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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장 사진으로 보는 국격(國格)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12-06-04 16:52     조회 : 2668    

'세계적 웃음거리' 근조용 위생마스크
 
한 장 사진으로 보는 국격(國格)
 
신성대 논설위원(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무예계든 무용계든 고수들은 그들의 시연 사진 한 장만 보고도 그 내공의 깊이를 능히 짐작한다. 심리학자들은 협상, 면담, 강연, 토론, 접대하는 행사 사진 한 장이면 예리한 그 사람의 관록은 물론 심리 상태 및 진정성, 심지어 과거와 미래의 운수까지 알아차린다. 사람을 많이 접해 본 리더들은 굳이 사주관상 보는 법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자세, 눈초리, 입 모양, 걸음걸이, 손동작 등 상대의 행동거지 하나만 얼핏 보고도 충분히 그 속을 들여다본다.
 
영광의 귀환?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라면 살아서 고향의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것일 게다. 그보다 더한 바람이 또 어디 있을까. 북한에서 미군 유해인 줄 알고 발굴해 미국으로 가져갔던 한국전쟁 순국 용사들의 유해 12구가 10년을 기다린 끝에 지난달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전쟁 발발 62년, 참으로 민망스럽고 또 감격스런 일이다. 대통령까지 공항으로 나가 그들을 엄숙하게 맞았다.
 
헌데 공항에서 대통령과 함께 운구하는 영헌봉송단의 의전 모습을 보니 아쉬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 아직 대한민국이 선진국 되려면 한참 멀었구나! 물론 다른 의전도 대부분 개념 없이 그저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우리 한국식이라고 고집하면 그만이겠으나, 이번과 같은 호국영령들을 모시는 국가기관의 의전 형식은 도무지 그 근거가 어처구니없거나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경우이다.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지만, 글로벌한 시각에서 보면 한심한 어글리 코리아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꼴이다.
 
12명의 전사자들 중 한 명은 학도병으로 신원이 밝혀졌다. 그들의 유족은 물론 대통령까지 공항에 나가 그들을 직접 맞이하여 운구를 인도했다. 물론 지난날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용사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족하고 여전히 허전한 무엇이 느껴진다.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 연출?
 
유해를 안고 오는 국방부 의전병사들이 모두 흰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언제까지 이 모양인가? 전 세계에서 이런 의전에 마스크로 입, 아니 안면을 가리는 의전이 어디 또 있다던가? 그게 어때서? 당연한 일이 아닌가? 예전에 어느 분이 이 일로 국방부에 시정할 것을 권했더니, 돌아온 답변은 더욱 가관이었다. 위생을 고려한 관례적 조치이며, 운구를 맡은 젊은 의장대 병사들의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나. 그러니까 그 엄숙한 순국용사들의 유해를 봉송하는 일이 실은 화장장 일처럼 혐오스런 일이란 말이 아닌가? 

 
 
대한민국, 혹은 미국이 콜레라, 사스 등 전염병이 창궐하는 미개국이던가? 그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한 군인들인가? 하면 거기에 참석한 유족은 물론 내외귀빈들부터 먼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지 않는가? 과거 냉동 시설이 없었던 시절, 시신의 썩는 냄새 때문에 마스크를 쓰던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여 일제 때 배운 그 의전 형태를 대한민국 국방부가 아직도 고집하고 있는 게다. 그때 배운 그대로 아무런 시대적, 글로벌적 개념 없이 지금까지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 김정일 장례식에서 누가 위생 마스크를 썼던가? 북한에서도 이런 모습 없어진 지 오래다. 하물며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이 무슨 해괴한 모습인가?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그렇게 결벽증적일 정도로 위생에 엄격했던가? 유골이 아닌 유해(주검, 시신)라 해도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쓰는 일은 그 용사들의 시신을 불결하게 여김이다, 하여 그 영혼들을 모독하는 일임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용사들의 운구를 맡는 일은 숭고하고 영광스런 일이다. 그게 어찌 낯부끄럽고 망측한 일이던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일본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차장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지난날 인간을 마루타로 삼아 생체실험을 했던 일본 731부대를 떠올린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귀중한 보물이나 유물을 다룰 때에 장갑을 끼기도 한다. 허나 유해는 물건이 아니다. 설사 방금 전사한 유해라 해도 국립묘지에 안장할 때까지는 한 인간으로서, 한 인격체로 여겨 그들의 손을 잡아 이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엄숙해야 하는 곳에서 의전 군인들이 혹여 웃거나 격정에 차서 울먹거리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마스크로 표정을 가린다는 구실도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정도로 훈련받지 못한 병사가 어찌 의전을 맡는단 말인가?
 
위생마스크 착용을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거나 경건해 보이기 위해서라는 주장은 그동안 관습에서 고착된 한국인만의 착각 중의 하나일 뿐이다. 문제는 어느 세계인도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마스크 고유의 기능인 전염병 예방으로, 때로는 소통거부의 상징으로 여길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위생마스크가 어쩌다 근조악세서리로 둔갑했단 말인가? 부시맨의 콜라병처럼 세계인의 웃음거리다.
 
