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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범(海帆) 무예(武藝)의 계보-「해범 김광석 한국무예발표회」
  글쓴이 : 심우성     날짜 : 07-07-17 23:43     조회 : 6168    

누구나 󰡐해범󰡑을 처음 대하였을 때, 그를 무인(武人)으로 짐작하는 사람은 드물다.
 본인에게는 대단히 실례이지만, 50이 넘은 그이지만 홍안 미소년이다. 공부삼아 그의 무예 내력을 집요하게 물어보았더니 그저 웃기만 한다. 나의 성화에 견디다 못한 󰡐해범󰡑은 이렇게 불쑥 실마리를 풀어 놓는다.

 󰡒……나야 무예라기보다는 수양으로 시작된 일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안으로는 오장육부(五臟六腑)와 밖으로는 사지백해(四肢百骸)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를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기(氣)에 의존하는 것이다. 기(氣)에는 음기(陰氣)와 양기(陽氣)가 있다. 음기란 음식을 먹어 장에서 소화시킨 영양의 기(氣)로서 폐(肺)로 올라온다. 양기란 대기권의 정기(精氣)를 호흡으로 당겨 폐로 받아들이는 기운을 말한다. 따라서 음기는 내적으로 오장육부를 다스리며 안으로 돌고, 양기는 외적인 것을 다스리며 밖으로 돈다. 이 두 기(氣)는 우리 몸을 50주천(周天)한 후에 한 생명체의 흐름인 기(氣)로 변화하는데, 이를 원기(元氣)라 한다. 원기 이전의 기(氣)는 단지 육신을 보존하는 생기(生氣, 生神)로만 돌다가 원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생명체의 힘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영기(靈氣)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나무는 생기만 있고 원기가 없기 때문에 힘이 없고, 움직임이 없고, 사고 능력이 없다……. (후략)

 ……무예의 모든 동작은 오법(五法: 眼法․手法․身法․步法․腿法)에 따르는 것인데, 눈은 마음을 의지하고, 마음은 기(氣)를 의지하고, 기(氣)는 몸을 의지하고, 몸은 손을 의지하고, 손과 몸은 발을 의지한다. 따라서 이 모든 움직임이 원칙에 맞아 한식(一式)에 일체화해야 된다.
다시 말하자면 율동은 삼절(三節)로 이루어지는데, 󰡐제1절󰡑은 주먹이 나가면 팔꿈치와 어깨가 따라 나간다. 󰡐제2절󰡑은 발이 나가면 무릎과 대퇴가 따라 나간다. 제3절은 허리가 나가면 가슴이 따라 나가고, 가슴이 가면 곧 마음이 간다. 따라서 한 동작마다 전신이 움직이는데, 이때 반드시 󰡐오법󰡑에 맞게 율동해야한다……. (후략)

 ……무예란 인체를 단련하여 심신을 철석같이 만드는 데에 있다. 외적으로는 근(筋)과 피(皮)와 육(肉)과 골(骨)과 뇌(腦)․막(膜)․경(勁) 등을 단련시키고, 내적으로는 생명의 흐름인 기(氣)를 한 숨에 이루는 공부(功夫)를 하여 마음이 있는 곳에 기(氣)가 흐르게 하고, 기(氣)가 흐르는 곳에 외적인 조건이 한꺼번에 따라 움직이게 해야 하는 것이다……. (후략)

 ……무예를 연마하는 데에는 강유(剛柔)가 하나이고, 쾌(快)와 만(慢)이 상간(相間)되어야 하며, 허(虛)와 실(實)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거미줄이 연결되듯 동작이 연결되어야 하며, 힘은 부(浮)와 침(沈)이 편중(偏重)되거나 편부(偏浮)되지 않는 가운데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후략)

 ……또 무예를 수련하는 공법(功法)에는 크게 동공(動功)․역근공(易筋功)․정공(靜功)으로 나눈다. 동공이라 함은 글자 그대로 움직여서 공을 이루는 것을 말하는데, 이 움직임은 반드시 그에 맞는 원칙에 의한 자세와 힘과 동작과 시간으로 움직여야 한다. 역근공 또한 그에 맞는 원칙적인 움직임과 호흡에 의해 이루어진다. 또 정공이란 수단지도(修丹之道)의 정(情)․기(氣)․신(神)을 단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천하의 모든 생물은 음․양의 이치에 따라 생장하는데, 사람은 더 말할 나위 없을 뿐더러 수련하는 데에는 더욱더 중요한 것이다. 정․기․신은 무형지물(無形之物)이지만 근골(筋骨)은 유형지물(有形之物)이다. 그래서 반드시 먼저 유형자(有形者)를 수련하여 무형의 좌배(佐培)로 삼고, 무형자(無形者)를 유형의 보필로 삼아야 하며, 이로써 하나가 둘로, 둘이 하나가 되는 법이다. 만약 무형만 배양하고 유형을 버리면 안 된다. 또 유형만 수련하고 무형을 버린다면 더욱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형지신(有形之身)은 반드시 무형지기(無形之氣)의 의지를 얻어야 하며, 서로 엇갈리지 않아야만 부양지체(不壤之體)가 되는 것이다. 만약 서로 엇갈려 의지하지 않는다면 유형도 역시 무형으로 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골(筋骨)을 연마하려면 반드시 기(氣)를 수련해야 된다. 하지만 근골을 수련하기는 쉬워도 막(膜)을 수련하기는 매우 어렵다. 더하여 기(氣)를 연마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먼저 극히 어렵고 난잡한 곳에서부터 확고한 기초를 세워 놓아야만 훗날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를 진법(眞法)으로 삼아 지기(之氣)를 배양하여 중기(中氣)를 지키고 정기(正氣)를 보호해야 한다……. (후략)

