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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의 멋, 패자의 멋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10-03-20 09:21     조회 : 5075    

승자의 멋, 패자의 멋…금메달과 눈물, 승부의 철학
인문학의 스승 함께해야…피겨 여왕에 안주 말고 인생으로 승부를

동계올림픽 금메달 쇼가 한차례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혁혁한 전과(?)를 올린 한국선수단의 청와대 초청, 뒤이은 한 두 차례 뒤풀이 방송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모두가 잠시나마 불황의 시름을 잊기에 충분한 감동이었다.

아직도 눈물인가?

헌데 유독 눈물이 많은 두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었다. 한쪽은 기뻐서 울고, 다른 쪽은 안타까워 울었다. 한국이 딴 메달이 마치 일본 것을 빼앗은 것 같아 한국인들은 더욱 기뻐했고, 상당수 일본인들도 한국에 금메달을 다 빼앗긴 것처럼 분해했다. 그래서 이웃사촌인가보다. 한(恨)이 많은 게다. 정(情)이 많은 게다.

일본이 비록 노(No)금메달이라지만 한국이 그처럼 좋은 성적을 내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덜 충격 받았을 것이다. 때마침 도요타자동차 회장의 눈물까지 오버랩되면서 아사다 마오의 눈물을 섭섭함을 넘어 “분하다!” “억울하다!”로 변질시키고 있다. 소니가 삼성 때문에, 도요타가 현대자동차 때문에, 마오가 연아 때문에. 모든 것이 한국 때문에?

정말이지 예전의 일본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일본 본색이 바로 저런 것이 아니었을까? 지난 세기동안 일본은 사무라이로 상징되는 결단력, 솔직함으로 선진 국민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해왔었다. 예전 같았으면 도요타 회장은 이유 불문하고 먼저 코가 구두에 닿도록 허리 굽히고 사임했어야 했다. 어쩌면 미국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가 망신당하기 전에 깨끗하게 자결했을 것이다.

도요타의 눈물, 마오의 눈물

아사다 마오가 설사 심판의 편파판정이나 판정실수 때문에 억울하게 금메달을 놓쳤다 하더라도 깨끗하게 “졌다!”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역시, 일본인답다”, 비록 패자지만 “멋있다!”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헌데 두 사람은 계속 억울하고 분해하고 두고 보자며 눈물을 훔친다. 이런 일에 즉시 핀잔을 주던 일본 지성인들도 이번에는 대체로 입을 다물고 있다.

그렇다 한들 그만 일로 일본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왠지 일본인들의 이런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저 모습이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또한 머잖은 장래에 우리 역시 지금의 일본처럼 어찌하지 못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를 짐작해본다.

어쨌든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의 눈물이 과거처럼 북받치는 한(恨)의 그것이 아니라, 그저 기쁨과 성취감의 눈물처럼 보여 다행이다 싶고, 심지어 장난기 넘치는 세러머니를 신세대적인 개성으로 웃어넘기게 되어 함께 웃고 우는 국민들도 모두 상쾌해서 좋았다.

하지만 좀 더 욕심을 부려 주문을 드리고자 한다. 승부세계에서 승자는 반드시 패자에 대한 배려를 잊어서는 안 된다. 패자의 승복과 존경을 받지 못하는 승자는 결코 진정한 승자가 못된다. 물론 금메달만으로도 위대하고, 그것으로도 그는 영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이상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금메달이 선진국민 만들어주는 것 아니다

그토록 바라던 금메달 하나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자신이 최고임을 증명했으니 이제 그만 됐다는 식의 사고는 지극히 옹졸하다. 위대한 영웅은 영원한 영웅이어야 한다. 위대한 영웅은 보통의 영웅과는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던 초유의 기록만으로도 물론 영웅으로 불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 기록이 깨질 때까지만이다.

“비록 금메달을 땄지만, 내게 이런 영광이 있기까지는 나와 같이 이 스포츠를 즐기고, 땀 흘리고, 눈물 흘린 수많은 선수들이 있었다. 이 영광을 그들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다!” “멋진 승부였다고 생각한다. 그가 있었기에 내가 있었다. 비록 이번에는 내가 이겼지만 그도 역시 승자다!”

“우리 모두가 올림픽에 열광하고 있을 때 지구 한편에서는 지옥과 같은 재난이 있었다.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들을 돕고 싶다!”고 말하고 다른 모든 일정을 젖혀두고 아이티나 칠레로 달려갔다면? 상금과 장려금을 모두 기부하겠다고 했다면? 그 선수는 어찌 될 것 같은가? 편하게 돈으로 계산해보자. 손해를 볼까? 아니면 더 많이 벌까?

