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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석 자에 서린 무혼(武魂)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11-01-17 13:42     조회 : 4209    

예술성보다 그 시대 정신을 존중해야
 
금간 광화문 현판을 다시 제작한다더니 결국 문제를 원점으로 돌려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복원된 글씨가 도무지 살아있는 글씨 같지 않으니 이참에 새로 써야 한다거나, 그럴 바엔 차라리 이전의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현판을 다시 내걸어야 한다느니 갑론을박이다.

복원된 현판 글씨에 대해 왜 이제 와서 다시 논란인가? 가장 큰 이유는 옛 사진 유리원판을 무리하게 확대하여 복원하는 바람에 글씨가 생동감을 잃어 마치 죽은 글씨 같다는 것이다. 다음은 글씨 자체가 요즘 서예가들의 수준으로 봐도 그다지 잘 쓴 글씨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마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막상 그 글씨의 주인이 만만했던 게다. 당시 공사 책임자였던 훈련대장 임태영이 썼다는 사실에 대해 일말의 섭섭함을 느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왕이면 고종이나 대원군의 글씨였거나 역사책에 나오는 꽤나 알려진 인물, 혹은 당대 최고의 문필가가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에서가 아니겠는가.

글씨라면 당연히 문인이 써야지 무인이 웬 말이냐? 해서 속으로는 현재 내로라하는 서예가라면 당연히 한번 도전하여 청사에 길이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심을 숨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누가 다시 써도 저것보다야 더 잘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새로 쓰자는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리라.

허나 옛 글씨가 남아있지 않다면 모르되, 임태영의 글씨와 고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현판이 버젓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 글씨를 받아 거는 것도 실낱같은 역사의 흐름마저 무시하는 처사라 두고두고 비난받을 일이어서 난감하기 짝이 없다. 옛것을 무시하고 감히 광화문에 자기 글씨를 내걸겠다는 배짱 있고 덕망 있는 인물이 이 시대에 어디 있기나 한가? 해서 말만 무성한 것이다.

게다가 반드시 글씨를 잘 쓰는 서예가가 맡아야 한다는 것도 억지스런 일이다. 경복궁을 복원한 구한말로 돌아가 보자. 당대에 임태영만큼 글씨를 잘 쓰는 문관이나 선비가 없었겠는가? 아닐 것이다. 하다못해 이완용의 글씨만 해도 꽤나 잘 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글씨에 능한 이가 아무리 많다 한들 대원군이라면 그런 나약한 문신들에게 맡겼을 리 없다.

  집자(集字)는 나라 망신

현재 활동중인 서예가들 중에서 새로 현판 글씨를 쓰게 한다는 것은 가뜩이나 말 많은 세상, 온갖 논란을 불러 올 것은 뻔한 일. 글씨의 수준을 논하기 이전에 그만큼 국가에 대한 공이 있고 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서 옛 명필가의 글에서 집자하자는 의견이 많지만, 이 또한 궁색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오죽했으면 집자를 했을까 하는 비아냥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자를 하는 것은 그 글씨의 주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직접 쓴 일도 없는 현판에 자신의 글자가 오려붙여 내걸린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욕됨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무슨 소리냐? 그렇게 해주면 고마워하겠지 어찌 욕되는 일이냐? 허나 가고 없는 사람의 생각을 어찌 그렇게 속단한단 말인가. 오죽 못난 후손들이 글자 석자도 못 써서 집자를 한다고들 난리인가 하고 말이다. 무엇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한 것처럼 후세에 누군가가 꾸몄다는 걸 알면 선비의 자존심이 허락하겠는가?

집자란 글씨를 쓸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느 조상이나 존경하는 분을 기리기 위한 소소한 작업에나 허용되는 일이다. 광화문이 어느 훌륭한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사당의 문이라면 집자도 가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적인 대사에 어느 특정인의 글씨를 ‘무단’으로 짜깁기하는 것은 수치스런 짓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짝퉁’인 것이다. 복원된 ‘門化光’이 아무리 생동감을 잃었다 한들, 또 글쓴이가 유명하지 않은 일개 무장이라 한들 어찌 짝퉁에 비하겠는가?

