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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열이 나라를 망친다?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9-12-17 02:34     조회 : 5310    

옛말에 "국가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國家興亡, 匹夫有責]"고 하였다.
정권이 몇 차례나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잊혀져 가고 있는 말 가운데 '한강의 기적'이 있다. 오늘의 현실이 점점 예전만 못하게 돌아가고 있고, 이후의 여러 지도자들도 자신의 업적이 이 '기적'을 넘어서지 못하자 이 단어를 입에 담기를 꺼리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개발 독재니 정경유착이니 등으로 '기적'을 가려 없었던 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아무리 "못되면 조상 탓한다"고 한다지만, 보자보자 하니 점점 더 치졸해져 가고 있다. 그것이 어찌 그때 그 지도자 한 사람만의 공적이었던가? 그 시대를 살던 우리 모두가 열망했고 선택한 일이었지. 국민 모두의 땀과 노력으로 이룬 자랑이었다. 결국 제 얼굴에 침 뱉는 일 같아 안쓰럽다. 그렇게 해서 무슨 득이 있는지, 꼭 그렇게라도 해야 위안이(혹은 한풀이라도) 된다면야 설령 '저주의 굿판'인들 굳이 말릴 수야 없을 터. 어쨌거나 그 '기적'의 밑거름은 한국인들의 유별난 '교육열'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고대에는 공신에 오르거나 관리에 등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군공(軍功)이 있어야만 했다. 《사기(史記) 상군열전(商軍列傳)》에 "종실 사람이 군공(軍功)이 없으면 족보에 넣지 않는다"고 하였을 만큼 오직 승적(勝敵)의 군공만이 유일한 벼슬길이었다. 이 군공 제도는 백성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군대의 전투력을 높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여, 진(秦)나라가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성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사람은 각기 능한 바가 따로 있어, 적을 이기는 용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정사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정사를 잘 돌본다고 해서 반드시 적을 이길 수 있는 용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또한 평화 시기에는 군공을 세울 수가 없으므로 이때에는 농사를 잘 지어 거두어들이는 양식의 양에 따라 관작을 내리고 등용하는 관리 선발 제도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대개 어느 왕조든 건국 초기에는 정부의 요직들을 무신(武臣)들이 대거 독점하다시피 하였다. 이때에는 문관을 천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다.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 역시 천하는 "말 위에서 얻는 것〔馬上得之]"이라 믿고서, 유가(儒家)의 학술을 좋아하지 않아 지식인들을 멸시했다. 심지어 그는 '오줌을 유생의 머리에 뿌려[溺儒冠]'  유생들을 모멸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가 회복되고 사회 질서가 안정됨에 따라 용력(勇力)으로 통치하는 공신(功臣)과 지식으로 다스리는 관리[文官] 사이의 모순이 돌출되면서 관리 선발 제도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중국의 한무제(漢武帝)는 동중서(董仲舒)의 발의에 근거하여 태학(太學)을 세워 선비들을 교육시켜 관리로 삼는 새로운 문관 제도를 건립하였다.

위진남북조시대에는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가 생겨났었다. 중정을 설치하고, 추천된 인물의 품제를 평가하여 선거 방식으로 관리를 선발하였다. 수양제(隋煬帝)에 이르러 이를 폐지하고 과거제(科擧制)를 만들었는데, '개과취사(開科取士)' 즉 국가에서 일정한 과목을 설정하여 정기적으로 고시를 통하여 인재를 선발하고 관직을 배분하는 제도로서 당(唐)을 거치면서 더욱 완비되었다. 이후 이 과거(科擧)는 1천3백여 년간 중국의 관리 선발 제도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청(淸)말(1905) 학교 교육을 실시하면서 폐지되었다. 무관(武官)을 선발하는 무거(武擧)는 당(唐)의 무측천(武則天)시대에 처음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는 958년 고려 광종 때에 이 제도를 받아들여 봉건적 통치 질서를 유지하는 기본틀로 삼았다. 초기에는 강력한 지방 호족과 개국공신이 있어서 왕권이 매우 불안하였다. 광종은 강력한 왕권 확립을 위해 훈신들을 숙청하는 한편, 과거 제도를 도입하여 중앙집권 정책을 펴나갔다. 성종은 유학을 정치 이념으로 활용하여 정치 제도를 정비하였다. 이후 국가 통치 체제가 잘 정비되어 귀족 문화가 크게 발달되어 인종대까지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12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틀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문벌 귀족들의 권력과 경제력 독점은 이에 반발하는 이자겸(李資謙)의 난과 묘청(妙淸)의 난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고, 마침내 무인란(武人亂)으로 붕괴하고 만다. 1170년 정중부(鄭仲夫) 등이 주도한 무인란은 무반(武班)에 대한 차별과 군인들의 불만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정변으로, 고려 사회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고려의 과거 제도는 제술과(製述科)․명경과(明經科)․잡과(雜科), 그리고 승과(僧科)가 있었다. 무과(武科)는 예종 때 일시적으로 실시했다가 곧 폐지하고, 공양왕 때 실시하려고 했지만 시행되지 못했다. 고려의 과거제는 규정상 큰 죄를 지은 자가 아닌 양민 이상의 신분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엄격한 신분 제한을 가함으로써 일부 문벌 출신만 합격시켜 높은 벼슬을 독점하였다. 궁극적으로는 통치 체제를 문란케 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과거제도 도입 이전까지 우리나라에는 상하의 구분만 있었지, 동서의 갈림은 없었다. 우리 문화에서 쪼개짐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문무의 구분은 탐탁치 않다. 처음처럼 하나였어야 했다. 문무겸전이니 하는 용어 자체가 생겨나지 말았어야 했다.

