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7 23:55     조회 : 5628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책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고서점을 드나들게 된다. 간혹 일제시대나 해방 직후에 나온 책들을 번역하거나 새롭게 조판해서 복간하는 일이 있다. 대개 월북한 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이 남긴 것들로, 그때마다 그 시대에 이런 연구를 한 그분들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학자다운 학자들이로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러면서 만약 그분들이 모두 이 땅에 남아 학문을 계속했더라면 오늘날처럼 이 나라가 이 지경으로까지(혹은 이 정도밖에)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6·25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남겼지만, 그 와중에 이 땅의 엘리트 문화가 뿌리째 뽑혀나간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손실이 아니었나 싶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분단은 남북에 친소 · 친미 독재 정권이 들어서게 하였다. 게다가 남북의 두 집권자 모두 진정한 독립의 영웅들이 되지 못한 데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일제 말기 이 땅의 각 분야에서 한다하는 사람치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주의를 동경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어떤 분야에서든지 내로라하고 최고로 자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북으로 넘어갔다. 백남운 · 정인보 · 홍명희 · 이광수 · 최승희 · 정지용 · 이태준 · 이여성 · 김용준 · 정현웅 · 이극로 …… 등등. 하나같이 한 시대를 대표하던 최고의 엘리트들이다. 그리하여 남쪽에는 이삼류급 학자나 예술인, 혹은 지주집 아들이거나 친일파 집안 출신이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꺼림칙한 사람들만이 남았다.

그런데 그 이후 남북의 이류급 출신 독재자들이 문제였다. 독재자의 공통된 특성으로 똑똑해서 말 많은 자를 싫어한다지만, 특히 과거가 그다지 떳떳치 못한 자들일수록 더욱 심한 법이다. 예전에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실력이 나았거나 잘난 자는 ‘저놈은 속으로 항상 나를 비웃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놔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자가 살아 있는 한 항상 자기와 비교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남북에서 모조리 잡아 죽여야 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똥도 겨도 묻지 않은 개는 물어뜯어 죽여야 하는 것이다. 한 시대에 태어난 엘리트를 일시에 없애 버려 엘리트 문화가 사실상 단절된 것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도 이보다는 폐해가 덜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독재는 계속되고, 독재가 끝나도 도무지 사회가 바로 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류들이 사라지자 얼치기 이삼류가 대신 그 빈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들 또한 어부지리로 얻은 일류자리에서 집착과 콤플렉스를 떨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나마 남아 있는 몇몇 일류도 독재자들이 잡아 죽이도록 은근히 동조하거나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면서 손쉽게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들 역시 독재자들처럼 결코 자기보다 잘난 자를 못 봐준다.

독재 정권하에서는 모든 정보가 제한되어 있고, 그에 아부하는 지식인들에게만 정보(지나고 보니 별것도 아닌 것들)가 제한적으로 공급된다. 따라서 멍한 국민들을 상대로 얼마든지 똑똑한 전문가 행세를 할 수가 있었다. 노트 한 권으로 평생 교수짓 해먹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독재 정권하에서는 그나마 선동가들이라도 있었는데, 문민시대에 들어와서는 그들도 이제 용도 폐기되어 버렸다. 공부는 뒷전이고 데모를 주업으로 삼던 386세대가 제철을 만나 개혁을 부르짖는데, 이들 역시 아무래도 엘리트와는 거리가 멀다. 얼치기 지식인들이 길러낸 미숙아들일 뿐이다.

엘리트의 단절 이후 우리 사회는 기형적인 지식인(?)들이 그 만만한 자리를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바로 선동자와 반항자들이다. 지루한 계단밟기를 싫어하는 그들은 끊임없이 전복의 기회를 노린다.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튀고자 한다. 심지어 스스로 근본 없음, 예의 없음을 내세워 순박함으로 포장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것이 먹혀들기도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말한다. “전문적인 반항자라는 말은 모순된다. 이례적인 상태가 진부한 무엇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누구나 독특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사회에서 그건 말하자면 훌륭한 자기 격상의 메커니즘이다. 스스로를 추방자로 자처함으로써 한껏 돋보이도록 하며, 가능한 한 위험에 처하지도 않으면서 저주받은 자의 어두운 후광이 자신에게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너무도 많은 문인 · 저널리스트 · 대학교수 · 종교인 · 정치가들이 배교자인 양 처신한다. 한 발은 안쪽에, 또 다른 한 발은 바깥쪽에 둔 채 자신이 철저히 외부에 머문다고 믿으며 전체 영역에 침투하는 방법이랄까. 그러면서 그는 확고한 지위와 명성이 가져다주는 온갖 혜택을 누린다. 숨어서 망을 보는 급진주의자들. 게릴라병의 너덜한 옷 밑으로 프티부르주아가 되살아나고 있다. 반항은 대중 소비의 산물이자 어찌 보면 유행의 보완물이 되었다. 일찍이 소외 · 악습 · 범죄로 여겨졌던 태도들까지 순응주의와 마주치게 되었다.”

불복종의 속물 근성이 다시 적기(혁명)와 흑기(무정부주의) 아래로 몰려들고 있다. 모대학 교수의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으로 구속을 하느니 마느니를 두고 세상이 시끄러운가 하면, 제도권 변두리로 밀려난 얼치기 좌파, 386애국애족(?)간첩, 조선 선비정신으로 목숨 걸고 반대만 하는 급진 환경운동가들, 친북을 자랑하는 철없는 좌파 정치인들, 이들이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고 있다.

천박한 땅에서 천박한 정권이 탄생하는 것은 당연지사. 드디어 근본 없는 엘리트, 천박한 엘리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 사회 상층부에 아류, 혹은 이삼류의 전통이 흐르고 있다.

무예든 학문이든 구전심수(口傳心授)로 대를 이어나가야 진정한 전통이 서고, 그래서 당당해지는 법인데, 뽑혀나간 이 땅의 엘리트 문화는 언제나 복원될는지 요원하기만 하다. 스승다운 스승,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세상에 조금만 튀면 모두 저 잘난 줄만 안다. 제대로 된 가문과 학통을 지녔다면 설령 노벨상 열 개를 받았다 해도 감히 저 잘났다고 까불지 못한다. 근본은 통째로 잘려나가 버리고, 잎만 무성한 잡목들이 산을 뒤덮고 있다. 옛글에 “강물 소리에 영웅의 눈물 다하지 않고, 천지는 공평무사한데 초목은 가을을 맞는다”고 하였다.

아참, 고서점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6·25 이후 나온 책들은 별로 찾는 사람도 없어 그냥 헌책 취급한단다. 반세기 동안 이 땅의 그 많은 학자들이 펴낸 책들이 별로 소용이 없단다. 그래도 모아놓으면 간혹 새로 생기는 대학도서관에서 근으로 달아서 사갔는데, 요즈음은 그마저도 드물어서 모아두지 않는다고 한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