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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禮)와 무예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8 11:48     조회 : 6071    

◇ 필자의 지도로 십팔기 중 월도를 시연하고 있는 국방부 전통의장대. 청와대앞 광장. ⓒ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옛글에 "높은 곳에 오르면 사람들은 멀리 바라보고 싶어하고, 깊은 연못에 임하면 그 물속을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왜 그런가? 이는 그 처한 곳이 그렇기 때문이다. 또 말을 모는 자는 공손하게 하고, 활을 쏘는 자는 단정하게 한다. 어째서 그런가? 이는 그런 모양이 마땅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고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 강제 조직인 족(族)의 갑골문은 깃발과 화살을 그려넣은 모양으로 곧 군사 조직을 뜻한다. 이 족(族) 내부에서의 행위 규범은 모두 예(禮)에 결집되어 있다. 국가 이전의 조직 단위인 족(族)에서는 예(禮)가 곧 법(法)이었던 것이다.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이르러 유가 사상이 발현하면서 예(禮)는 인(仁)과 더불어 사회 정치 제도의 중요한 윤리규범이자 도덕관념으로 자리잡는다. 특히 순자(荀子)는 예(禮)를 도덕 수양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창하여 법(法)의 근본이자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근본이라 하였다. 그는 또 "예(禮)의 원칙은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 사이에는 등급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별이 있어야 하며, 가난한 사람과 부자,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 사이에는 모두 저울질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당시 학교에서는 주(周)대로부터 내려오던 육예(六藝), 즉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가르쳤다. 고대 초기의 학교는 원래 미성년자들이 모여 군사 훈련을 받던 곳이었다. 당시에는 제사와 무술이 국가의 대사였으므로 학교는 군사 훈련(射, 御)과 제례(禮, 樂)를 주요 학습 내용으로 삼았으며, 글을 익히고(書) 셈을 배우는 것(數)은 이를 위한 기초 지식일 뿐이었다.

원래 사(士)는 중국의 선진(先秦) 시기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들은 검(劍)을 숭배하여 무술에 뛰어난 특수 집단으로서 평민보다 높은 계층이었다. 이 시기는 검(劍)을 좋아하는 기풍이 농후하였는데, 무예와 용맹을 추종하는 일종의 가치 취향이 형성되면서 전문 무사 계급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오랜 기간 동안 사(士)의 계층은 곧 무사(武士)를 의미했다. 춘추 시기에 와서야 비로소 사회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사(士)가 분화되고 변질되기 시작하는데, 유가(儒家)의 창시자인 공자(孔子) 역시 무사(武士) 집안에서 태어나 문사(文士)가 된 인물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최상층 사회 귀족들이 독점하던 예악(禮樂) 문화를 일부 사(士)들이 배워 전문적으로 문사(文事)에 종사하게 되면서 문무(文武)가 본격적으로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함께 신(神)을 모시는 일, 즉 신사(神事)에만 소용되던 예악(禮樂)이 비로소 민간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후 무(武)는 군사 무예와 민간의 무협(武俠)으로 나뉘어 흘러가게 되지만, 여전히 예(禮)는 무인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규범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처럼 예(禮)는 고대로부터 문자(文字), 악(樂)과 더불어 권력을 잡는 수단으로서, 그 기원은 제사의 의례(儀禮)에서 시작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무사(武士)는 평민보다 상위 계층의 특수한 신분이었고, 그에 따른 예법이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특히 무사들간의 예법은 민간 예법과 다른 독특한 점도 많았다. 영웅이나 고수(高手)를 존경하고 깍듯이 받들었으며, 심지어 적이어서 어쩔 수 없이 죽이는 경우에는 그의 명예에 흠이 가지 않도록 예(禮)를 다했다. 또한 하수(下手)라 해도 결코 무시하지 않았으며, 인내와 덕(德)으로서 맞아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무사는 목숨을 내걸고 서로 다투는데, 목숨은 누구에게나 다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禮)는 그 나라의 전통 문화를 자양분으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나라마다 조금씩 그 특징을 달리한다. 독특한 무예 사회를 이루었던 중국의 무림(武林)에는 그들만의 예(禮)와 규범이 형성되어 민간 사회와 확연히 구별되었다. 또한 일본 무사도의 경우 무예의 수련과 함께 예법을 통해 높은 정신적 경지인 도(道)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엄숙주의로 흘러 상대를 배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흔히들 ´예로 시작해서 예로 마친다(禮始禮終)´ 하여 예를 강조하는데, 이는 경기화된 스포츠로서의 무예 종목에서 애용하는 말일 뿐이다. 그러나 예(禮)란 그처럼 단순한 형식적인 것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덕(德)으로서의 예(禮)를 이야기하자면 그보다 훨씬 깊은 철학적 성찰을 필요로 한다.

무언(武諺)에 이르기를 "기예(技藝)를 익히기 전에 먼저 예(禮)를 알아야 하고, 무예(武藝)를 익히기 전에 먼저 덕(德)을 밝혀야 한다"고 하였다. 먼저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禮)를 모르는 자에게 무예를 가르치는 것을 극히 꺼렸다. 절제가 부족하고 도덕 규범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자가 무예를 익히게 되면 남을 해치고 사회를 어지럽히게 마련이며, 결국은 스스로를 망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