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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백년보다 긴 5년?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7 23:55     조회 : 5858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암탉이 울면 집구석 망한다. 는 속담이 있다. 뒤집어 보면, 집구석 망하려면 암탉이 운다는 말이다. 청(淸)이나 조선 모두 말기에 여자들이 설쳤고, 결국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암탉이 울어서 그런가? 만약 암탉이 울지 않았더라면 나라가 온전했을까? 아니다. 나라가 망해 가는데, 수탉이 제 구실을 못하니 암탉이라도 나서서 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암탉이 울 때쯤이면 집안 꼴이 이미 다 됐다는 것을 말한다. 세계사 연대표를 보면 고대 국가들은 대개 수천 년씩 유지되기도 하였으나, 현대로 내려올수록 점점 단축되어 왔다. 문화 발전의 속도와 왕조의 수명은 서로 반비례하는 모양이다. 고대에 왕(王)은 곧 신(神), 또는 신의 대리인으로 받들어졌기 때문에 감히 누가 그를 밀어내고 스스로 왕이라 칭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인지가 발달하면서 누구든 가장 힘센 사람이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끊임없이 왕권 다툼이 일어나게 되고, 그에 따라 왕조의 수명도 짧아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신라 1천 년, 고려 5백 년, 조선 5백 년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다. 매우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깔끔한(?)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중 조선 5백 년은 너무 길었던 것 같다. 고려가 신라의 절반이었으면 조선은 고려의 절반쯤에서 끝났어야 했다. 임진왜란, 아니면 병자호란 직후에 역성혁명이 일어났어야 했다. 더 썩기 전에 밭을 한번 갈아엎었어야 했다는 말이다. 대개 외침이나 역성혁명은 왕조가 쇠락해 힘이 없을 때 일어난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지 2백 년이 지날 무렵에 이르러서는 구조적으로 썩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선 왕조가 무능해서라기보다는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생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왕조 역시 차츰 부패해져 스스로는 개혁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역성혁명을 불러왔다. 조선은 고려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념인 유학(儒學)을 내세우고, 사병 제도를 혁파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조를 건설하였다. 항상 그러하듯 전대 왕족과 권력자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혁명에 동참한 공신들에게 벼슬과 봉록을 나누어 준다. 그리하여 초기 1,2백 년 정도는 그럭저럭 갈등 없이 잘 유지된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어쩔 수 없이 내부적으로 갈등이 싹터 치유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왕족과 개국공신을 비롯하여 양반들이 대를 이어나가면서 그들의 자손들이 계속 번창하며 수를 늘려 나간다. 평민들보다 불어나는 속도가 몇 배나 빠르다. 이 양반들은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농(農) · 공(工) · 상(商)에 종사할 수 없다. 반드시 벼슬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설령 벼슬을 못해도 일평생 글만 읽다가 죽어야 한다. 머리에 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니, 살아서는 백수(白首, 白手)요, 죽어서는 학생부군(學生府君)인 것이다. 개화기 일본의 하급 무사들이 무사로서의 체면을 버리고 상업에 종사하여 앞 다투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것과는 지극히 대조적이다. 대개 어느 왕조든 한 2백 년쯤 태평성대로 흐르다 보면 이 양반들에게 나누어 줄 벼슬과 재물이 점점 모자라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개국공신의 자손이라 해도 예전의 봉록만으로는 넉넉할 수가 없다. 결국 자리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조선 중기에서부터 시작된 분당, 즉 당파 싸움이다. 어떻게든,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든 상대를 끄집어 내리거나 역적으로 몰아서 삼족을 멸해야 우리 집안이 먹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누가 조그만 벼슬이라도 차지할라치면 사돈의 팔촌까지 모여들어 그 덕을 보며 얻어먹고 살아야 한다. 그러자니 서 푼어치도 안 되는 감투 하나를 가지고라도 백성들을 쥐어짜야 한다. 벼슬은 한정되어 있고, 양반은 끝없이 늘어나니 먼저 서얼 차별 제도를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양반에 비해 몇 십 배 빨리 늘어나야 할 평민의 숫자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으니, 개국 초기의 안정된 피라미드형의 사회 계급 구조가 점점 불안정한 형태로 변모해 간다.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왕조는 드디어 종점에 다다르게 된다. 현대의 민주자본주의 역시 내부적으로는 그러한 사이클을 갖고 있다. 고대에는 몇 천 년 혹은 몇 백 년 걸리는 왕조의 사이클이 현대에는 10년 미만의 정권 사이클로 바뀌었지만, 기본 구성은 마찬가지이다.