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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武)의 문화, 문(文)의 문화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7-07-17 23:52     조회 : 5347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회장
국군전통의장대 십팔기 사범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


중국 양(粱)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通)은 “문화(文化)로써 내부를 화목하게 하고, 무덕(武德)으로써 밖으로 멀리까지 미치게 한다”고 하였다. 인류 역사에서 크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국가들을 문무(文武)로써 비교해 보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가 있다.

우선 역사가 오래된 국가들 중 문(文)의 성향이 강한 대표적인 나라로는 고대의 이집트 · 인도 · 그리스를 들 수 있겠다. 이집트와 인도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서, 인류에 기여한 바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 또한 신화와 문학, 그리고 철학과 민주주의의 나라 그리스 역시 그 어떤 나라에 못지않은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런데 이 세 나라는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후 세계사에서 이렇다 할 주도적인 역할을 못해 내고 있다. 오히려 위대한 역사와 업적이 무거운 짐이라도 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 세 나라는 공통적으로 뭔가 빠진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그건 바로 힘이다.

과거의 위대함에 비해 지금은 도무지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무력(武力), 즉 무(武)의 힘을 발산하지 못하고 정체된 채로 과거의 유산이나 자랑하며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사는 나라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로마제국을 무너뜨린 게르만족,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점령했던 칭기즈칸의 나라 몽고제국, 그외 세계사에서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져 간 무수한 왕조들, 이들은 모두 무력(武力)으로 일어났다가 그 먼지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수명을 다해 버려 겨우 책갈피 속에서나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넘쳐나는 힘으로 거대한 영토를 차지했지만 이를 다스릴 능력, 즉 문(文)이 부족했던 것이다.

무(武)는 도모하지만 문(文)의 반려가 없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문(文) 또한 무(武)의 보호막 없이는 꽃을 피울 수가 없는 것이다. 무(武)는 동적인 힘이다. 필연적으로 도전적이며 분출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다. 이에 비해 문(文)은 정적이며 여성적이다. 또 변화를 싫어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인류 문명의 가장 전형적인 두 문화를 비교해 보자. 고대 그리스인들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여야 했으므로 어떻게 하면 외계로 나아가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지를 경쟁하였다. 따라서 철학적으로도 자연에 대한 인식과 자연을 개조하는 지식과 능력에 중점을 두어 발전해 왔다.

확실히 고대 그리스는 문무(文武)가 함께 꽃피운 시기였다. 이에 비해 우월한 자연 조건하에서 자급자족의 농업 문명을 일구어 온 중국인들은 어떻게 하면 현재 상태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를 생각했으며, 철학적으로도 현실적인 인륜의 사회 관계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오늘날, 지구상 몇 안 되는 독재 국가 중 북한과 쿠바는 극단적인 무(武)의 문화를 지닌 나라이다. 독재 정권이란 무(武)를 통치 수단으로 삼는데, 한 가지 장점은 밖에서 쉽사리 넘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나라들은 대개 국력이라 할 것도 없을 만큼 백성들이 핍박받고 가난하지만 호전적이어서 이웃나라가 쳐들어갈 수가 없다.

차지하려면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또 지배하는 데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武)만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문치(文治)의 왕조(정권)가 들어서면 백성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살기가 편해진다. 문(文)은 꽃을 피우지만 무(武)는 소홀히 하게 된다.

조선 5백 년이 그랬다. 이웃나라들과의 분쟁은 가능하면 피하려고 들어 태평성대를 구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 국가 중에 호전적인 정권이 들어서거나 안으로 어지러운 틈을 타 반란이 일어난 경우, 자칫 나라를 빼앗기거나 정권을 찬탈당할 우려가 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이승만 정권과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좋은 비교의 예가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러 국가들 중 문무(文武)의 성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나라를 꼽아 보자. 무사도(武士道)의 일본, 무협(武俠)이 살아 있는 중국, 기사도(騎士道, 紳士道) 정신이 이끌고 있는 유럽 선진국들, 총(銃)의 나라 미국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들 국가는 하나같이 문화적으로 깊이 성숙되어 있으면서도 진취적이고 역동적이다. 결코 주변 나라가 어찌해 볼 수 없는 강한 힘이 느껴진다.

또한 무(武)는 항상 드러내고자 하는 속성을 지닌다. 또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냐, 싸움(전쟁)이라면 결코 사양치 않겠다. 언제든지 도전을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잘 보아두어라”라면서 끊임없이 과시하고 위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강대국 약소국 할 것 없이, 수시로 군사훈련과 군사퍼레이드를 벌이지 않는가. 그것이 곧 무비(武備)이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이 되어야 한다. “설마” 혹은 “아무렴 그럴 리가”라는 무책임한 생각에 무비를 낭비적이라고 여겨 최소한의 것을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초등학교 과정 역사 공부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만 보더라도 신라 화랑(花郞)의 문무겸전(文武兼全), 고려의 무신(武臣) 정권, 조선의 문치(文治)로 대변할 수 있다. 또한 현대사에서도 김일성과 이승만(만약 김구였다면 김일성이 남침하지 못했을 것이다)의 문무 대립,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 정권, 김영삼과 김대중의 문민정부, 그리고 노무현의 무(武)도 문(文)도 아닌 참여〔口治〕 정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 민족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민족의 문화적 특질을 어떻게 바꾸어 나아가야 할 것인가? 바람직한 민족정신은? 우리 민족의 피 속에 흐르는 기마민족의 호전적인 기질을 오직 글, 즉 문(文)의 철학으로 다스리려고만 하니 부작용이 많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려 애쓰지만, 사실 문(文)으로 보면 교만의 역사요, 무(武)로 보면 비애, 아니 비겁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武)는 현실이다. “왕인(王仁) 박사 납시오” 하듯이 위대하다고 할 것 없는 고대 문화의 상대적 우수성을 들먹여 근대의 나약함과 낙후함을 은폐하려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가치관의 혼돈과 갈등의 밑바닥에는 이런 앙금이 두껍게 가라앉아 있다. 문(文)이 사유하는 철학이라면 무(武)는 행동하는 철학, 즉 실천철학이다. 우리의 핏줄 속에 엉켜 있는 앙금을 씻어내고 뜨거운 피가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무(武)의 철학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조선의 국기(國技) 무예 십팔기(十八技)를 오늘에 되살리고자 하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글은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