조선시대에는 유가 사상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채택하면서 지식인들로 하여금 선현의 이상 인격을 구비하여 스스로의 직분 내에서 수신(修身) 양성(養性)하여 윤리 도덕 규범을 파악하고, 나아가 세상을 편안케 하여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학습하고 여력이 있으면 벼슬을 한다"는 태도로 하여금 보편적 사회 심리 및 풍습이 되게 하였다. 그렇지만 지식인들은 오로지 독서에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했다. 독서를 통해서만이 벼슬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오로지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아무리 훌륭한 자질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통치 계층으로 올라설 수 없었고, 세상에서 영광을 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등과(登科)를 하여 관리가 되어야만 가문을 빛내는 것은 물론 입신양명할 수가 있었다. 결국 과거 제도는 독서가 자신을 정신적으로 충실하게 하고, 개성을 풍부하게 하며, 시야를 확장시켜 과학적인 지식을 획득하는 본연의 목적을 벼슬 취득의 수단으로 고착시켜 버리는 폐단이 되었다.

신라․고려 초기에까지 이어져 오던 문무겸전 정신은 과거제의 도입을 계기로 쪼개지고 만다.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과거고시의 내용 또한 중세 한국인의 가치 지향, 사유 방식, 사회 심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5백여 년 동안 고착화된 조선인의 행동 및 사유 양식은 나라가 망해서도 떨쳐내지 못하고 오늘에까지 이어져 현재 우리의 가치 지향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일제 식민 지배를 통해 근대적인 개념의 교육 제도가 도입되고, 신분제도가 파괴되면서 양반 상놈의 구별이 없어져 누구나 시험을 통해 벼슬을 할 수 있는 신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본틀은 조선의 과거 제도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도 학력 및 전공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응시 자격을 주는 고시 합격이 아니고서는 고위 공직에 오를 수가 없고, 그렇지 않으면 운 좋게 권력자와의 학연․지연 등으로 출세하는 길밖에 없다.

화이트칼라, 즉 선비다운 직업을 갖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 졸업장을 따야 한다. 불과 십수 년 전까지는 남보다 잘살기 위해 대학을 갔지만, 지금은 남이 다 가는 대학이니 저도 가지 않을 수 없어 간다. 모두가 똑같은 졸업장 들고 나오니 게인지 고동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그러니 굳이 열심히 공부할 필요도 없어졌다.

