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무예(武藝)의 뿌리를 찾는 작업-《무예도보통지 실기해제》
  글쓴이 : 심우성     날짜 : 07-07-17 23:41     조회 : 5898    

전통무예를 내세우는 갖가지 무술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지만 과연《무예도보통지》를 섭렵한 바 있을까.
 분명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우리 전통무예로서의 「십팔기(十八技)」가 단순한 중국무술로 착각되고 있는가 하면, 그 연원을 밝힐 수 없는 무인(武人)과 도인(道人)도 많아서 흡사 오늘의 현실이 한국무예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필자는 전통예능을 공부하는 학도로서 특히 우리의 춤과 전통무예와의 연관성에 대하여 궁금해 오던 중 해범(海帆) 김광석(金光錫) 선생을 만나게 되어 《무예도보통지》의 실기해제라는 엄청난 일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왕조의 정조(正祖, 1776-1800)의 명에 따라 이덕무(李德懋, 1741-1793)와 박제가(朴齊家, 1750-1805)가 장용영(壯勇營)의 초관(哨官) 백동수(白東修) 등에 군(軍)의 실세(實勢)를 물어 정조 14년(1790)에 이룩된 전 4권 4책에 언해(諺海) 1책을 더하여 간행된 것이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조선왕조가 서둘러 편찬한 이 무예서(武藝書)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한 한 의지로써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비단 우리의 무예에만 그치지 않고 중국과 일본의 것일지라도 배워 우리의 것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이면 여기에 수합하고 있다. 특히 왜검을 수록하고 있음은 적을 알아야 하겠다는 당시의 심산으로 보인다. 근자에 뿌리없이 횡행하고 있는 권법에 대하여도 비교적 소상히 밝히고 있으니 그 공적이 대단하다.
 외람되이 실기해제를 붙임에 있어 16세에 오공(晤空) 윤명덕(尹明德)선생의 문하에 들어 예(藝)와 도(道)를 익힌 김광석 선생의 실연․구술이 전적으로 바탕이 되었음을 분명히 해둔다. 이번에 내 놓는 실기해제는 앞으로 자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부문별로 나누어 출간될 전문적인 「실기 전문서」에 앞서 그의 개괄서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본문 가운데 각 항목별 해설을 생략했음은 이미 김위현(金渭顯)선생의 국역서가 나와 있기에 중복을 피하면서 되도록 실기해제에 충실코자 함에서이다.
 무(武)와 예(藝)는 기(氣)에 따르는 것이요, 그로서 먼저 사람이 되어야 바른「기(氣)」를 얻을 수 있다는 오매한 이치를 되새기며 전통무예의 정립을 희원하며 감히 이 책을 펴낸다.

                                                                  1987년 6월
                                              沈雨晟(민속학자, 문화재전문위원)


신성대   09-01-15 13:48
민속학자이자 당시 문화재 예능분과 전문위원이셨던 심우성 선생님께서 우리 무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전통 춤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 전통 민속춤은  그 나라의 전통무예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알고, 우리나라 전래의 무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나 아마존 오지의 원시 부족들은 전투에 나가기 전에 의식을 치르는데, 대개 창이나 다른 무기들을 가지고 춤을 춥니다. 무(武)와 무(舞)는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지요. 실제 우리나라의 탈춤도 십팔기의 권법 동작과 흡사한 점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우리 무예를 찾던 중 서울대 규장각에서 우리나라 무예의 족보이자 십팔기 교본인 <무예도보통지>를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웃대 어른들로부터 말로만 듣던  '십팔기'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 선생님은 이후 전국을 민속답사 다닐 적에, 혹시 십팔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지 찾았습니다만, 단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출판업자를 시켜 규장각의 <무예도보통지>를 영인케 하여 시중에 보급하게 했으며, 계속해서 십팔기 전승자를 수소문했습니다. 허나 영인본에 이에 김위원 선생의 국역본이 나왔어도 십팔기 전승자가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다만 나이 많은 어른들만 어렴풋이 '십팔기'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십팔기를 중국무술로 잘못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십팔기 전승자 찾기를 포기한지 오래된 85년, 우연히 필자를 통해 해범 김광석 선생을 알게 된 심선생님은 그제서야 십팔기의 실기가 전승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해범 선생님 역시도 그동안 십팔기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지키고자 애썼지만, 6,70년 대에 불어닥친 중국무술(쿵후) 열풍에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십팔기 기예를 사장시키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무예인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십팔기를 중국무술로 잘못 알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때문에 해범 선생은 십팔기 도장을 열었으면서도 정작 중국무술 권법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십팔기를 지키는 일을 포기하고  80년에 무예계를 떠났습니다. 다만 후일을 위해 그 이름이나마 보전시켜 두자는 심산으로 '대한십팔기협회'라는 사회단체를 등록해 두었습니다.

85년 우연한 때, 제자인 필자를 통해 심우성 선생을 만나게 된 해범 선생은 심선생님의 끈질긴 권유에 못이겨 그 실기를 보여주게 되고, 다시 이를 보신 심선생님께서 책으로 공개할 것을 강권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나온 책이 <무예도보통지 실기해제>입니다. 해범 선생님께서 실연하시고, 심우성 선생께서 해제를 맡으셨습니다.

조선의 멸망과 일제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땅에서 영영 사라질 뻔한 '조선의 국기' 십팔기가 간신히 되살아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십팔기'의 실기가 세상에 공개되고, 십팔기가 우리 것이고, 무형의 문화자산인 전통무예로서,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