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무예도보통지주해》를 펴내면서
  글쓴이 : 박청정     날짜 : 07-07-17 23:51     조회 : 6008    

무예의 오늘날 효용(체육과 양생)
  오늘날 체육계에서 『무예도보통지』를 전통의 체육문화로 이해하고 심도있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무예의 기능은 다양하여 과거에는 군사기술이었으나 군사적 효용성이 감소된 오늘날 국민 체위의 향상과 국민들의 심신건강과 보건에 이바지하는 것은 천하공기(天下公器)로서 무예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기능인 사회적 공헌을 다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범례》에서는 당시 실제 전투의 실용면에서 군사 훈련으로는 익히지 않았지만 검세(劍勢)․곤법(棍法)․권법(拳法)을 후세 후손을 위해서 예비하여 마련해두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무예도보통지』의 찬술 정신 가운데 《병기총서》〈안설〉에서 표현한 이모경원(貽謀經遠)의 정신과도 통하고 있습니다.
  무예에서 검법(劍法)은 사람의 성품을 도야하는 양성(養性)의 기능이 뛰어나고 권법(拳法)과 곤법(棍法)은 오늘날에도 장소와 설비에 구애됨이 없이 간편하게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는 자료로서 유효합니다.
  권법(拳法)은 당대 가장 선진적이며 우수한 실용의 기법인 32세는 물론 내가권법․소림․무당․통비․35연수․18연보․10로 6단금 등이 집약되어 있어 오늘날 맨손(도수)의 건신(건강)무예로 계발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자료입니다. 특히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32세의 권법과 24세의 조선검법은 가장 근원적인 무예 개념을 함축하여 그 응용 범위가 광범위하여 오늘날 보건과 양생의 무예로 계발될 수 있는 활용성이 가장 뛰어납니다.


  오늘날 무예의 이용
  지금에 와서 무예는 군사기술의 효용성은 사라졌지만 조종의 맥을 이은 즉, 조상의 슬기와 정신이 담긴 전통을 계승한 군사체육으로는 여전히 이용될 수 있습니다.국민보건의 차원에서는 양생무예(養生武藝)로 계발되어져야 하는데 이 양생무예라는 개념은 곧『무예도보통지』에서는 후생(厚生)에 이용하는 무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표현은 어명을 받고 해서를 편찬한 학자와 무관들이 당시 실학에서 상공업의 발전으로 부국강병을 꾀하려던 이용후생학파였기 때문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통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예는 조선시대에는 군사 조련의 기능을 하였지만 지금은 지금의 필요에 따라 무예의 효용과 가치를 재고하여야 할 것입니다. 학교에서 ‘전통무예’ ‘전통체육’의 교과목으로 교과서를 만들어 청소년의 체육과 바른 의식교육에도 이용되어져야 합니다.
