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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仁)은 이 시대에 필요한가?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8 00:01     조회 : 6023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프랑스에서는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이과 문과를 가리지 않고 누구라도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가 있다. 물론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기학과여서 지원자가 많다. 1학년 수강생이 대체로 4,5백 명쯤 된다.
그런데 이 의과대학 1학년 수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과목은 해부학도 생리학도 생물학도 아닌 인문사회과학이다. 이 과목이 철학 · 의학윤리 · 의학역사 ·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으며, 비중상 해부학의 3배, 물리학의 6배를 차지한다.

2학년부터 조금씩 그 비중을 줄여 나가는데, 의학이 암기식의 단순과학이 아니라는 걸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려는 교육 정책인 것이다. 이들 중 15퍼센트 정도만이 2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다. 의사가 된다는 것이 그저 미래의 안정된 생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간의 육체를 다루는 신성한 직업에 우선해야 할 도덕성을 먼저 주입시킨 후에야 본격적인 실천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의술(醫術)이 인술(仁術)임을 확실히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법조인을 키우는 미국의 로스쿨에서도 법학보다는 사회학이나 인류학 등 인문학 전공자들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법밖에 모르는 사람보다도 교양과 덕목을 고루 갖춘 균형된 사고를 지닌 법조인을 양성코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의사며 판검사 · 변호사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일 터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형편에는 왠지 공허하게 들린다.

해방 후 급격한 변혁기를 거치면서 오랜 독재 정권으로 인한 관료주의가 깊이 뿌리박혀, 우리나라는 모든 제도와 사고방식이 획일화되었다. 뭐 그렇다고 그것이 반드시 나빴다고 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것저것 다 따졌다간 우왕좌왕하다가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을 테니까. 어쨌거나 이 관료주의의 폐단은 인재를 양성하고 안배하는 과정과 제도에서도 심하게 나타난다.

학벌과 단순한 시험(대표적으로는 국가고시)만으로 인재를 등용한다. 지독한 편의주의적인 방법이다. 가장 공평하고, 가장 빠르다. 누가 봐도 객관적이며, 시험 부정 또는 학위 위조만 아니면 뒤탈날 일도 없고 책임질 일도 없다. 과목만 바뀌었지 옛 과거 제도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기업이든 국가 기관이든 채용되고 나서도 여전히 관료적이고 획일적이다. 별탈없이 때가 되면 진급되고, 줄 잘 서고 요령만 잘 부리면 요직이나 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됨을 지향하는 인성 교육은 애초에 물 건너가 버렸다. 스포츠조차도 배고픔을 벗어나 출세의 수단이었고, 지금은 돈벌이 또는 대학 진학의 한 방편이 되었다. 세상에서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요모조모 따져 보고 그 중 제일 이익이 큰 것을 택한다. 그리고는 죽기 살기로 매달린다. 진정 마음(욕심 말고)이 가지 않은 일에 인생을 바쳤으니, 아무리 많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올랐어도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당연히 본업을 벗어난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보상받고자 한다. 그 방법들에는 건전한 것도 있지만, 대개는 변태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 덜된 것이 먹고 노는 것인들 별수 있을까? 한국의 대표적인 중산층이 모여 사는 서울의 강남, 서울대학교에 가장 많이 입학하는 학군, 가장 이기적인 동네에서 가장 이기적으로 공부한 학생들, 자신들도 잘난 부모들처럼 잘살 수밖에 없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당연히 인류대학을 나와야 하고, 좋은 직업은 마땅히 자기들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자란 이들에게서 우리는 어떤 덕목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점입가경이라더니 강남 근처에 강남같은 신도시를 또 건설하겠다고 한다.