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초기 산업자본주의가 점점 서비스자본주의로 발달되면서 머리 잘 굴리는 선비층(화이트칼라)만 잘살게 되고, 온몸으로 땀 흘리는 평민층(블루칼라)은 아예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조차 없어지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상당수의 선진국들은 이미 영화의 종반부로 접어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신생자본주의국가(인건비가 싼)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이지만, 이들은 예전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필름이 훨씬 빨리 돌아갈 것이다. 빨리빨리 좋아하는 한국보다 더 빠르게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는 금세기를 넘기기 전에 혼돈의 시대를 맞을 것이다. 말머리를 돌려 다시 조선으로 가보자. 그럼 조선은 어떻게 해서 5백 년이나 계속되었는가? 그건 바로 기다려도 영웅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에 몇몇 도적(?)이 나와 난을 일으켜 보았지만 그저 먼지만 조금 일으키다 주저앉고 말았다. 조선은 처음부터 영웅이 태어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의협(義俠)은 무력으로 금법을 범하기 쉽고, 은사(隱士)는 번잡한 인간 세상을 간파하고 무정부주의의 길을 걷는 것으로 흐르며, 영웅(英雄)은 결국 자기를 표현하고 강한 힘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전제왕권과 저촉될 수밖에 없다. 고려의 왕건이나 조선의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무릇 역성혁명이란 무인(武人)들이 하는 것이다. 세계사 어디에도 선비가 왕조를 세운 예는 없다. 간혹 선비가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나서 보지만 중국의 손문(孫文)이나 고려 말의 신돈(辛旽), 구한말의 김옥균(金玉均)처럼 개혁만 부르짖다가 용두사미로 끝나고 만다. 닭의 모가지를 비트는 것만으로는 혁명이 되질 못한다. 단칼에 모든 닭의 모가지를 잘라 버려야 한다. 태조 이성계는 누구보다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병을 혁파하고 중앙집권을 확고히 하였으며, 유학(儒學)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철저하게 억눌렀다. 불교를 누르고, 유학을 하나의 종교처럼 신앙하게 만든 것이다. 이 유교(儒敎)는 바로 조선의 카스트 제도인 것이다. 딱 한번 가장 적절한 시기에 영웅다운 영웅이 등장한 적이 있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에 말 타기를 거부하고서 홀연히 떠나가 버렸다. 그가 도가(道家)와의 깊은 인연이 없었더라면, 혹은 그가 이(李)씨 성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주저 없이 말 위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무장(武將)임에도 불구하고 유교를 신앙하는 선비에 지나지 않았다. 충절(忠節)을 꺾을 만큼 큰 뜻을 품지 못했던 것이다. 여담 혹은 야담이지만, 아무래도 이순신의 죽음은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긴다. 마지막 전투에서 그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술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야사에 전해지는 이야기처럼 미리 관을 준비했다거나, 일부러 표적이 되고자 붉은 옷을 입고 굳이 도망가는 적선을 쫓아 선두에 나선 점 등 의문투성이이다. 분명 그는 전란이 끝난 후 닥쳐올 자신의 운명을 짐작한 듯했다. 한창 전쟁 중 잘 싸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잡아다 주리를 틀지 않았던가? 만약 당시 원균(元均)이 웬만큼만 싸웠어도 이순신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원균이 패전하는 바람에 다시 바다로 나갔지만, 머지않아 전쟁이 끝나면 그럴듯한 칭호와 함께 뒤이어 대역무도한 죄를 씌워 죽일 것은 자명한 일. 탁월한 선견지명을 지닌 그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왜적을 물리친 일등공신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을 살려두고 허약해진 조선 왕조가 어찌 유지되겠는가. 임란의 시작과 끝, 그 모든 것이 이순신에게는 미리 완벽하게 짜인 각본 같아 보인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두고 의도된 것이었다고도 하고, 또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는 위장된 죽음이었다고도 하는 것이다. 이후 조선에서는 다시는 영웅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썩은 왕조라 하더라도 누가 밀어뜨리지 않으면 그냥 계속되는 법. 결국 왜놈들이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거저 집어삼키게 된 것이다. 핍박받던 평민들은 낫과 괭이로 외세에 맞서다 죽어가고, 구식 군대 무인들은 소규모로 무리지어 의병으로 싸우다 죽어갔지만, 5백 년 동안 이 땅의 주인이었던 선비들은 나라를 팔아먹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절개를 증명하는 것 이외는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 왕조 5백년은 너무 길었다. 아하, 그런데 이번 386변호사 왕조 5년은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모든 게 빨라지더니, 바야흐로 나라 망치는데 5년도 채 걸리지 않는구나!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