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사관학교 졸업식과 대통령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8 11:40     조회 : 5417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다시 노대통령에 대한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다른 대통령 이상의 어떤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분의 언행이 유별나서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좋고, 또 글쓰기의 소재 혹은 비교 모델이 되기에 충분해서다.

무슨 심중으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으나, 취임 첫해부터 사관학교 졸업식에 해마다 참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격년마다 참석하겠다는 것이다. 참석하면 하고 말면 마는 것이지, 격년제는 또 무엇인가. 한국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게 된 지도 오래되었으니, 사관학교라고 해서 굳이 참석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과연 그런가? 그래도 되는 것인가? 노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온갖 쓰디쓴 말을 아끼지 않던 그 잘난 언론인들도 이 일에 대하여는 그동안 일언반구도 없는 걸 보니, 정말 별일도 아닌가?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이나 수상이 그 나라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무지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서건, 혹은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건 그 결정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지난 시절의 군사 정권에 대한 반감이 있다 해도 이건 지나치다.

대표적 국립학교인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를 해주지 않는 것은 조금 섭섭하기는 할망정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졸업 후 사회에 나가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쫓게 마련이다. 하지만 같은 국립학교라 해도 사관학교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졸업식이 곧 임관식이기 때문이다.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되는 그들에겐 이제 바야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는 순진한 교과서적인 표현이고, 사실은 그들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위해 ―― 제 한 목숨 바치겠노란 충성을 서약하는 자리인 것이다. 그리고 그 통수권자와 처음으로 대면하여 종속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가족이나 친지처럼 단순히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접수하고 충성 서약을 받기 위해서이다. 졸업식은 학교장이 주최하지만, 임관식은 국가 원수인 대통령이 주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사관학교 졸업식에의 대통령의 참석 여부는 그의 재량권도 아니고, 관례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권한이자 신성한 의무이다. 불참은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직무 유기이다. 계약 위반이며, 원인 무효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참석해야 하며, 한 명 한 명에게서 일일이 악수를 해서 그 서약을 받아내야 한다. 누가 그걸 대신한단 말인가? 국무총리가 축사를? 장관이?

요즈음은 게나 고둥이나 다 ‘민주주의’ ‘민주주의’ 하니까, 권력이 진짜 투표 용지에서 나오는 줄 아는 모양이다. 국가의 권력, 최고 통치권자의 권력은 총칼(군대)에서 나온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선거는 그 권력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정하는 게임의 룰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전도사로 자처하는 오늘의 미국을 보라. 민주주의(혹은 선거)와 군사력 중 어느 것이 진짜 미국의 힘인지. 이 땅의 통치권자와 그의 수하들은 권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권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헌법이 곧 권력인 줄 착각하지 마라. 총칼 없는 법이 무슨 효력이 있는가. 아직 피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현대사를 벌써 잊었단 말인가. 민주주의가 권력이 아니다. 그것을 차지하고 행사하는 여러 방식 중의 하나일 뿐이다.

“무인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고 하였는데, 오늘의 저 피 끓는 젊은이들은 장차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친단 말인가. 졸업식에 대통령이 참석하느니 마느니 할 거라면 차라리 앞으로 모든 사관학교 졸업식에 일체 참석치 말았으면 한다. 대신 반드시 그가 직접 주최하는 임관식을 따로 가져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바쁘다면 육해공을 한꺼번에 한자리에서 치르더라도. 사관학교 졸업식 및 소위 임관식이 대통령 골프 치는 것보다 더 하찮은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삼군사관학교는 물론 제삼사관학교, ROTC, 학사장교, 심지어 하사관 임관식에도 반드시 참석해서 충성서약을 받아야 한다.

과거 모든 것이 열악했던 시절 군복무 중에 무슨 한스러운 일을 겪었는지, 혹은 졸병생활에서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군을 무시하는 듯
한 처사는 최고통수권자로서 지극히 삼가야 할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군은 사기에 죽고 산다. 그것은 주군의 믿음(信)에서 나온다. 그 믿음을 잃었을 때 충(忠)이 환(患)이 되는 끔직한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군(軍)은 언제든지 자신의 주군을 스스로 선택할 힘을 지니고 있다.

며칠 전 노대통령이 군부대를 방문해서 지난번에 한 “군에 가서 썩힌다”고 한 자신의 말에 대해 잘한 것 같기도 하고 잘못한 것 같기도 하다면서, 열심히 근무 잘하고 있는 사병들 정신무장을 휘저어 놓고 왔다. 이쯤 되면 그가 무슨 목적으로 거기 갔었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요리조리 기피하다가 억지로 군대에 끌려가서 ‘썩다’ 나온 386운동권 복학생의 입에서나 나올법한 무책임한 말이다. 대통령의 혀는 양날의 검(劍)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걸 부지깽이처럼 함부로 아무데나 쑤셔대고 있으니 국민들이 영 불안해서 못살겠단다.

어쨌거나 옛말에 “자식은 어미가 못생겼다고 싫어할 수 없고, 개는 집이 가난하다고 싫어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