《흥부전》에서의 흥부를 무능한 인간으로, 《삼국지》의 유비는 쪼다요, 조조는 영웅이라고 비꼬는(믿는) 이 시대에 인(仁)이 어쩌니저쩌니하는 것 자체가 쪼다짓은 아닌지? 설령 그렇다 해도 도무지 한 말씀 안 드리고 넘어갈 수가 없다. 어느 기업에서 연구인지 조사인지 해봤더니, 유비와 같은 사람이 CEO가 되면 그 회사 망한다고 했단다. 참, 한다한다 하니까 끝도 분수도 모르고 기분 내키는 대로 쏟아낸다. 요(堯) · 순(舜)을 비롯해 그 많은 성군(聖君)들이 다스리던 나라들은 그때 왜 망하지 않았는지 모든 역사학자들은 처음부터 다시 연구해 봐야 할 것이다. 이왕 과거사 진상규명할 바에야 멀리 고대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는지.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仁)은 만덕(萬德)의 으뜸이다. 흔히 우리가 ‘덕(德)’이라고 할 때는 보통 이 인덕(仁德)을 말한다. 용도 폐기된 지 이미 오래되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때 묻은 빨래판만큼의 대접도 못 받고 있지만. 유가(儒家)든 무가(武家)든 불가(佛家)든 도가(道家)든 인덕(仁德)을 중히 여기지 않는 곳이 없다.

인(仁)은 혼자만의 덕이 아니고, 남에 대한 배려이다. 어질고 베푸는 것은 곧 남을 위하는 행위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나기도 하지만, 또한 후천적으로 길러져야 하는 덕목이다. 배워서 안다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반드시 행해서 드러나야 하는 덕목이다. 그 반대말은 바로 이(利)가 될 것이다. 인(仁)이 베푸는 것이라면, 이(利)는 취하는 것이다.

인(仁)은 화(和)이다. 인(仁) 자체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어서 그것으로 어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인(仁)이 없으면 만덕(萬德)이 반죽되질 않는다. 어떤 일을 도모하되 조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유비가 아니면 관우 · 장비 · 제갈량을 한 배에 태울 수가 없고, 급시우(急時雨) 송강(松江)이 아니면 천하의 도적놈들을 양산박에 모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인(仁)이 아니면 용(勇)이든 충(忠)이든 의(義)든 한곳에 잡아두질 못한다. 인(仁)이 아니면 힘이며 권력(또는 금력)이며를 제어할 수가 없다.

인(仁)은 결코 어리석고 무능한 자의 너절한 습관이 아니며, 결코 손해 보는 덕 또한 아니다. 인(仁)이란 편협하지 않은 정(情)이다. 인(仁)한 자만이 마음〔天心, 人心〕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인(仁)만이 선(善)으로 이끌 수 있다. 인(仁)하지 못한 지도자를 선택했을 때 우리가 어떤 고통을 당하였는지 생각해 보라. 그들을 우리는 독재자라 부른다. 인(仁)하지 못한 벼슬아치를 탐관오리라 부른다.

무인(武人, 軍人)이나 판검사, 그외에 특수한 직책을 가진 이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다루거나 신체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따라서 남다른 엄중한 도덕심을 요구한다. 칼을 휘두르고 법을 집행하되, 항상 인(仁)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의사라는 직업은 사람을 살리는 더할 수 없는 숭고한 일이지만, 때문에 그를 빌미로 과다한 이익을 취할 수도 있는 직업이다.

뛰어난 실력(의술 혹은 경영 능력)으로 크게 성공해서 어마어마한 종합병원을 지어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혜택을 준다고 하면서 결국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으로 끝낸다면, 그는 결코 빈민촌에서 의료 봉사로 일생을 보낸 가난한 의사보다도 훌륭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의술(醫術)을 인술(仁術)이라 했다. 모으는 게 아니라 베푸는 것이다.

우선 눈앞의 성공(돈)만을 바라보는 자에게 인(仁)이란 쓸데없는 것일지 모르나, 진정 멀리 보는 지도자에게 인(仁)은 없어서는 안 될 덕목이다. 아직도 인(仁)이 무용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CEO가 있다면, 그는 진정한 리더가 아니다. 그 역시 오너의 충직한 가신 가운데 한 명일뿐이다. 언제든지 갈아치워도 되는 월급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학생들은(부모들도) 대부분 공부 열심히 해서(시험 잘 봐서) 앞서의 물 좋고 끗발 센 사(士)자 들어가는 직업을 택하거나, 잘나가는 재벌 기업에 들어가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을 꿈꾼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재벌 그룹의 창업자들은 예외없이 모두 ‘촌놈’들이었다. 시골에서 태어난 뚝심 좋은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서울의 명문가 엘리트 출신들이 만든 회사나 기업들은 중간에 대부분 무너져 버렸다.

