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전통무예와 호신술, 그리고 놀이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8 11:49     조회 : 6463    

◇ 장창과 월도의 교전.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십팔기보존회 ⓒ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흔히 사람들은 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칭 무예를 한다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학계에서도 이에 대해 명확한 구분을 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범(海帆) 선생이 지은 《본국검(本國劍)》이라는 책을 보면, 보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무예는 ´자위적 본능의 방어 기술이 축적되고, 병기의 발전과 더불어 전문적으로 공수(攻守)와 살상(殺傷)을 담당하는 무사(武士)가 등장하면서 구체화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간단하고 쉽게 말하자면, 무예란 ´무기를 사용하는 기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전통 무예란 전통적인 무기를 다루는 기예를 말한다. 즉 무예란 자신의 방어와 적의 살상을 목적으로 병기를 가지고 법(法), 기(技), 술(術)에 따라 체계적으로 끊임없이 능숙해지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무예의 족보인 《무예도보통지》의 〈기예질의(技藝質疑)〉편에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전하는 것은 궁시(弓矢) 한 가지 기예만 있고, 칼과 창은 헛되이 기기(器機)만 있으며 익히고 쓰는 법(法)이 없다"라고 통탄하였다. 다시 말해 무기도 있고 병사도 있지만 이를 다루는 기예, 즉 무예가 없었다는 말이다.

이로써 우리는 무예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일반 사람이 낫이나 곡괭이를 들고 적과 싸웠다고 해서 그가 무예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역시 저잣거리의 깡패가 아무리 주먹 싸움을 잘한다 해도 그를 무예인이라 불러주지 않는다. 그냥 싸움꾼일 뿐이다. 그 싸움은 어디까지나 상대를 혼내 주기 위한 것이지 살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비록 병사라 하더라도 그 기예를 익히지 않고 전투에서 병장기를 휘두른다면 그 역시 무예인이라 칭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무기를 다루는 법을 알고는 있다지만 스스로 그 기예를 몸에 익히지 않았다면 그를 무예인이라 일컬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록 작대기라 하더라도 그것을 무예인이 휘두를 때에는 무예가 될 수도 있다.



문명화된 인간의 모든 움직임, 즉 무예든 춤이든 운동이든 그것이 나름대로의 법(法)과 식(式)에 따라 능숙하게 숙달되어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표출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기예로서 고유한 이름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정조대왕은 앞서 사도세자가 완성한 열여덟 가지의 병장무예 종목에 비로소 <십팔기>란 고유명사를 붙이고, 이를 후세에까지 교본으로 남기게 하였다. 그것이 바로 오늘에까지 전하는 《무예도보통지》인 것이다. 이 <십팔기>는 고대 전통무예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총망라한 종합 무예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이것 이외에 다른 어떤 무예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조선의 멸망과 함께 그 빈자리에 일본의 스포츠화 된 무도인 검도(劍道)와 유도(柔道)가 강제로 이식되었으며, 해방 전후에 시중에는 호신술인 가라테(空手道)와 합기도(合氣道)가 들어와 오늘날까지 전통 무예인 양 행세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원시적인 몸짓, 혹은 무예의 한 가지에서 분화되어 나온 스포츠나 호신술을 무예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이 되고도 아직도 친일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고 곳곳에 그 잔재가 남아 있는 것처럼, 식민 지배로 인해 강제로 이 땅에 이식된 일본 무예 역시 조금도 청산되지 않고 있다. 검도, 유도, 합기도, 가라테 등 일본 무예(호신술)가 아직도 남아서 전통 무예를 대신하고 있다. 특히 그 중 가라테는 해방 후 태권도로 개명하여 한국 무예(호신 스포츠)를 대표하고 있다. 그리고 1970년초에 불어닥친 중국 무협 열풍과 함께 ´쿵푸´가 몇몇 화교 무술인들에 의해 퍼져 나갔다. 이어서 1990년대 한중 수교와 함께 ´우슈(武術)´가 체육 종목으로 수입되었다.

그리고 1986년 ´택견´을 무예 종목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는데, 여기에는 큰 오해와 실수가 있었다. 분명한 사실은 택견은 무예가 아니고 놀이다. 천하의 어떤 문헌에서도 택견을 무예라고 한 적이 없다. 씨름과 더불어 놀이(戱)에 불과한 ´택견´을 전통무예로 지정해 놓은 것도 이처럼 무예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는 상태에서 저질러진 어처구니없는 실수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외에 자칭 전통무예임을 내세우는 무예인들이 1970년대 들어서서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모두가 기존의 무예인들이 새로운 상품으로 만든 것들이다. 역사적이고 문헌적인 근거가 전혀 없으며, 대개는 십팔기나 중국 무술을 흉내내어 만든 것들이다. 일본 무도 혹은 중국 무술을 조금씩 익힌 자들이 자신의 생업을 위해 신라, 백제, 고구려시대의 그 무엇을 들먹이거나 불가(佛家) 혹은 도가(道家) 이름을 팔아서 창안(?)한 것들이다.

이와 같은 근대 무예사의 혼동으로 인해 태권도와 택견이 우리 무예를 대표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학계는 물론 국민 모두가 이 두 가지 종목 이외에는 전통무예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게끔 되었다. 그것도 근 1백 년 동안이나. 그렇다면 이 나라는 오직 맨주먹으로 수천 년을 지켜왔다는 말이 아닌가. 아니면 농민들이 낫이나 곡괭이로 외적을 물리쳤나? 나라가 있으면 군대가 있고, 그 군대에는 당연히 수많은 무기와 그것들을 다루는 기예가 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해범 선생이 일찍(69년)부터 <십팔기>를 알리고 보급해 온 결과 전통 무예에 대해 날로 관심이 커지고,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각광을 받게 되자 너도나도 전통 무예를 한다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이러한 무예의 개념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다.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학계에서도 전통무예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있지만, 모두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두서없이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체육학계 위주로 되다 보니 무예 주변의 놀이 혹은 스포츠, 그리고 이와 유사한 온갖 것들을 모아 전통무예란 이름으로 뭉뚱그리려는 경향이 있어 더욱 염려스럽다. 오히려 학계라면 이를 더욱 명확하게 구분지어 주어야 할 텐데 말이다. 연구하는 본인들 자신이 대개 그 종목의 전공자들이거나 이러저러한 이해 관계에 있다 보니, 이 방면의 논문이나 책자들은 그저 자기 미화와 견강부회가 지나치다 못해 사학계나 민속학계에서 보면 웃지도 못할 만큼 황당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할 텐데 손가락을 쳐다보는 것이 현재 체육학계의 무예 연구 수준이다. 이제 조금씩 우리 무예사를 연구하는 단계이다. 모두 《무예도보통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만, 아직 자기 나라 무예의 명칭조차도 제대로 모르고서 헤매고 있다. 먼저 <십팔기>가 있어 이를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 그 교본으로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는데, 《무예도보통지》가 있어서 <십팔기>가 나온 줄 알고 그 책만 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시작부터) ´24반´이나 ´24기´가 무예 명칭인 줄 알고 너도나도 들먹이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십팔기를 수련해 본 적이 없는, 그래서 십팔기가 뭔지도 모르는 학자들의 전통무예 연구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맞춘 것이다.

광역의 의미에서 호신술이나 스포츠도 무예에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지만, 그건 학문을 하는 자세가 아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인심이 후해서야 되겠는가. 무예와 놀이(호신술, 체육, 스포츠)는 먼저 목적에서부터 달라진다. 당연히 그 정신도 다르다. 무예를 이들과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이후의 글들에서 설명하여 나갈 것이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