  흔히 말하길 교육의 3대 요소가 지․덕․체라고 합니다. 교육에서 체육은 중요한 부분인데 무예는 체육이며 요즘 인성교육이라 표현하는 덕육이 무예의 내면적 가치입니다. 『무예도보통지』라는 무예서적은 유형문화재이며 그 기예는 무형문화재입니다. 문화관광의 상품으로도 개발되어 국부를 창출하고 문화국가의 위상을 높이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부분에는 거의 화랑에 관한 정신과 제도로 일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무예로 신라의 화랑무예를 복원하고 신라천년의 고도인 경주를 오늘날 한국무예의 메카가 되는 도시로 육성하여 관광도시와 연결시키면 무예가 전통의 문화관광자원 또는 상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무예의 이용이란 정책입안은 전통의 교육자원으로 국민들의 인성함양, 체육교육, 전통문화교육, 관광객 유치로 인한 국부창출 등 한 가지로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예는 움직이는 철학이며 행동하는 도덕이 담겨 있으며 생동(生動)하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무학의 대의(大義)
  무학 공부에 뜻을 둔 사람이 무예를 연구 계발하고 발명하려는 대의는 역사 속에서 무예가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여 개인의 자아실현과 이웃을 도우며 더 밝고 더 살기 좋은 오늘과 내일의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 모든 국민 개개인이 지고(至高)한 행복을 누리자는 데 그 의의와 목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학(武學)의 연구와 진흥은 더 나은 우리들의 삶과 후손들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육교육의 자원으로서의 고대 무학
 고대의 무학(武學)과 서양의 현대체육학은 그 학문의 접근방법론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율동을 통한 인격도야라는 공통의 명제가 있고 지금은 무예를 전통체육 또는 동양체육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 ‘전통무예학’ 또는 ‘전통체육학’의 학제를 별도로 마련하거나 지금의 서양일변도의 체육학에 동양체육으로서 무예를 서양체육의 교과 과정과 나란히 병행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견해는 오래전부터 나현성(羅絢成) 교수께서 체육의 전통적 정신과 한국체육사의 연구를 강조하면서 주장해 온 내용입니다. 전통의 한국학과 서양학을 조화시키는 학제의 재편성은 비단 무예․체육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금의 우리나라 교육의 전반에 걸쳐 재고하여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천년 축적된 전통의 지혜와 지식을 등한시하는 것은 조상들이 유산으로 남겨 준 소중한 교육 자료를 스스로 손실시키는 어리석은 일이며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교육은 뿌리가 있고 주체적으로 개화된 문화 국가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본래 동․서양의 학문은 탐구의 방법만을 달리하여 왔을 뿐 그 취지가 다르지 않습니다. 교육을 중요한 국가 경쟁력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도 전통을 중시하는 교육은 우리의 장점으로 가장 유력한 경쟁력을 배양할 수 있고 국민적 역량을 발휘하게 됩니다. 유사 이래로 조상의 얼과 괴리되어 번성한 나라가 없었습니다.

  『무예도보통지』의 특수성
  우리나라 전승무예의 보전(寶典)인 『무예도보통지』의 편성과 그 무예가 기타의 다른 주변국의 무예서나 무예에 비하여 가장 탁월하다고 하는 데에는 크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무예도보통지』는 일개인의 장군이나 무술인 또는 애국자가 편찬했거나 아니면 종문(종교의 문파)이나 가문의 차원에서 편찬된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역량을 결집하여 어명으로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전승되어 오는 조종의 무예를 정리하며 수많은 동양의 서적 가운데에서 고대무예의 정수를 뽑아 한 권에 집성한 나라의 기예, 즉 국가의 무예라는 것입니다. 중원의 소림권이나 태극권처럼 한 종문 또는 가문의 유산이 아닙니다. 이 사실이 만약, 전통의 문화유산을 중시한다면 『무예도보통지』와 그에 실린 무예 십팔기가 국가적 차원에서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되어지고 재현시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둘째,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된 십팔기는 모두 정법무예(正法武藝)로만 구성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무예는 한 가지 세(勢)가 백 가지 세로 변화되는데 십팔기는 변화된 세인 화법(花法)은 모두 배제하고 각 무예마다 무예에서 가장 골자가 되는 정법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셋째, 18세기에 화약병기의 발달로 사라져가는 고대의 군사기술이 보존의 차원에서 집성되었다는 것과 당시에 전군영의 무예교습을 통일시키기 위한 표준무예로 정리되어 실제의 군영에서 군사를 조련하고 무과의 시취과목으로 이용된 군사무예이기 때문에 가장 실전적이며 실용적인 무예기술입니다. 지금은 고대의 무예를 십팔기의 체제로 한 눈에 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고 표현합니다.
  넷째는 내용을 편성한 방식에서 특출합니다.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원(原)․증(增)․안(案)이라는 표기기호를 사용하여 전승무예의 정립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쉽고 밝게 알 수 있도록 기록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합도(合圖) 또는 총도(總圖), 총보(總譜), 조선세법(朝鮮勢法), 연보(連譜) 등의 기록입니다. 총도(總圖)와 총보(總譜)는 각 기예의 여러 세를 모아 그 기예의 전모(全貌)를 한눈에 보여주고 움직임까지 볼 수 있는 예지(叡智)의 결정입니다. 전 기예에 대한 총보(總譜)와 총도(總圖)는 기존의 어느 무예서․병서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입니다.
