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무술(武術), 무예(武藝), 무도(武道)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8 11:47     조회 : 6752    

◇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군이 해체된지 1백년 만에 십팔기를 부활시킨 국방부 전통의장대. 필자의 지도로 본국검을 시연하고 있다. 2007년 5월 11일 청와대 앞 광장. ⓒ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십팔기(十八技)´를 이야기할 때 "한, 중, 일 세 나라의 무술이 어떻게 서로 다른가?"라는 질문을 항상 받는다. 이때 먼저 ´무예´에 대한 호칭부터 설명하여야 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무술´, 한국에서는 ´무예´, 일본에서는 ´무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 왔다.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대체로 법(法), 기(技), 술(術)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대개 맨손 기술인 권법들에는 법(法)자를 붙인다. 병장기를 다루는 아주 기초적인 법식에도 법(法)자를 붙였다. 그렇지만 각종 권법만을 소개하는 책자에는 절대 ´무(武)´자를 붙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武)는 반드시 무기(武器)를 다루는 기술을 말하기 때문이다. 권법만으로는 무(武)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도구(道具)를 다룰 때에는 일반적으로 ´기(技)´를 붙이는데, 병장기를 다룰 때에야 비로소 ´무(武)´자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통칭해서 ´무술(武術)´이라 한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쿵푸´는 그 자체가 무술 용어가 아니고 무언가를 연마하는 과정, 즉 글자 그대로 ´공부(工夫)´이다. 홍콩과 대만을 통해 전세계에 중국 무술의 명칭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중국이 개방하고 아시안 게임을 치르면서 중국 무술 몇 종목을 경기 체육으로 개발하였다. 그것이 ´우슈(武術)´인데, ´쿵푸´를 밀어내게 되었다. 이리하여 일반 명사인 ´무술´이 고유명사인 ´우슈´로 불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예로부터 ´법(法)´과 ´기(技)´를 어느 정도 구분하여 사용했다. 《무예도보통지》를 살펴보면, 권법(拳法)에는 분명 법(法)을 붙였고, 병장기를 다루는 각각의 기예에는 ´기(技)´라 하여 권법을 포함한 열여덟 가지(般) 기예를 ´십팔기(十八技)´라 이름하였다. 법(法)만으로는 기예(技藝)가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술을 전체적으로 일반명사화해서 부를 때에는 ´무예(武藝)´라 하였다. 《무예도보통지》 서문에 이러한 내용이 실려져 있다.

"영조 기사년(25년, 1749) 왕세자(小朝, 사도세자)께서 서무(庶務)를 섭정(攝政)하실 때, 죽장창(竹長槍) 등 12기(技)를 더하여 도보(圖譜)를 만들어서 (이전의) 6기(技)와 같이 통관(通貫)하여 강습케 하였다.
현륭원(顯隆園, 사도세자)의 뜻으로서 십팔기(十八技)의 명칭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짐은 무의식(武儀式)과 전형(典型)을 이어가로록 힘쓰고, 또 기예(騎藝) 등(等) 6기(技)를 다시 늘여서 24기(技)로 하였다. 이미 명을 받고 고거(考据)한 자가 여러 사람이나 된다. 원속(原續)의 도보(圖譜)를 모아서 합하여 의(義), 예(例), 전(箋)의 잘못을 바로잡아서 묶고, 그 원류(源流)를 해석하여 제도에서 품평하여 정하고, 명물(名物)로 하여금 예술(藝術)의 묘용(妙用)으로서 한 권의 책을 펴내어 관령으로서 그 책 이름을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라 한다."



일본에서는 16세기말부터 온갖 것에다 ´도(道)´를 붙이는 것이 유행하였다. 심지어 차를 마시거나(茶道) 꽃꽂이(花道)에도 이 ´도(道)´자를 붙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검술, 유술을 검도, 유도로, 공수도(가라테, 당수도), 합기도 등등 아무것에나 갖다 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예외 없이 종교적 의례에 버금가는 예(禮)를 접목시켜 엄숙주의로 미화시켰는데, 이 ´예도(禮道)´가 오늘날 일본 문화의 성격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낱말로 ´메이드 인 재팬´의 포장지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일제 시기를 거치면서 이 ´도(道)´자 문화가 심어졌는데, 해방된 지 반세기가 넘었어도 버리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라테(空手道)에서 한국식으로 이름을 바꾸면서도 이 ´도(道)´자는 떼어 버리지 못하고 ´태권도(跆拳道)´라 하고 있다. 심지어 신라의 화랑에도 ´도(道)´자를 붙여 ´화랑도(花郞道)´라 하고, 새로 생겨나는 온갖 국적 불명의 무예에도 예외 없이 이 글자를 붙이고 있다. 정히 ´도´자를 붙이고 싶으면 ´화랑도(花郞徒)´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거창해 보이는 모양이다. 부끄러운 시대의 유산들이다. 중국에서는 붓글씨를 지금도 서법(書法)이라 하고,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 하며, 우리는 서예(書藝)라 부른다. 앞으로 새로(?) 태어나는 전통 무예들은 작명에 좀 고심해서 제발 도(道)자를 달지 말고 나왔으면 싶다. 유독 자기 것도 모르는 무예계만 아직도 숭일주의(崇日主義)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무예수련을 통해 자기완성에 이르는 길을 표현하는 철학적 용어로서의 무도(武道)와는 구별해서 사용해야 한다.

역사서인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수없이 많은 무(武)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만, 단 한번도 무도(武道) 또는 무술(武術)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삼국유사》 김유신편에 ´수검득술(修劍得術)하여 국선(國仙)이 되었다´라는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무예(武藝)´라는 단어는 삼국시대 〈천남생(泉男生) 묘지명〉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고려사》《조선왕조실록》 등에 줄곧 사용되었다. 그런데 위서(僞書)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花郞世紀)》에서만 ´격검(擊劍)´ ´선도(仙道)´ ´검도(劍道)´ ´무도(武道)´ 등 순 일본식 표현들이 나온다. 이런 용어는 《삼국유사》《삼국사기》는 물론 이전의 그 어떤 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던 것들이다. 이는 일제시대에 새로 씌여졌다는 증거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술(術)이든, 예(藝)든, 도(道)든 그것은 그저 나라마다의 언어 습관일 뿐이다. 여기에다 필요 이상의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어느것이 더 고차원적이라는 둥, 잔뜩 견강부회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한자(漢字)의 여러 가지 뜻으로의 쓰임새 때문에 터무니없이 현학적으로 해석되거나 모호하게 해석하여, 이현령비현령으로 갖다붙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무슨 글자든 너무 깊이 빠져들면 편견이 생겨 미신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현학적인 애매한 표현과 그에 따른 막연한 추종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무인(武人)으로서 경계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이다. 더하여 스스로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그래서 책임지지도 못할 어떤 경계를 들먹여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남을 미혹에 빠지게 하는 행위는 마땅히 삼가야 한다. 그런 것을 졸렬하다고 하는 것이다. 또 그로 하여 이득을 취한다면 그건 곧 사기이다. 옛말에 "지혜는 의심나는 곳을 그대로 비워두는 것만 한 게 없고, 행동은 후회 없는 일을 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고 하였다. 정확히 모르는 일은 알 때까지 그냥 둘 일이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