금메달이 만들어준(금메달에 목 매달린) 영웅과 금메달 이상의 것으로 스스로 위대해진 영웅과는 그 격이 하늘과 땅 차이다. 금메달로 영웅이 되었지만 이제부턴 그의 이름으로 금메달이 빛나야 한다. 금메달이라 해서 다 같은 금메달이 아니다. 위대하려면 결단코 남달라야 한다. 그리고 그 위대한 영웅 탄생의 순간은 너무도 짧게 온다.

또한 이런 기회가 반드시 금메달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승자가 있는가 하면 영웅적인 패자도 있는 법이다.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비록 꼴찌를 했어도, 혹은 억울하거나 안타까운 일로 카메라가 집중되어 세계인이 주목하는 바로 그 순간 내뱉는 말과 행동, 첫 인터뷰, 첫 소감에서 그 위대함이 결정 난다. 마술의 시간은 그 짧은 몇 초간이다.

국격(國格)을 몇 차원 높일 수 있는 기회

온갖 매체들이 김연아 우승 하나만 해도 몇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유발시킬 거라고 야단법석이다. 하지만 만약 김연아가 우승 소감으로 기쁨 이상의 격조 있는 아름다운 말을 내뱉었었다면 어찌되었을 것 같은가? 몇조가 아니라 몇백조도 가능한 일이었다. 본인의 영광은 물론 더불어 한국인의 위상도 곧장 수직상승했을 것이다.

해서 부탁인데, 각 선수들 후원업체들은 이왕지사 후원비용 이상의 광고효과를 거두려면 이런 점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요즘 대기업 CEO들의 인문학 강좌가 인기라고 한다. 작금의 화두가 디자인인 모양인데, 제품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일도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싶다.

그리고 국가대표 선수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들도 시합에 나가기 전에 승전의 결의만 다질 것이 아니라 넌지시 이런 승부에 대한 철학을 교육시켜주었으면 싶다. 한 골 넣으면, 우승하면 어떤 세러머니를 연출할까만을 궁리해서야 아직 철이 없다 할 밖에. 대기업 CEO들처럼 틈틈이 교양강좌를 해주었으면 한다.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격이 가늠되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물러나는 것은 승자의 아량이 아니다

아사다 마오는 4년 후 소치에서 김연아와 다시 한 번 맞붙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김연아는 도전을 받아주어야 한다. 지금의 승리에 만족한다면 진정한 승부사가 아니다. 이제까지 명멸해간 수없이 많은 한풀이 금메달리스트들과는 달라야 한다. 혹자는 최정상의 순간에 만족하고 깨끗이 물러나는 것을 미화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기권의 또 다른 형태에 다름 아니다. 다음 금메달의 순도를 떨어트리는 일이다.

언제까지고 정상의 자리에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자신을 딛고 일어설 새로운 영웅이 나올 때까지 그 어떤 도전도 사양치 말아야 한다. 진정한 승부사는 승자로서가 아니라 패자로서 경기장을 물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당당히 겨루어서 지고 나가는 것이 다음 영웅에 대한 예의이다. 게임의 법칙에 대한 존중이다.

그리고 기록 경쟁만이 승부가 아니다. 도요타가 기술이 모자라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다. 타이거 우즈가 우승을 못해서 뭇매를 맞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보태는 금메달은 현재의 영광을 유지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작업에 불과하다.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금메달을 뛰어넘어야 한다.

기술이 아닌 인생으로 승부하라

여왕은 더 이상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승리에 담담하고, 절제되고 세련된, 정제된 언어와 행동으로 자신의 품격을 높여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오직 운동 밖에는 달리 공부를 한 적이 없는 선수에게 이는 무리한 주문이다. 기술 코치, 안무 코치, 분장 코디 외에 김연아만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해 줄 인문학 스승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내친 김에 이번 동계올림픽의 주인공인 김연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전 광고계가 그녀에게 목을 매달고 있어. 다음 대회 준비하랴 광고 촬영하랴 여념이 없다. 그렇지만 흔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법. 영광의 보상을 챙기는 것에 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자잘한 광고는 다 정리하고 큼직한 것 한 두건만 맡았으면 한다.

우승했다고 금, 은, 동메달을 다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인기와 광고로 먹고 사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단 한사람의 너무 빛나는 영광의 그늘에 가려 때아닌 보릿고개를 맞고 있음도 헤아릴 줄 알았으면 한다. 같이 금메달을 따고도 광고 한 건 없이 벌써 잊혀 가는 선수들도 있다.

지금은 모든 이들이 그녀의 눈길, 손짓 하나에도 열광하지만, 인간이란 원래 싫증의 동물인지라 새로운 영웅을 찾아 나서기에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젠 순간의 영광을 진정한 위대함으로 가꾸는 법을 익혀나가야 한다. 피겨의 여왕에 만족하지 말고 인생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피겨 이후의 새로운 삶의 큰 길이 자연스레 열릴 것이다.


노신영   11-05-11 04:36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로서도 배워야 할 게 태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