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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武)의 개념과 정의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8 11:50     조회 : 6968    

◇ 십팔기 중 권법 그림 ⓒ 데일리안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중국 갑골문에서 무(武)자는 ‘지(止)’와 ‘과(戈)’로 이루어진다. 이는 한 개의 창과 발을 구르는 모양으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즉 창을 들고 춤을 추어 무공의 성취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 창춤이다. 춤출 무(舞)자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인류가 석기시대에 이르러 가장 먼저 개발한 도구(武器)가 바로 도끼와 창이다. 그리고 점점 칼, 바늘, 화살촉, 낚시바늘 등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 이전에는 단순히 돌멩이나 몽둥이로 짐승을 잡거나 적을 공격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원시 부족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대 인류에겐 창이 가장 일반화된 무기였다. 또한 이웃 부족과 전쟁을 하러 나가기 전에 전사들은 함께 창을 들고 춤을 추며 신의 가호를 비는 의식(儀式)을 치렀다. 그 춤이 곧 그들의 전통 무용이다. 이처럼 무(武)와 무(舞)는 같은 줄기에서 출발하였기에 그 몸짓이 같거나 유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 나라의 민속춤을 연구하려면 반드시 그 나라의 전통 무예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식(儀式)을 위해 예(禮)와 악(樂)이 함께 생겨났다.

그렇다고 아무나 무기를 들고 휘두른다 해서 모두 다 무예(武藝)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예란 병장기의 발전과 더불어 전문적으로 공방(攻防)과 살상(殺傷)을 담당하는 무사(武士)가 생겨나면서부터 구체화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순한 자위 동작으로 맨주먹을 내지르거나 무기를 휘두르는 것과 같이 무(武)는 있되 기(技)가 없는 것은 무예라 일컫지 않는다. 무예란 상대로부터 단순히 나를 보호하거나, 상대를 제압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무예의 목적은 분명 상대의 살상(殺傷)에 있다.

‘무예(武藝)’라는 명칭은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진대(晋代) 초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무술(武術)’ 역시 중국의 《문선(文選)》 가운데 남조(南朝) 시기 안연년(顔延年)이 지은 한시에 처음 나타난다. 중국의 위진육조(魏晉六朝)에서 수당(隋唐)에 이르는 7백여 년은 무술이 크게 진흥되던 시기여서, 근대 무술의 많은 현상이 이 시기에 배태되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무예라 부르는 맨손 격투기예, 즉 수박(手搏)이나 각저(角抵)에 속하는 것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무예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기를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는 수박희(手搏戱) 또는 각저희(角抵戱)라 하여 궁중 연회에서 놀이로 행해졌었다. 후대로 가면서 이것들을 통칭해서 권술(拳術) 혹은 권법(拳法)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무예를 익히기 위한, 즉 병기 기술을 익히기 위한 기초적인 도수기술(徒手技術)에 속하는 것들로서 무예인이라면 누구나가 반드시 익히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권법 자체만으로는 무예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으나 충분조건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권법〉편에서는, 척계광(戚繼光)이 “권법은 흡사 큰 싸움의 기예로는 예비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수족(手足)의 활동과 지체(肢體)를 부지런히 하는 버릇은 (무예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의 입예(入藝)의 문이 된다”고 한 예를 들어 위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권법류를 익히면서 병기 기술을 익혀야 비로소 무예인이 되는 것이다. 만약 병기 기술을 익히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고 권법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곧 호신술, 건신술, 또는 놀이(戱)라고 해야 옳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대의 군사 오락, 혹은 군사 체육인 것이다. 단지 지금과는 달리 고대에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싸웠기 때문에 군사 체육 역시 지금보다 훨씬 과격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궁중이나 군중(軍中)에서 수박이나 각저는 물론 활쏘기와 함께 격구(擊毬) 시합을 자주 행했었는데, 이는 군사들의 훈련 상태 점검을 겸한 놀이였다. 그리고 민간에서도 여러 가지 편싸움 놀이가 있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우리나라 민속놀이 중 차전놀이, 석전놀이, 쇠머리대기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히 호전적이며 전투적인 놀이들이 많았다. 이런 집단적인 시합들은 평소에 전투를 모방하거나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외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적인 훈련을 겸하고 있었다. 때문에 시합은 격렬해져서 전쟁터를 방불케 했으며, 이를 통해 묵은 알력이나 경쟁 상황을 해소하기도 하였다. 물론 시합 중에 일어난 불상사에 대해선 처벌하지 않았다.

‘체육(體育)’이라는 용어는 원래 고대 동양에서는 없던 말이다. 이 용어는 1890년경 일본인들이 서양의 ‘physical education’을 번역하면서 만들어 낸 조어이다. 동양에는 대개 ‘무예(무술)’ 아니면 ‘잡기(雜技)’ 또는 ‘놀이(戱)’였다. 이외에는 별달리 대신할 만한 용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스포츠는 무술과 잡기의 중간쯤으로 이해되거나, 잡기 혹은 놀이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놀이든 잡기든 스포츠든 그것들 대부분은 고대 무예에 그 기원을 두고 분화되어 발전해 왔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렇지만 맨손 격투기예가 결코 무예가 될 수 없듯이 스포츠 역시 무예가 될 수 없다. 강물이 거슬러 흐를 수 없듯이 스포츠가 다시 전통 무예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또 이제 와서 굳이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역사적으로도 개인용 화포병기, 즉 총이 개발되면서부터 더 이상 무예(엄밀하게 말하자면 고대 무예)가 발전하지 못하였고, 또 새로이 생겨나지도 않았다. 이후 그 효용 가치를 잃은 무예들의 몇 가지 기본 동작들이 남아 체육 혹은 스포츠, 호신술로 변형되었다. 펜싱, 양궁, 창던지기 등은 고대 무예에서, 사격은 현대 무예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 외에 많은 것들은 차츰 용도 폐기되어 갔다.

1972년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제20회 하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북한의 사격 선수 이호준은 “적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고 말해 세계인들을 아연케 한 적이 있다. 운동 경기와 무예를 구분하지 못한 데서 생긴 웃지못할 사건이었다. 전쟁에서 병사들이 활을 쏘면 무예이지만, 선비들이 활터에서 기생들과 어울려 오락으로 활을 쏘는 것은 놀이가 되는 것이다. 비록 군인이라 해도 군부대에서 사격 연습을 하는 것은 무예의 수련에 해당되지만, 태릉선수촌에서 총을 쏘는 것은 스포츠가 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용어의 구분이나 개념에 대한 상식이 없다 보니 아무 데나 ‘무술’ 혹은 ‘무예’를 갖다붙이고 있다. 검도와 태권도는 분명 유도나 레슬링, 권투와 마찬가지로 운동 경기 종목이고, 택견은 씨름처럼 놀이의 하나이다. 무예와는 한참 멀다. 굳이 붙이자면 호신술이어야 할 것이다.

해범(海帆) 김광석(金光錫) 선생의 《권법요결(拳法要訣)》에는 “전통무예란 그 나라의 전승 문화를 기초로 하여 공방(攻防)의 의미를 포함한 기격(技擊) 동작을 주요 단련 내용으로, 공법(功法), 투로(套路), 격투(格鬪)의 운동 형식을 갖추어 내외(內外)를 함께 수련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필자가 이렇게 무예의 개념과 정의에 천착하는 이유는 어떤 분야든 바른 역사라야 바른 정신을 심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헛된 역사에는 헛된 정신 밖에 심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