 ……흔히 말하는 건강 호흡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심호흡을 하여 폐활량을 늘이고, 신경총을 원활케 하고, 횡경막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체의 순환 기능을 발달시켜 각 기능을 윤활케 해주는 의료적인 호흡이라 할 수 있겠다.
 수단지도(修丹之道)를 이루는 정공(靜功)은 삼궁(三宮: 精․氣․神)을 단련시키는 것으로 이와는 달리 매우 어렵고 깊다……. (후략)

 ……무예를 오래 수련하면 정신수계(精神修界)의 극치인 도(道)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무예를 익힘으로써 신체가 단련되고 무술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면 자연히 정(精)과 기(氣)와 신(神)이 단련됨으로써 신체 조건이 원활해져 쾌식(快食)․쾌변(快便)․쾌면(快眠)을 하게 되니 심신이 맑고 건강해지는 것이다……. (후략)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무예란 소시(少時)로부터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사람 됨됨이를 수양하는 가운데 함께 배운 것이니…….󰡓

 한번 입이 열리고 보니 해범의 이야기는 끊일 줄을 모르고 갈수록 그 깊이를 헤아릴 길 없다. 다른 기회에 그의 인생관과 무예관을 함께 정리하여 보고 싶은 욕심이다.
 각설하고, 우리나라의 전래(傳來) 무술은 병장무예(兵將武藝)와 도가무예(道家武藝)로 크게 나뉘고 있다. 물론 이밖에도 불가무예(佛家武藝)를 비롯하여 여러 갈래의 자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병장무예가 병장기(兵仗器)를 주로 하면서 실제 전쟁에 활용된 것이라면, 도가무술은 심법(心法)에 의한 권장술(拳掌術)을 위주로 하며 심신의 수련으로 그 맥을 이었다 하겠다.
 실상 이렇게 나누기는 하였지만, 실제로 위의 두 무술은 필요에 따라서는 서로 밀접히 왕래하기도 하였음이 우리의 무예사(武藝史)나 종교사(宗敎史)를 통해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도교(道敎)는, 이 땅에 들어오면서 주체적인 종교 내지는 사상으로 수용되면서 도가(道家)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맥락을 이룩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실을 극복하는 데 앞장서기보다는 한걸음 뒷전에서 응시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의 인식이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래 고려, 조선 왕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상과 무예 양면에서 단단한 뒷받침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해범의 스승이신 오공(晤空) 윤명덕(尹明德) 선생을 비롯하여 이분들의 인맥이 다행히도 《무예도보통지》의 실기를 재현하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음을 미루어 이러한 생각이 더욱 굳어지는 것이다.
매사에 서두르기를 싫어하는 해범을 부추겨 <해범김광석한국무예>라는 발표회를 가지면서 이 자리가 우리 무예의 줄기를 세워가고, 아울러 전통 예능 가운데서 특히 춤과 놀이들의 본디를 살필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다.
 《무예도보통지 실기해제》의 출판을 맡아 주시고, 이어서 이번 발표회를 주관하는 도서출판 동문선의 신성대 사장과 해범의 문하생 여러분께 고마운 뜻을 보낸다.

                                                          1987년 12월
                                  沈雨晟(문화재전문위원, 한국민속극연구소장)


신성대   09-01-15 12:01
위 글은 1987년 12월 22,23일 서울 동숭동 바탕골소극장에서 공연된 <해범 김광석 한국무예발표회> 팜플렛에 실린 글입니다.
당시 문화재 전문위원이셨던 한국민속극연구소장 심우성 선생님과 해범 선생님이 함께 출판한 "무예도보통지 실기해제" 출간을 기념하면서 개최한 십팔기 발표회였습니다.

해범 선생의 십팔기가 최초로 공개된 이 발표회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전통무예에 대한 관심과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발표회는 십팔기의 전승, 발굴, 재연의 중차대한 의미와 함께 한국현대무예사의 일대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우리나라에 전통무예에 대한 자각이 싹트기 시작하여 이후 전국적으로 전통무예 붐이 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