  예도보(銳刀譜)라고 기록된 조선세법(朝鮮勢法)은 유일하게 전수되어 내려온 고대 단군조선의 검법으로 동양의 모든 검술의 모법(母法)이 되며 검보(劍譜)의 문자(文字)이며 검법(劍法)의 골자(骨子)입니다. 무용(武勇)을 숭상하고 실천하여 불멸의 나라임을 증명하고 겨레의 자부심을 전하고 있는 자료입니다. 지금도 대만이나 대륙으로부터 들어오고 있는 무당검술이나 태극검 등에서도 조선세법의 기초인 격자격세(擊刺格洗)의 법이 그들의 검세(劍勢)에서 모법(母法)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보(連譜)는 요즘 말로 투로(套路)라고 하는 것으로 당시의 무예는 병서의 부기(附記)형태로 무예의 세를 나열식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는 순전히 무예에 관한 전문서적으로 전서의 기예를 실전에 입각하여 군사 조련용으로 공방을 틀을 짜서 구성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열식으로 된 세를 장수의 안목으로 사용하던 것을 조선에서는 당시의 조선식으로 각각의 기예를 완전히 독창적인 모습으로 승화시킨 무예의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예도총도와 총보는 조선세법이 『무예도보통지』의 기록으로 다시 찾기 전에 근세조선의 군영에서 발전한 연결하여 군사를 조련하던 당시의 검보인데 일명 예도속보(銳刀俗譜)라고 합니다. 조선세법 24세는 본(本)이 되며 예도속보는 본(本)에서 나와 새로운 하나의 풍격을 갖추고 있어 모두 소중히 하여 보존의 차원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따져 가면 우리 무예를 전하고 있는 『무예도보통지』의 독창성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본서의 찬술 정신
 『무예도보통지』의 찬술 정신을 서적에서 표현한 용어와 낱말로 몇 가지 간추려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위국보민(衛國保民)의 정신입니다. 국가를 지켜서 국민을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보민(保民)은 역시 애민(愛民)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이모경원(貽謀經遠)의 정신입니다. 후세에 끼칠 영향을 염두에 두고 멀리 미래를 내다보며 무예서적을 편찬한 것입니다.
  셋째는 만세승평(萬世昇平)의 정신입니다. 만세토록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를 열기위하여 편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불부국가(不負國家)의 정신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가를 저버리거나 배반하지 않는 충직하고도 정예로운 군사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편찬되었습니다. 
  다섯째는 실용(實用)의 정신입니다. 당대의 실학자중 이용후생학자들에 의하여 편찬되었고 당대의 사조인 실용정신에 입각하여 편찬되었습니다.

  불멸의 나라
 《병기총서》 안설에 나오는 이모경원(貽謀經遠)이란 넉 자에 대하여는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낱말에는 우리나라의 역대 지도자들이 나라를 경영해온 핵심사상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도 가장 중심에 자리한 지리적인 운명으로 외세의 끝없는 도전을 받으면서 겨레의 자존(自存)을 고수해온 저력의 원천이 이 넉자를 실천해온데 있다고 봅니다. 항상 후세․후손들의 영광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멀리 내다보며 대하(大河)의 흐름을 읽고 미리 준비․예비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처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백두산을 옛날에는 불멸산(不滅山)․불함산(不咸山)이라고 하였는데 다함이 없는 생명력으로 불멸의 나라가 된 것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정신을 실천해온 선조들의 삶의 방식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경국(經國)의 대요(大要)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경국의 대요는 항상 무문일체(武文一體)의 관점하에서 문무를 겸수한 인재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에서 백관(百官)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모든 지도자는 습무(習武)를 필수로 하여 상무(尙武)의 기풍이 드높았습니다. 근세조선은 병서에 병(兵)은 백 년을 쓰지 않을지라도 하루라도 대비가 없으면 안 된다.[兵可百年不用而 不可一日無備也]’고 한 사실을 망각하고 무비(武備)를 소홀히 하여 결국 임진(壬辰)과 병자(丙子)의 침습(侵襲)을 받고 난후 당시의 지도자들에게 무비(武備)의 중요성을 다시 각성시켰습니다. 그래서 당대 선진무술로서 전승무예를 새로이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인데 이러한 반성으로 나온 것이 『무예도보통지』입니다.