비록 현판에 금이 가서 새로 제작한다고 하지만, 이미 중건 당시 내걸었던 글씨로 복원했으면 좋든 싫든 그걸로 가는 것이 옳다. 박정희의 한글 현판에 대한 미련도 적지 않지만, 이미 임태영의 글씨가 복원된 마당에 다시 그걸 내걸 명분은 약해졌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명필이라 하여 광화문과 아무런 역사적 인과가 없는 인물의 글을 집자해 내거는 것도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흐릿한 옛 사진을 한없이 확대하다 보니 글씨가 생동감을 잃는 것은 당연지사. 컴퓨터에서 아흔아홉 번을 다시 뒤집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글씨를 복원하는 기법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임태영의 글씨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이번 복원 과정은 흐릿하고 애매한 글씨의 외곽선을 임의로 그려 넣고 그 속을 매우는 방식이어서 당연히 모필의 생동감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복원 방법을 바꾸면

허나 매사는 기본으로 돌아가면 의외로 잘 풀린다. 일반적으로 서예를 처음 배울 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옛 대가들의 글씨를 끊임없이 보고 그대로 써 보는 것에서부터 필법을 익혀 나간다. 이를 임서(臨書)라 한다. 열심히 임서하다 보면 그와 똑같은 글씨가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그후 자기만의 글씨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처음에는 모사를 하며 글씨를 익히는 것이다.

서예의 비조라 할 수 있는 왕희지의 ‘난정서(蘭亭書)’도 실은 원본이 아니다. 후인이 임서한 모본이 지금까지 전해져 온 것이다. 비록 모본이라 하나, 그 글씨는 진본에 다름없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월이 흘러 원본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는 이같이 임서하여 후세로 전했던 것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고대의 글씨나 회화엔 모본이 상당히 많다. 웬만큼 서예에 능한 사람에겐 남의 글씨를 똑같이 임모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복원 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흐릿한 옛 사진 속의 ‘門化光’에서 원래 모필의 맛까지 살려내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원본을 찾아내거나 다시 직접 쓰지 않고는 밋밋해져 버린 글자의 경계선을 되살려낼 도리가 없다. 해서 필자는 옛 사람들의 임모 방식으로 ‘門化光’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으면 한다.

지금 복원된 ‘門化光’을 현재 활동중인 이름난 서너 명의 서예가에게 임모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임모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글씨 위에 종이를 겹쳐 얹어 놓고 임태영이 했던 것처럼 똑같이 붓을 그어나가 모사할 수도 있다. 그리하면 임태영의 글씨는 그대로이면서 임모한 이의 필력이 더해져 죽은 글씨가 생명력을 얻어 다시 살아나게 된다.

옛날에 무슨 확대 복사기가 있었겠나? 현대에도 작은 글씨나 그림을 지나치게 확대하면 생동감이 사라져버린다. 그러니 설사 어느 명필가의 문집에서‘門化光’을 집자하더라도 위의 방식을 거치지 않고는 글자의 생동감을 완벽하게 되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임모 과정을 거친 서너 작품을 놓고 그 중 가장 나은 것으로 각을 해서 내걸면 역사성도 살리고, 살아있는 힘찬 ‘門化光’이 될 것이다. 특정 서예가가 새로 쓰는 것에 비해 말도 덜날 것이다.

  문(門)은 창칼로 지키는 것이다

그 시대의 정신을 살려내지 못하는 문화재 복원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외세의 억압에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일 때, 강력한 왕권을 대내외에 내보이고자 하여 중건한 것이 경복궁과 광화문이다. 해서 충성스런 무관의 힘 있는 글씨로 내걸었던 것이다. 우연히도 한글 현판을 썼던 박정희 역시 무관 출신 대통령이었다.

현대적 심미 기준으로 옛 글씨의 예술적 수준을 평가하는 것을 말릴 순 없는 일이다. 허나 광화문 현판의 글씨는 예술성을 논하기 전에 역사성과 그 시대 정신을 먼저 헤아려야 마땅하다.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를 부실한 사진 원판대로만 확대해서 복원할 것이 아니라, 여기에 다시 임모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힘차고 당당한 무풍(武風)을 되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순신 장군과 함께 언제까지나 광화문을 빛내주길 기대한다.
 
 <데일리안경기 >


심귀영   13-01-06 21:04
선생님의 말씀이 올타고 사료됩니다

 '강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