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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역사를 만들어 가는가?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10-08-12 11:43     조회 : 4329    
종전 65주년을 맞아 일본 총리가 다시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얄미우리만큼 치밀하고 조심스럽고 이기적인 일본인들의 민족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 에둘러 만들어내는 용어에 혀를 내두르겠다. ‘통념’ ‘통한´ ‘통절’ 도무지 뭐가 뭔지? 주기를 두고 종전기념일마다 만들어 내는 새로운 단어에 대한 진정성의 무게를 달아 보는 일이 주요 관심사로 자리잡았다. 5년 후 70주년에는 또 어떤 글자를 들고 나올까?

지난 6일에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65주년 희생자추모집회에 드디어 가해국 주일대사를 불러다 ‘사죄’를 시켰다고 득의양양하는 분위기이다. 자신이 저지른 야만을 순교자의 망토로 가리는 짝퉁 ‘유대인 따라하기’가 세계적인 이벤트로 자리매김한 날이다. 일본인 특유의 집요함과 간특함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인 사건이다.

  평화를 짝사랑하는 철부지 민족

그런 나라 바로 옆에 역사상 단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범해 본 적이 없는 순진무구한 백의의 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공자 이래로 역사란 반드시 티끌 하나 없는 진실이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지조 있는 민족이다.

원래는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민족이었으나, 어쩌다가 몽고제국에 복속되어 한 세기가 넘도록 부마국의 재미를 보더니 점점 사대적 민족으로 변해갔다. 결국 자립의 의지를 상실하고 말아 지금까지도 강대국의 보호 없이는 존립이 불안한 상태로 간신히 나라를 지탱하고 있다. 그나마도 남북으로 분단되어 서로 헐뜯는 데 광분이다.

요즘 이 나라 사람들은 천안함 침몰사건의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혈안이다. 흡사 고대 난파선 보물찾기라도 하듯 너도나도 눈알이 빨갛다. 안에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유엔으로, 심지어 적국에까지 넘어가 그것은 남한의 조작극이라고 우겨댄다. 바야흐로 변태적 내부고발자가 새로운 통일투사로 각광받는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얄미운 일본인, 어리석은 한국인.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함에는 두 민족이 엇비슷한 것 같은데 어째 하는 짓은 정반대이다. 인종적으론 거의 한 핏줄이면서도 어쩌면 이토록 극명하게 다른 성향을 보이는지, 문화인류학적 연구 대상이다.

  힘 없는 양심이 비굴한 사대를 낳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도하고 있는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가 어느덧 19년째 929회를 맞고 있다. 당연히 일본 정부는 사죄는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일본 민족의 피를 갈지 않는 한 끝까지 모른 척할 것이다. 그 뻔뻔한 고집은 한국의 친북좌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하나는 단합을 위해, 다른 하나는 분열을 위한 것이 다를 뿐.

정신대 할머니들의 피나는 눈물, 수요집회가 과연 일본 정부를 향한 것만일까? 절대 인정하지 않을 일본 정부를 향한 메아리 없는 한풀이 시위인가? 아니다. 이는 우리 국민, 우리 이웃, 우리 정부를 향한 절규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보다 더 얄미운 형제와 이웃을 향한 제가슴치기이다. 그저 한 개인의 불운으로 돌리기엔 동족의 무관심이 더 섭섭했던 것이다. 

누가 그들의 한을 풀어 주랴? 8월 15일 일본 총리가, 아니 국왕이 공식 인정하고 사죄한다면 한이 풀릴까? 아니다. 모든 상처가 다 한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큰 상처도 아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작은 상처도 영원히 아물지 않고 아리는 것이 있다. 죽어서도 풀리지 않는 것이 한이다.

그분들의 가슴에 한의 쇠말뚝을 박은 것은 일본이 아니다. 모국의 무능하고 무력함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동족의 무관심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동족의 멸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지켜 주지는 못할망정 보듬기라도 해주었으면 한이 이토록 깊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은 수요집회를 마치 일부 급진여성들의 한물 간 페미니스트운동 쯤으로 여기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하긴 이 땅의 남자들이 무능해서 한스럽게 죽어간 여인들이 어디 정신대뿐이랴? 몽고의 고려지배,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끌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여인들,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와 멸시받고 버림받은 화냥년들. 우리 모두의 어머니들은 정신대였다. 그리고 이 땅의 남자들은 언제나 비겁했다. 이 땅의 선비들은 오직 여자 앞에서만 큰소리쳤다. 자기 여인의 정조조차도 지켜주지 못했으면서도. 지금도 그렇다.