  무학보(武學譜)
  전통의 예능에서 보(譜)란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의 사상이나 사물의 종류나 계통을 적은 표책(表冊)인데 무예에 관한 무보(武譜)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세가(勢架)의 명목(名目) 즉 권가투로(拳架套路)의 동작 명칭과 용법의 순서를 적은 권보(拳譜)와 병계보(兵械譜), 무예 이론(武藝理論), 무예가의 전수 계통(傳授系統)인 세계(世系)와 연원(淵源)을 기록한 내용, 무예전문서적과 병학서(兵學書)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이 모두에 부합되는 전통의 ‘무학보(武學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무예의 정명(正名)은 십팔기
  오늘날 전통무예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의 전승무예가 『무예제보』에서 육기(六技)가 정리되고 『무예신보』에서 십팔기(十八技)로 정립되어 다시 『무예도보통지』에서 24기(二十四技)로 발전되어 성립되었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러한 이해는 크게 틀렸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정확한 이해는 아닙니다. 《병기총서》의 영조  35년조와 안설(案說)에서 나타난 문장을 살펴보면 본조(本朝)․무예(武藝)․정명(定名)의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우리 무예의 정형된 틀로서 십팔기(十八技)란 이름으로 정하여 지어졌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십팔기 가운데에서 창술(槍術)은 너무 긴 낭선(狼筅)을 제외하고는 말을 타고 응용할 수 있어 당파 다음, 낭선 바로 전에 기창(騎槍)을 편입시키고 있으며 쌍검(雙劍)․월도(月刀)․편곤(鞭棍)도 말을 타고 응용할 수 있으므로 각각의 보병기예인 근본기예 바로 뒤에 붙여서 편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편성방식에서도 선조들이 규정한 조선무예의 이름은 십팔기(十八技)가 바른 이름[正名]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십팔기(十八技)란 명칭
  십팔기는 우리나라 역사상에서 최초로 우리나라의 무예 명칭을 국가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조선 영조(35년, 1759) 당시 대리청정하던 소조(小朝) 장헌세자가 『무예신보(武藝新譜)』또는『무기신식(武技新式)』이라 불리는 서적을 무관들에게 무예를 상습(常習)시킬 목적으로 편찬하면서 붙였는데 지금은 이 서적이 유실되고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무예도보통지』에 모두 편입되었기 때문에 현재 전하고 있는 『무예제보』와 『무예도보통지』를 서로 비교하여 살피고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에서 신․구(新舊)의 서적의 표기(標記)인 원(原)․증(增)․안(案)의 글자를 따라 검토하면 거의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언해본과 함께 자세히 검토해본 결과 왜검과 왜검교전 이외에도 근본기예인 십팔기의 응용기예로서 기창(騎槍), 마상월도(馬上月刀), 마상쌍검(馬上雙劍), 마상편곤(馬上鞭棍)의 네 가지 기예(騎藝)와 함께 모두 22기(二十二技)가 실려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무예신보』에서 말 타고 운용하는 무술인 마상사기(馬上四技)까지 모두 22기가 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칭을 ‘이십이기’라 하지 않고 ‘십팔기(十八技)’라고 한 것은 보군의 기예[步技]가 근본기예이며 마군(馬軍)의 기예[馬技]는 응용되는 기예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정조대에 편찬한 『무예도보통지』는 임진왜란에서부터 정리되기 시작하여 2백여 년 만에 국방무예의 가장 완전한 전범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생부인 소조(小朝)가 하던 무예진흥의 사업을 계승하여 소조(小朝)이후 다시 잠몰(潛沒)된 무예진흥의 정책을 드러내어 십팔기(十八技)는 군사조련으로 이습(肄習)하도록 하고 말 타고 하는 기예(騎藝) 4기는 무과시취(武科試取)의 과목에 증입(增入)시키고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면서 군사오락인 격구와 마상재도 군사들의 체력단련으로 조련의 효과가 있어 그 22기의 아래에 붙여서 더 완벽성을 기한 것입니다.