최고 대학을 나온 최고의 수재들은 모두 촌놈 밑에 가서 경영자(사실은 기술자나 관리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혹시 인(仁)이 부족하여 이기심이 강하고, 쓸데없이 크게 벌려 여러 사람 먹여 살려야 하는 힘든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도회지 출신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자신이 노력한(쌓아온 실력) 것에 대한 확실한 보상만 받으면 만족하는 습관이 있다.

도시 출신은 집중해서 파고들어 이윤을 많이 내는 일을 좋아하는 반면에, 촌놈 출신은 땅이나 짐승처럼 넓히고 늘리는 재미에 사업한다. 도시 엘리트 출신은 평소 제 몫을 철저히 챙기고 나누어 먹어 보질 못한 데 비해 시골 사람 인심은 그렇지 않다. 농사도 서로 도우며 같이 짓고, 나누어 먹기도 잘한다. 인심(人心)이 곧 인심(仁心)인 것이다.

자, 이제 누구 밑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들 것인지는 뻔하지 않은가. 도시 출신 엘리트들은 일반적으로 지(智)는 있되 인(仁)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각 기업체 창업자와 최고경영자들의 출신지를 조사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특히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비교하면 더욱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예로부터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인심은 금고(통장)에서 나야 한다. 세상이 점점 도시화되는 바람에 인심 나올 곳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인(仁)은 겸허하다. 결코 스스로 나서서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인(仁)을 베풀 때 항상 음덕(陰德) 혹은 은덕(隱德) 쌓는다고 하였다. 성경에서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인(仁)이 없으면 힘(권력이든 금력이든)을 제어하기가 어렵다. 수많은 독재자들과 악덕 기업주들의 횡포에서 보듯 결국 남을 괴롭히고 자신을 망친다. 인(仁)은 무력보다 더 강하다. 공자 이후 수많은 선현들은 군왕과 군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으로 인(仁)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인(仁)은 의무이다.

인(仁)이 없을 때 신(信)은 금이가고, 충(忠)은 원성을 부른다. 또한 예(禮)는 위선에 지나지 않으며, 지(智)는 이기심을 낳는다. 의(義)는 바로 서지 못하고, 엄(嚴)은 반발을 부른다. 성(誠)은 비루해지며, 절(節)은 교만해진다. 용(勇)은 야만스러워지고, 명(名)은 존경받지 못한다. 공(功)은 그 빛을 잃고, 부(富)는 필시 미움을 산다. 승(勝)은 원한을 사고, 검(劍)은 결코 그 피를 씻을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덕(德)이 다 선(善)하지는 않다. 인(仁) 없이는 그 어떤 덕(德)도 선(善)이 되지 못한다. 악덕(惡德)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仁)을 갖추지 못한 무인들이 권력을 쥐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5·18 광주 시민 학살 사건이 잘 말해 주고 있다. 이 땅의 부자들이 존경은커녕 끊임없이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인(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인(仁)을 쫓는 사람과 이(利)를 쫓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이(利)를 쫓지만, 지조를 지닌 이들은 인(仁)을 쫓는다. 천하의 재사(才士) 제갈량이 유비를 따른 것도 이 때문이다. 결코 유비가 조조보다 유능해서가 아니다. 성공을 따른 것이 아니라 덕을 위해 생을 바친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이(利)를 쫓는다고 해도 마음으로는 인(仁)을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곧 선(善)이기 때문이다. 인(仁)을 쫓다 보니 유비를 택했고, 이(利)를 쫓다 보니 조조를 따르는 것이다. 조조는 성공했고, 유비는 실패했다. 그런데도 세상은 유비를 받들고 조조를 경멸한다. 왜일까? 그것이 곧 인심인 것이다. 성공해야만 반드시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능력이 있다 해서 다 덕(德)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덕(德)을 살펴 훌륭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