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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덕(內德)과 외덕(外德)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8 11:42     조회 : 4896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유가오덕(儒家五德)은 춘추전국시대 혼란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사회관계에 관한 도덕규범을 규정해 놓은 것으로 문덕(文德)이라 이를 수 있다. 물론 문무(文武)가 확연히 구분되기 이전까지는 당연히 무사(武士)의 덕(德)이었다.
유학(儒學)은 처음부터 그 목적이 뚜렷하였다. 무예(武藝)를 익혀 전장에 나가 목숨 걸고 싸워 공을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지혜를 익혀 문사(文士)로서 벼슬을 하겠다는 것이다. 즉 지(智)와 예(禮)로써 충(忠)을 바쳐 일신의 영달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학은 내적인 자기 수양의 학문이 아니며, 또 그런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입신양명의 수단으로써 지식과 법도를 익혀 벼슬을 하겠다는 것이다. 무(武)로써 세운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사(文士)는 자연히 이(利)에 밝다. 대신 실용과 합리성이 부족하고, 명분에 집착하거나 사변적인 경향이 짙다. 당연히 무(武)와 전쟁을 싫어하고, 모험과 위험한 일을 기피한다. 책임과 의무보다는 권한과 이익을 더 챙기는 버릇이 생긴다.

현존하는 조건의 우월함으로 말미암아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분별없는 행동이 만에 하나 지금의 안정성을 깨뜨리지 않을까 두려워 조심하고 근신하는 버릇이 있다. 문신(文臣)들에서 간신(奸臣)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지조(志操)와 염치(廉恥)를 그토록 강조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당파 싸움으로 툭하면 역적(逆賊)으로 몰았지만, 사실 문신(文臣) 역적이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저 왕의 눈 밖에 났다는 정도이지. 진정한 역적은 무신(武臣)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또한 문신은 전장에 나가 목숨을 바치는 직책이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봉록이 많지 않은 법이다. 따라서 문신(관료)이 원칙대로 산다면 청빈할 수밖에 없다.

동양 정신의 주류는 유가(儒家)의 이성주의 철학이며, 유가 철학의 객관적인 본체는 바로 현실적인 윤리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윤리 정신의 최고 이상은 바로 덕(德)이다.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은 말할 것도 없고, 삼강오륜 역시 모두 사회와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덕목들이다.
윤(倫)이란 바로 등급 무리의 순서를 말하며, 리(理)란 바로 이 등급과 순서에서 준수해야 할 규율이라 했다. 윤리도덕이란 바로 극기와 순종을 요구하는 예교(禮敎) 그 자체인 것이다. 자기를 위한 수양의 덕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를 위한 공덕(公德)이다.
서양 그리스도교의 믿음·소망·사랑, 그리고 자유·평등·박애·정의 역시 사회적 덕목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강요하는 덕목과 금하는 계율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자기 수양을 중시하는 무가(武家)에서 볼 적에 이러한 것들을 모두 외덕(外德)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비해 무가오덕(武家五德)인 엄(嚴)·용(勇)·성(誠)·의(意)·절(節)은 내덕(內德)이라 할 수 있다. 서양 기사도에서 강조하는 신중(愼重)·절제(節制)·용기(勇氣)도 모두 내덕이다. 자신의 내적 소양을 갈고 다듬어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무(武)는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개인 무예든 군사 무예든 자기 단련을 근본으로 할 수 밖에 없다. 한국무예의 지존이신 해범 선생께서는 “무예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규범은, 무덕을 숭상하여 몸을 단련하는 가운데 성(性)을 기르는 것이다. 무덕이란 덕성(德性)을 견고히 하고 심기(心氣)를 평온하게 하여 기(技)와 도(道)를 함께 중요시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항시 “무(武) 속에 문(文)이 있으며, 문(文) 속에 또한 무(武)의 요소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문인(文人)이라 해서 내덕만 숭상할 일도 아니며, 무인(武人)이라 해서 외덕을 소홀해서도 안 된다. 몸과 마음, 내외를 함께 닦아 나가야 진정한 자기완성에 이를 수가 있다. 진정한 무인이라면 반드시 내덕(內德)을 다져 외덕(外德)으로 지향해 나아가야 한다. 특히 의(義)와 신(信)은 무인이 추구하고 갖춰야 할 절대적인 덕목이다.
그렇지만 고대에는 지나치게 도덕(道德)을 중시하는 바람에 왕왕 덕을 중시하고 재능은 경시하며(重德輕才), 덕을 가지고 재능을 대체하며(以德代才), 덕으로써 재능을 억누르는(以德壓才) 경향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지식에 대한 추구와 재능의 배양을 함께 중시하며 덕(德)을 닦아야 할 것이다.

무언(武諺)에 이르기를 “글로는 마음을 평하고, 무(武)로는 덕(德)을 살핀다(文以評心 武以觀德)”고 하였다. 이 시대에 와서 덕(德)이란 진리와 행동에 대한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한다. 강력한 통찰력, 실현중인 능동적 인식이어야 한다.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것, 저항하고 극복하는 것, 즉 행동하기이다.
문(文)이 사고하는 철학이라면, 무(武)는 행동하는 철학이다. 내덕(武德)은 닦아야 하고, 외덕(文德)은 쌓아야 한다. 진정한 내외합일(內外合一), 즉 문무(文武)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한반도는 이념이 남북을 문무(文武)로 쪼개고, 감정이 동서로 가르고, 진보(進保)가 노소를 절단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문(文)은 항상 저 잘나서 쪼개지고자 하는 성질을 가진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싸울수록 쪼개진다. 입으로는 진정한 승패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를 치를수록 국론은 분열되고 그 골은 깊어만 가는 것이다.
반면에 무(武)는 절대 양립하지 못한다. 하늘에 태양이 둘이 아니듯이 오직 하나로 뭉치려는 힘이 있다. 둘일 경우에는 반드시 승패를 가려야 한다. 무(武)의 정신이 곧 통일정신이다. 통일은 결코 입(사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진보나 보수가 아니라 힘으로 하는 것이 통일이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