  서적과 문화국가
  우리나라의 저력은 오랜 역사와 더불어 어느 시대에서나 수준 높은 문화를 창조하여 왔던 문화의 창조력에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시대를 리드하는 신문화의 창조는 전통의 유산을 기본 자원으로 하여 창출됩니다. 전통의 유산은 서적을 통하여 후세로 전수되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서적은 선조들이 남긴 정신문화의 소산으로 새로운 시대 환경을 창출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도출하는 자료입니다. 서적을 소중히 여기고 지킬 줄 알아야 문화 국가의 전통을 유지하고 세계를 리드하는 문화 민족이 될 수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서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문화 국가는 옛 선조들의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을 복구․보존하며 국민들의 생활 가운데서 향유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역대로 우리나라는 문화 국가를 지향하여 왔고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전문과 헌법 제9조를 비롯한 제조항에서 문화 국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겨져 있는 서적을 보면 조선시대의 것이 대부분이고 고려 이전의 서적은 매우 희귀합니다. 반면에 같은 문화권에 있는 중공은 고대서적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전쟁을 통하여 수탈되었고 왕조의 대를 이어가며 국고정리 사업을 하여 본래 뿌리가 없었던 중화문화를 형성하는데 윤색되어 편입되어 버린 것입니다.
  고대 겨레의 영지였던 산동반도에서 전한 최고의 과학기술서적인 『고공기』가 『주례(周禮)』에 편입된 것이 그렇고 산동반도의 출신이며 동방의 군신(軍神)으로 추앙받았던 치우천왕의 직계후손인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이 편찬한 병서 『육도삼략』이 그러하고 『서경』에 편입된 《홍범》이 그러합니다.
  동양고전의 연구가인 강무학(姜舞鶴) 선생에 따르면 『육도삼략』『음부경』 등의 서적은 고대 동이의 문서라고 합니다. 그 증거로는 내용에 있어서 홍범의 원리에 따라 씌어졌고 용어의 사용이 우리 선조들의 생활양식과 밀접하며 그리고 송나라 석실(石室)의 서적이란 것이다.