흔히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한국인의 교육열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 그것만으로 설명이 되겠는가. 훌륭한 지도자와 유능한 지식인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근면성이 합쳐져 이룬 경제 성장이 아니었던가. 그때는 국민 모두 남녀노소 상하 없이 모두 󰡐땀󰡑 흘리며 일했다. 공부도 땀 흘리며 했다. 지금처럼 아무나 대학에 갈 수 없었고, 비록 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땀 흘린 만큼 대가가 있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소녀들도 졸음을 쫓아내며 공장에서 밤새워 일했다. 가난하지만 머리 좋은 학생들은 주린 배를 맹물로 채워가며 골방에서 주야로 공부해 고시 합격의 꿈을 이루어 나갔다. 그래서 누가 잘살게 되면 부러워할망정 질시하지는 않았다. 또 가끔은 가난한 집 자식이 어디어디에 수석 합격하여 신문지상에 소개될 때면, 모든 사람들이 부러움에 찬 칭찬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었다. 이 땅의 새벽을 밝히는 모든 가난한 부모들에게 희망의 활명수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시대적․경제적 요구에 의해 대학 설립이 무분별하게 늘어났다. 웬만하면 누구나가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됐다. 현재는 오히려 학생 수가 모자라 대학이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다. 양적인 균형도 문제가 많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더욱 한심하다. 졸업생들이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에 도무지 못 미친다는 것이다. 수준 미달, 기업적인 표현으로 심하게 말하자면 모조리 불량품인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우리 민족의 두뇌가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우수하다고 자부한다(아마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기들 역시 그만큼 똑똑하다고 할 것이지만). 그렇지만 아무리 우수한 민족이라 해도 그 민족 모두가 다 똑똑할 순 없는 법이다. 모든 국민이 다 대학에 가서 학문을 연구할 만큼 뛰어난 민족은 없다. 언젠가 서울에서 중간 서열쯤에 들어가는 대학의 교수가 답답한 현실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기 학교에 온 학생들만 하더라도 솔직히 여기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단순 노동이나 해야 어울릴 자질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좀더 심하게 말해서 게나 고동이나 모두 다 대학에 온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설령 자질이 좀 부족하더라도 공부 더해서 나쁠 것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학문(공부)의 자유를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일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이 형식이나 질적인 면에서 지극히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문제가 오늘날 우리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학 무시험 입학, 고교 무시험 입학. 평준화 정책은 사실상 대학까지 평준화시켰다. 지독히 가난하거나 공부하기 싫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대학 졸업장을 들고서 사회에 나온다. 예전 같았으면 솔직히 대학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을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는 이들도 어쨌거나 자기도 대학을 나왔으니 주변 다른 사람들만큼 잘살아야겠다는 것이다. 함량 미달의 대학 졸업장을 화이트칼라 직장에서 남들만큼 대우받으면서 잘살 수 있는 자격증으로 여기는 것 같다. 대졸 출신이 초등학교만 졸업했어도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매표소 근무와 같은 단순 노동을 하면서 대기업 사원과 같은 대우를 받기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을 나왔는데 어찌 3D 업종에서 일한단 말인가. 놀았으면 놀았지 3D가 아니라 3만D 업종이라 해도 그런 일은 안한다는 것이다. 졸업장이 개인의 자존심 증명서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현실적으로 기업에서 대졸 사원을 채용해 보면 학벌이나 개인적인 역량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차별 대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대학 졸업장이 무슨 국가공인 자격증이라도 되는 양 똑같이 대접해 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지방대, 삼류대학이라고 응시원서조차 안 주고 차별한다며 성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한국은 대개의 경우 남자 혼자서 전적으로 한 가정을 책임지고 꾸려 나간다. 초등학교만 졸업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표 파는 단순 노동까지 대졸 출신의 가장이 맡고 있다. 그렇지만 봉급은 일반 기업 혹은 타부서의 대졸 사원만큼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다 보니,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저 조건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서 가정주부로 들어앉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단다.

결과적으로 학력(교육열)의 거품이 임금 인플레를 선도하고 있다. 학벌을 중시하는 풍토가 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다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도무지 국제 경쟁력이 생겨나지 못한다. 우리의 대학 역사가 짧은데다 고도 성장과 더불어 기업의 요구와 학벌 중시 풍토 때문에 이제 전 국민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대학교만 잔뜩 세워 놓았다.

그러나 교육의 질적인 면에서는 선진국 고등학교 수준도 안 되는 것 같다. 20여 년 동안 우리의 늘어난 대학이 한 일은 학생들을 진정한 엘리트로 키운 게 아니라, 단순 노동력의 부가가치를 약간 높여 준 것에 불과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 '양질의 노동력'이 지금 비만증에 걸려 국가 경제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세계 11위의 교역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국민 소득은 형편없다. 남달리 열심히 일했지만 도무지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획일적 평등주의. 자존심에 뿌리를 둔 평등주의 교육평준화가 결국 사교육비 부담, 외고문제 등등 변태적인 교육 형태로 말미암아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문(文)의 정신은 경쟁을 두려워한다. 시험으로 합격 여부를 가리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어떤 자격을 검증하는 것이지 경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간접적인 경쟁이라고나 할까. 진정한 경쟁은 무예(武藝)로부터 시작된다. 습무(習武)를 통해서건 스포츠를 통해서건 상무(尙武) 정신을 기르는 것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보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