를 비틀고, 꼬고, 늘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저 남보다 별난 재주를 가졌다는 것밖에는 별다른 가치가 없는 행위이다. 신체의 어느 부분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공력을 기르는 것이 바로 무예이다.

해범 선생께서는 "근육의 힘만으로 하는 하급 무예나 운동은 3년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3년을 수련하나 10년을 수련하나 별 차이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몸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무예와 일반 체육의 서로 다른 점이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