패전 후, 어떻게 해서든 나라를 지키는 데 보탬이 되겠다고 미군들의 품으로 몸을 던진 많은 상류층 일본 여성들에 대해, 먹고 살기 위해 몸을 팔았던 여인들에 대해 일본 남자들은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한 적이 없다. 칭기즈칸은 그의 약혼녀를 적에게 빼앗겨 아이를 배었는데도 찾아와 아내로 삼았다. 그 아이까지도 자신의 아들로 거둬 친자식 이상으로 키웠다.

역사는 양심이 만든다? 아니다. 역사는 힘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란 지혜로운 자의 몫이다. 역사를 만들어 본 민족이야말로 진정 강한 민족이고 지혜로운 민족이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이 민족은 단 한 번도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보지 못했다. 스스로의 문화를 만들어 보지 못했다.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역사는 무혼이 만든다!

광복절이 갈수록 허전해져 가고 있다. 단상에 모실 독립투사들도 이제 몇 분 남지 않았다. 기념행사장엔 그저 동원된 공무원, 학생들의 노래만 공허하다. 일본 총리의 한 마디나 야스쿠니 신사만큼도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이제 그만 두든지, 아니면 발상을 전환하든지 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광복이 어찌 독립투사들만의 것이었던가. 이 민족 모두의 광복이었다. 영광된 분들을 모시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핍박받은 분들의 맺힌 한을 위로하는 자리이기도 해야 한다. 정신대 할머니도 이제 몇 분 남지 않았다. 늦기 전에 그분들을 광복절 기념 단상에 모셔야 한다. 그리고 그분들을 지켜 주지 못했음을 ‘통절’히 반성하고 사죄하고 위로해 드려야 한다.

더하여 강제징용, 강제징병에 끌려갔던 분들과 그 희생자 유가족들도 함께 모셔야 한다. 또 광복절이 한낱 과거의 역사에 대한 회고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지금도 광복이어야 한다. 대한민국 동서남북 끝땅에서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국군사병들도 상징적으로 단상에 세우고, 해외에 흩어져 있는 독립투사의 자손들 모두 찾아 모셔야 한다. 그게 자신의 역사를 가꾸는 일이다.

언제까지 일본에 대해 성토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희괴한 말장난에 울고 웃고 할 것인가? 죽을죄를 졌습니다하고 일본 국왕이 엎드려 큰 절로 사죄하면 한이 다 풀리겠는가? 그리하면 다 용서할 것인가? 그렇게 엎드려 절 받고 싶은가? 제발 그만 두자. 진정 용기가 있는 자라면, 진정 의분이 있는 자라면 그런 사과 따위는 단연코 받지 않는다. 힘을 길러 스스로 당당해질 일이다. 삼일절, 광복절 기념행사에 주한일본대사가 자진해서 참석해 고개 숙이는 날이 와야 진정 대한민국이 바로 섰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라면,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 가꿀 줄도 알아야 한다. 역사엔 부끄럼이 없다. 순백의 역사를 원하는가? 언제까지 세계평화를 부르짖을 것인가? 그건 나약함의 변명일 뿐이다. 스스로 평화를 지킬 자신이 없어 세계가 평화로워지기만을 기다리는 못난이의 구호일 뿐이다. 강철은 두들길수록 강해진다. 불순물을 걸러내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불순물을 함께 녹여 끊임없이 두들겨야 만들어진다. 무혼(武魂)의 뜨거운 불이 아니고서는 결코 만들어내지 못한다.

민기식   10-10-08 04:23
절절하면서도 통쾌합니다. 김형효 선생님의 철학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이면서도 정확한 판단 아래 이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무술인들만 읽을 게 아니라 잠자고 있는 지식인들을 깨워야 위선을 떨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이 무술인들의 건강한 사유를 일깨우고, 지식인들을 각성하게 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언제 인연이 되면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