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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勇)은 계산에 앞선다(1)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7 23:58     조회 : 5859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맹자(孟子)는 “나는 호연지기를 배양하는 데 능하다”고 하여, 용기(勇氣)란 실제적으로 장기간의 육체 활동과 도덕 수양을 거쳐서 도달하는 일종의 정신 경계임을 주장하며, 굳센 의지를 단련시켜서 고상한 품격을 배양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고대의 무용담이라면, 관창(官昌)으로 대표되는 신라 화랑들의 이야기와 고구려 · 백제 등에서 전해 오는 수많은 장수들에 관한 것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대제학을 지낸 홍양호(洪良浩)의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1734)은, 삼국시대 이래 용맹을 떨쳤던 이름난 장수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을 터이지만 기록으로 남아 제대로 전승되어 오지 않았을 뿐이다.

전쟁을 통해 생겨난 이러한 수많은 무용담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미화되고 부풀려져 전설이 되고 예술이 되어 끝없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숱한 옛 영웅들의 이야기를 여기에 어찌 다 옮겨 실을 수 있겠는가?

용(勇)은 무인들이 숭상해 마지않는 덕목이라 이런 영웅적인 용감한 행위는 승패를 떠나 모두에게서 숭앙받게 된다. 옛사람들은 비록 적이라 해도 용감한 자는 진심으로 존중하였으며, 죽이더라도 그 예(禮)를 다하였다.

병가(兵家)에서 용(勇)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용(勇)은 영웅심의 발로이며, 영웅이란 곧 용장(勇將)을 말한다. 용(勇)은 무인이라면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이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수련하는 것이다. 진정한 용(勇)은 그만한 실력을 갖추었을 때 나오는 법이므로.

용(勇)은 선비의 덕목이 아니다. 선비는 글(智)로써 충(忠)한다. 조선시대 선비는 목숨을 걸고 임금의 잘못을 간(諫)한다 하였지만, 사실 목숨을 걸고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무리 폭군이라 해도 문신(文臣)이나 선비가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 해서 그 목숨을 빼앗는 일은 드물었다. 나약한 문신의 목숨까지 빼앗는 일은 조금 비겁한 행위로 비쳐지는 탓도 있었지만, 만약 그랬다간 후세의 역사가들(모두 문인들이었다)이 두고두고 자신을 포악무도한 자로 기술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혁명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썩은 왕조에 끝까지 충성하겠노라 고집하다가 맞아죽은 정몽주는 천사에 길이 빛나는 충절로 숭앙을 받는 반면, 그를 죽이고 새 시대를 연 태종 이방원은 조선시대 내내 그다지 성군으로 받들어지지 못한 예에서 보듯 문신들은 무(武)를 혐오했다.

또한 무신(武臣)이 역모를 꾸미거나 가담하면 반드시 극형에 처하였지만, 문신(文臣)은 대개의 경우 관직을 삭탈하고 유배를 보내는 형벌로 그쳤다. 선비는 절(節)은 있으나 용(勇)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시 귀양을 갔다가도 임금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벼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설령 그렇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꿋꿋이 선비의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역사에 남을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귀양을 가면서도, 귀양을 가서도 원망은커녕 일편단심 임을 향한 시(詩)를 끊임없이 읊어댄다. 반대로 무신(武臣)은 죽으면 죽었지 그런 짓은 못한다. 글을 몰라서 그런 시(詩)를 남기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임향시를 남긴 적이 있던가. 신(信)이 없으면 충(忠)도 없는 법.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는다.

근현대사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용감한 투사들을 보아 왔다. 구한말의 수많은 의병들, 안중근 · 윤봉길 등 항일 독립 투사들, 6·25 전쟁 영웅들, 강재구 소령, 그리고 타인의 위급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수많은 의인(義人)들.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 그분들인들 자기 목숨 소중한지 왜 모르겠는가. 자기가 죽거나 불구자가 되면 부모형제 · 아내 · 자식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왜 모르겠는가. 그런 생각이 먼저 들면 누구도 그렇듯 사지로 몸을 던지지 못한다. 행동이 계산에 앞서는 것이다. 용(勇)은 그런 것이다.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로 이어져 온 군사 정권에 신물이 나서인지 이후 계속해서 문민정부를 표방하는 문인 대통령(군인 출신이 아니라고 해서 무조건 그렇게 부르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 사실은 무(武)도 문(文)도 아니다. 그저 정치꾼들일 뿐이다.

그런데 박정희 이후의 군사 정권이든 문민 정권이든 한결같이 앞선 정권의 잘못을 들먹이는데, 공통적이게도 모두 박정희의 벽을 뛰어넘지 못해 안달이다. 특히 이번 정권은 죽은 박정희만 물고 늘어진다. 그보다 그 죄악이 결코 가볍지 않은 살아 있는 두 군부독재자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 못한다. 명패 집어던질 땐 언제고, 오히려 비서를 보내 큰절을 올렸다. 현실은 두렵고, 과거사는 만만한가 보다. 비굴하기 짝이 없다.

이승만 문인독재자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같은 문민정부라 생각해서 동질감을 느끼는가. 하긴 이렇게 나무란다고 이제 와서 없던 용(勇)이 갑자기 생겨날 리 없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주위에도 온통 비굴한 인재들(?)만 득실거린다. 군대 가기 싫어 손가락 끝마디만 절단한 사람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다. 어찌 그 한 사람뿐이랴. 다들 이런저런 변명을 갖다대지만, 오히려 간사스럽고 뻔뻔함만 더하고 있다. 어떤 사정이든 군대는 갔어야 했다. 가서 의롭게 죽든 억울하게 맞아서 의문사하든, 어쨌든 군대에는 모두가 목숨을 바치러 가는 그런 곳이다.

민주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가지 않았노라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그 어떤 가치보다 국가가 우선한다. 나라가 온전히 서고 난 다음에야 민주니 독재니 할 수 있다. 나 하나 군대 안 갔다고 해서 나라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뒤집어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이다. 당신 한 명 없어도 올 봄은 온다고, 개나리가 하루 늦게 필 수는 있겠지만.

남들 군대에 가서 2,3년씩 ‘썩고’ 있을 때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구하고 병역 특례까지 받아 돈 조금 더 모으는 것이나, 다른 동료들 거리에 나가 독재 정권에 항거하고 있을 때 혼자 골방에 들어앉아 고시 공부해서 출세한 거나 비겁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스스로 인정했으면, 염치(廉恥)를 알았으면 공직에는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정계나 관계로 나가지 않고, 학계나 재계로 진출한 이완용(李完用)을 비롯한 여러 충일(忠日) 가문 사람들의 처신이 차라리 지혜롭다 하겠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