  또한 동이서적은 전통적으로 서본말(緖本末)의 구성이 완벽한 설계 아래에서 만들어지고 지나인들의 책은 설계되지 않은 대화식으로 이루어지는 완연한 차이가 있으며 『육도삼략』 등은 완벽한 설계 아래에서 조서(造書)되었기 때문에 약탈된 동이서적이 윤색되어 중화문화로 편입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동양의 고전은 『주역』 『내경』 『음부경(陰符經)』과 같은 설계 아래 만들어진 경전이 있는가 하면 『논어』 『맹자』와 같은 대화식의 경전이 있습니다. 『육도삼략』과 『이위공문대』의 두 병서를 비교하거나 『황정경』과 『도덕경』의 차이를 비교해 보아도 이 설(說)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보며 깊이 있는 연구가 요하는 분야입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며 문화전쟁의 시대입니다. 고전연구를 통하여 선조들의 전통문화의 계승, 깊이 있는 인문학의 발전, 21세기 중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계 경영에 대비해서라도 차세대의 한문교육은 절대적으로 중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武)는 무예(武藝)나 무덕(武德)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무(武)의 글자를 해의(解義)하기를 병과(兵戈: 전쟁)를 그치게 하는 것이 무(武)라고 하여 ‘지과위무(止戈爲武)’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개념은 동양권에서는 변할 수 없는 무(武)의 근본 의미입니다. 결국은 폭력을 다스리는 명분이 병력(兵力)이며 무력(武力)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폭력(暴力)을 다스리는 것이 무력(武力)이라고는 하지만 병법에서 사용되는 군사기술인 무(武)는 생명을 살상(殺傷)하는 의얼(意孼)은 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무(武)’그 자체는 온전한 것이 아니며 예(藝)와 덕(德)으로 승화되어야만 하는 미완태(未完態)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조가 군사무예의 표준 전범을 찬술하면서 『무예도보통지』라고 명명한 것이나 우리 선조들이 굳이 ‘무예(武藝)’라는 명칭을 고집한 이유가 무(武)에는 반드시 윤리 가치의 덕목이 첨가되어 공공 사회의 덕성으로 정의와 희생․인내․용서․화해 등의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야만 무(武)가 온전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병기총서》안설의 끝 부분에서 쓴 ‘만세의 태평한 세월을 전쟁을 그치도록 화육하는데 영원히 의지한다’는 문장은 ‘武’의 글자에 나타난 우리나라 전통의 용무사상과 철학으로 보며 근본적인 무(武)의 용도를 밝히고 『무예도보통지』의 찬술 정신과 정조의 교화 사상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규장각과 장용영을 통하여 문무(文武)를 동시에 진작하는 정책을 폈으며 이을 통하여 백성을 교화하였으니 상고시대로부터 내려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 세계(理化世界)를 실천하는 맥락과 같이하고 있다고 봅니다. 교화정치는 지도자가 솔선하여 수범을 보일 때에만 가능합니다.

  동북공정에 대비한 무학연구의 필요성: 조선세법
  무술에 관하여 1950년대나 1960년대에 나온 중화서적과 요즘 동북공정 이후 나오는 중공서적은 그 기술방식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학문적인 자료위에서 균형을 가지고 서술한 것이 5~60년대 무술서적이라면 요즘 서적은 완전히 일방적이라 할 만큼 균형을 잃고 자국 중심의 근거없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를 들면 명나라 말기 무너지는 명을 세우려고 모원의 3대가 모아 집성한 『무비지』에도 그 발췌한 출처의 근원을 밝혀야 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없이 《조선세법》이라고 명기한 것을 요즘 중공에서 들어오는 자료를 보면 아무런 근거자료의 제시도 없이 중국에서 조선으로 건너간[傳到] 중국의 고로검보(古老劍譜)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이러한 위서(僞書)를 근거자료로 하여 진실이 왜곡되어 버립니다.
  동북공정은 지금 중공이 벌이는 국고정리 사업이며 역대로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 서적 등을 왜곡하여 왔다고 봅니다. 《조선세법》은 그 자체로 온전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 고검보(古劍譜)로서 다른 서적에는 없는 매우 희귀하고 귀중한 자료이며 지금도 한․중․일 무예계에서 중시하고 있는 유일한 한국 고유의 무예 자료입니다. 근 400년 전에 ‘조선 검세의 법 ’이므로 중화의 서적에 《조선세법》이라 명명(命名)한 것을 지금에 와서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논리로 중국의 검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하기는, 단군조선과 고구려가 중원 땅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요. 진부하지만 그 논리를 반박하여 보렵니다.