진정성이 담긴 예우와 감동
 
게다가 이 나라에선 이런 국가적인 장례 행사에서 운구 담당은 언제나 졸병들의 몫이다. 낡고 형식적인 전근대적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형식적인 절차를 마지못해 해치우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상상력의 빈곤과 무성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선진문명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기엔 요원하기만 하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선 사람이 죽으면 그 혼(魂)은 하늘로 가지만 그 백(魄)은 육신을 떠나지 못한다고 하는 관념이 있다. 더구나 전쟁터에서 죽은 영혼들은 그 혼(魂)마저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백(魄)과 함께 주변을 맴돈다고 한다. 비록 백골 한 조각이지만 그들의 혼백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 그 영혼과 교감하고 소통한다는 생각으로 의전해야 한다. 그저 살 만하니까 체면상 남 따라 유골을 찾아 안장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 아니다.

 
 
하여 이번 6.25 전사자 회향 의전을 좀 더 품격 있는 선진 사회의 상상력으로 새로이 연출해 보자. 전쟁 발발 6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땅엔 당시의 참전용사들이 생존해 있다. 그 노병들, 특히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분이 함께 이 운구를 이끌었어야 했다. 생전에 함께 한 적이 있는 친구라면 더없이 반가울 것이다. 노구로 힘이 없다면 유골함에 손이라도 얹어서, 걸음이 불편하면 휠체어에 앉아서라도 그 혼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유족들에게로 인도했어야 했다. 그분들이라면 당연히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장갑조차 끼지 않을 것이다. 장갑 끼고 전우에게 악수를 청할 순 없지 않은가? 하여 지난 역사를 단순히 회고가 아닌, 박제가 된 역사가 아닌 현실로 클로즈업하여 감동을 배가시킬 것이다.
 
품격 없는 선진 사회는 없다
 
의전이라 하여 반드시 정해진 매뉴얼대로만 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매뉴얼에 집착하다 보면 변화와 융통성이 없어져 금방 고답적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진정성의 전달이 떨어져 감동이 일지 않는다. 이는 문화 전반에 걸쳐 동일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일본이 작금에 들어 그 역동성을 잃은 것도 어쩌면 이 지나치게 매뉴얼화된 시스템 때문일 수도 있다. 게다가 지나치게 요란스런 의전은 오히려 그 진정성을 떨어트린다. 간결하면서도 집중력이 있어야 감동이 더 깊어진다.
 
유달리 남과 비교하기를 좋아하고 지기 싫어하는 한민족이 아니던가? 경제지표, 기술지표, 행복지수, 국가신용도, 올림픽 금메달 순위 등등의 비교만으로는 결코 선진 사회로 진입하지 못한다. 국민소득 비교해서 선진국 되는 것 아니다. 20-50클럽에 들었다 해서 강국이 되는 것 아니다.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선진 제도를 도입했다 하여 선진국 되는 것 아니다. 이젠 제발이지 품격을 비교하고, 그 수준을 선진화 내지는 글로벌화해야 한다.
 
그깟 사진 한 장을 두고 지나친 선입견을 내보이는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허나 그런 사소한 매너와 의식이 우리 국민의 교양과 품격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이다. 그걸 우리 한국식이라고 고집하는 것만이 자존심 세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근저에 깔린 국수주의적 열등감의 발로가 아닌지, 아니면 그저 단순한 관행의 연속인지 한 번쯤 짚고 넘어갈 때가 되었다. 뜻도 모르고 남 따라 하니 감동이 있을 리 없다. 선진국 거저 되는 것 아니다.
 
감동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

 
 
전사자의 유해를 챙기는 것은 단순히 살아남은 자의 도리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다. 예(禮)란 상대와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을 의식하고 행하는 일이다. 하여 그 공동체의 구성인들이 문명인임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의도도 내포하고 있다. 그를 통해 공동체가 결속하며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다시 각오를 다지자는 국민적 의례이다. 진정성 없는 의전은 과시적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감동 없는 그 무엇은 존재 가치조차 인정받기 어렵다. 감동이 곧 알파요 오메가인 세상이다. 국민소득, 거창한 사상, 우수한 제도, 전통에 빛나는 문화만이 선진국을 만들어 준다는 단순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전시적이고 딱딱하고 낭비적이고 요란하기만 한 우리의 의례와 의전을 이번 기회에 두루 점검하여 보다 세련되게 이미지업해야 한다. 더 이상 제품이나 건축물 디자인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적 발상으로 개개인의 품격과 국격을 중단 없이 디자인해나가야 한다. 하드웨어적 디자인을 넘어 소프트웨어적 디자인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진정성과 열린 마음, 창조적 상상력으로 문화를 선도하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2만 불 언저리에서 뼈빠지게 일만 하면서 조마조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