 ‘중국무술대사전’과 ‘무학탐진’이란 책에서 그 이유를 세법(勢法)이란 용어가 중국검법의 전통용어이며 세명(勢名) 가운데 군란(裙襴)․체보(掣步)․직부송서(直符送書․조천세(朝天勢)․수두세(獸頭勢) 등이 명대각가(明代各家)의 창곤권보(槍棍拳譜)의 용어[詞語]이고 보(譜)가운데에 수상(繡像: 섬세하게 그린 화상(畵像))한 인물이 명대의 복식(服飾)이라는 것인데 그러한 근거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먼저 모원의 삼대가 수집한 병서는 고병서(古兵書)이지 명대의 병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세법(勢法)이란 용어는 동양권 무예의 용어이지 중국검법에 국한된 용어가 아닙니다. 세명(勢名)에서도 군란(裙襴)이란 통치마는 고대의 문물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고 있는 일본 무사들의 옷차림에서 더 잘 보이고 있고 고대무사들의 옷차림으로 생각됩니다. 직부송서(直符送書)는 고대병가의 용어로 명대의 무술만 아니라 병장무술에서 쓰는 용어이며 조천세(朝天勢)는 천자(天子)에 조례(朝禮)한다는 뜻인데 천자사상(天子思想)은 오히려 중국학자들이 말하듯이[후한, 채옹(蔡邕:133~192)의 『독단(獨斷)』‘天子之號稱 始於東夷 父天母地 故曰天子’] 천제(天祭)를 받드는 동이(東夷)의 군왕(君王)을 칭하여 천자라고 하였으니 하느님을 본신(本神)으로 삼고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를 일체(一體)로 삼았던 우리 겨레의 철리(哲理)에 합당한 용어입니다. 수두세(獸頭勢)는 짐승의 머리를 말하니 고대 자연 속에서 무예를 단련하면서 생겨났으며 중간의 높이를 기준으로 직자(直刺) 또는 횡격(橫擊)하는 세(勢)의 용어이지 명대에 무술가들만이 쓰던 용어는 아니었습니다. 모든 세명(勢名)과 〈검결가(劍訣歌)〉의 용어도 동이문화에 더 합절(合節)한 내용입니다. 오히려 중원을 무대로 활동한 고대 동이무예의 자취가 명대각가의 무술 형태에 스며들어간 흔적들인 것으로 봅니다.
  『무비지』에 나타난 그림들은 『기효신서』가 다르고 『왜한삼재도회』가 다르고 『무예도보통지』가 다르니 도회(圖繪)는 그 나라와 시대 정황에 맞게 그리는 것입니다. 『무비지』의 《조선세법》은 명명(命名)한 그대로 ‘조선검법의 초세(招勢)’이며 고대 또는 상고시대 우리나라 전래 무예의 정형(定型)을 짐작할 수 있는 검보(劍譜)입니다. 지금 중공의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명조(明朝)에 전수되어 갔다[傳去]는 내용의 실상은, 왔다면 조선조에 우리 병서나 무예서에 기록되었다가 다시 중원에 흘러 들어가 『무비지』를 편성할 때 기록되었다는 말인데 병서편찬과 무예 전수라는 시기적 상정으로도 도무지 맞질 않습니다. 지금은 다만 고구려의 무예를 고려가 계승하여 재정립된 『김해병서(金海兵書)』〔처음 편찬시는 『武略之要訣』이었음〕 등이 원(元)이 고려를 공략할 때 유실되어 모원의(茅元儀)가 수집한 병서 목록에 들어가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문서의 구성의 꽉 짜여진 체계로 설계되어 있고 용자(用字: 글자의 사용)에 완벽성이 보이는 것은 《조선세법》과 《권법》의 〈32세 장권〉과 동일합니다. 정충두의 『소림곤법천종』 등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매우 확연합니다. 〈32세 장권〉은 근래에 중국무술연구가들[金一明․萬籟聲]도 그 유래가 너무나 오래되어 그 기원을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학술에서 확신만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두 문서는 최소한 단군조선의 시기에 이미 패권(覇權)의 시대가 시작되어 우리 조상들이 겨레를 보존하려고 만들어진 문서가 확실하다고 봅니다. 무예는 국민의 정신과 신체를 배양하며 겨레의 역사와 문화를 수호하는 근원의 힘이 도출되는 원천이니 문화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 헌법 규정에 따라 정부는 무예의 전문 인재를 양성할 의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무학탐진』이란 책에서도 너무 일방적으로 근없는 논리를 펴고 있어 무엇을 어떻게 반론하고 그 단서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러 있습니다. 《조선세법》은 임진왜란 때 유격장군이 조선에 형초장검을 전수한 것이라 하고 한편으론 당시에 동정한 장수가 조선에 있는 것을 가지고 가서『무비지』에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시기에 전수하고 다시 가져갔다고 하니 참으로 황당한 논리입니다.
  오늘날 학술은 어쩔 수 없이 문화전쟁의 최전선입니다. 국민보건의 차원에서 국가에서 무예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여 국민들의 보건과 양생에도 이바지하고 전혀 근거 없는 학술 문화침략에 대비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예의 기능 
  무예는 봉토국가 시절에는 주로 정예 군사를 양성하는 병학(兵學)의 일부로 취급되어 무과(武科)의 응시자나 무반(武班)들이 기사격자(騎射擊刺)로 군사기술을 익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를 오늘날 사람들은 호국무예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예의 본래 의미와 용도는 매우 포괄적이며 다양한 기능과 용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예(武藝)의 무(武)는 일상에서 몸 단련을 중시하는 상무(尙武)의 실천을 말하며 예(藝)는 심신이 승화된 상태를 말합니다. 예(藝)의 글자는 본래 ‘종자(씨앗)를 심는다’는 뜻인데, 어릴 때부터 스승은 제자에게 무(武)의 덕목과 기예를 심고주고 제자는 자신에게 심어진 기(技)와 덕(德)을 고련(苦鍊)과 항심(恒心)으로 꽃피우고 열매를 맺어 완결을 보아야 하는 교육과 학습의 시종을 함축하여 담고 있는 용어입니다. 무예의 함축적 의미는 곧 무예의 용도가 됩니다.
  항심(恒心)으로 고련(苦鍊)하는 과정이 바로 무예에서 가장 중시하는 심신을 도야하는 수양(修養)이라 표현합니다. 기(技)를 숙련시키는 과정은 건강과 호신․체육의 효과를 낳고, 사회생활에서 스승이 강조하는 무덕(武德)을 실천하므로 무예가 실천윤리학이 되며 도덕사회를 창출하는 교육자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예 수업의 전 과정에서 호연(浩然)한 민족의 정기가 고양되고, 호국(護國)의 기치를 높일 때 군사무예로 전용되었던 것입니다. 개인의 성령(性靈)을 연마하는 종교 수행에서 공력(功力)을 배양하는 방법으로도 응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무예는 신체를 단련하는 체육이면서 내외(內外)를 겸수(兼修)하여 실천하는 윤리이며, 공방기격(攻防技擊)의 호신술(護身術)이며, 건강을 도모하는 양생법(養生法)이며, 유형․무형의 문화 유산이란 다양한 기능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예의 다양한 측면에 대하여 과학적 탐구 방법으로 계통적이며 논리적인 지식의 체계를 확립하여 먼저 자기를 완성하고 건전한 도덕사회가 되도록 공헌하며, 인류의 문명(文明)을 진보시키기 위한 학문적 연구를 ‘무예학문(武藝學問)’또는 줄여서 ‘무학(武學)’이라고 합니다.
  무예는 다양한 기능과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에겐 반드시 필요한 학습과목이 됩니다. 무엇보다 사람은 몸이 건강하여야 생활에 활기 또는 생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무예는 가장 우수한 건강법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군사기술이 가장 최첨단 기술이듯이 무예는 과거의 최첨단 신체배양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무예는 여전히 그 가치와 본질에 따라 본래의 다양한 기능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폭넓고 풍부한 무예학문의 전개가 요구되는 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도의 기계문명과 균형을 취할 수 있는 정신문명의 발전이 요구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무예진흥은 기실 국가차원에서 할 일이며 일개인은 한계가 있습니다.
 
                                                                2007년 2월 朴淸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