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온돌문화와 무덕(武德)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8-11-14 20:54     조회 : 6042    

온돌문화와 무덕(武德)
신성대의 무예이야기<22>
2008-09-01 08:49:25<데일리안 경기> 
 
◇ 신성대(辛成大)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대한십팔기협회부회장,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 우리나라 전통무예 붐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십팔기와 양생기공을 지도 보급중. 저서로는《무덕》이 있음 


요즘 우리나라 학교의 쉬는 시간 교실 풍경을 보면 대충 비슷비슷하다. 화장실에 가거나, 교실 안에서 수다를 떨거나 장난질, 그리고 중학교․고등학교로 갈수록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늘어간다. 지극히 당연한 풍경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하자는 건가? 쉬는 시간에 쉬는 것이 뭐 잘못됐다는 것인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쉬는 방법이 문제다.

대만에 유학 다녀온 이들을 통해 그쪽 학교의 쉬는 시간 풍경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대개의 대학교마다 한국 유학생들이 꽤 있는데, 쉬는 시간이면 이들 모두가 일제히 복도 끝에 있는 재떨이 주위로 모여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쉬는 시간 내내 담배를 피우거나 수다를 떨다가 수업이 시작되어서야 흩어져 교실로 뛰어간단다.

그렇다면 대만 학생들은 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기에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인가? 그 나라 학생들 대부분은 화장실에 들른 후 그대로 바깥으로 나간단다. 그리고 운동장에서 달리기하는 학생, 넓이뛰기하는 학생, 체조나 태극권하는 학생 등등 각자가 나름대로 몸을 풀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한 시간 내내 딱딱한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 있었으니, 잠시나마 몸을 풀고 다시 수업을 받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은가?

유럽 쪽에 유학을 다녀온 이들에게 물어봐도 역시 비슷한 대답이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차이이다.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모든 게 편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분별없이 퍼져 나갔다. 대충 짐작컨대 아파트가 보급되면서였던 것 같다.

한국 학생들에게서는 아무래도 조선시대 선비 문화를 떠올리게 된다. 바닥이 따뜻한 사랑방에 모여 긴 담뱃대를 물고 이야기꽃으로 세월을 보내는 선비들 말이다. 아랫도리가 썩어날 정도로 들어앉아 주야로 공맹(孔孟)을 외웠다. 비록 문과 급제하여 벼슬을 못했다 해도 그것은 모두 운수소관.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은 전적으로 조선시대 유교 문화의 영향이다. 요샛말로 화이트칼라가 되기 위한 이 선비 문화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 실업자는 늘어만 가는데도 공장엔 일할 사람이 없다. 배운 대로 모두 다 깨끗한 사무실 책상에서 일하고 싶고, 또 편한 만큼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집에서 청소며 설거지, 심부름 한번 안 해보고, 오직 책상 앞에 앉아 밤늦도록 공부만 하며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서 자랐다. 그러다 보니 행동력(실천력)이 떨어져 매사를 입으로 해결하려 든다.

교육의 목표를 우리는 지(智), 덕(德), 체(體)를 기르는 데 두고 있지만, 현실은 아무래도 이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겨우 지(智)만은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것도 덕(德)이 빠진 지육(知育)이 되다 보니 이기적이고 약삭빠른 잔꾀만 가르치는 것 같다. 그리고 체(體)는 체력장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체육 시간이 고작인데, 요즘은 그나마 그것도 군사 정권 냄새가 나는지 아예 없애 버렸다.

체육 시간은 있으나마나, 다른 입시 과목으로 대체되기 일쑤다. 그런데 이 체육의 목적을 건강한 신체 발육을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가 남긴 ´건전한 신체에 깃든 건강한 정신과 용감한 가슴´이란 말에 그다지 실감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뭐 그 정도는 다 안다고?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현실이 허락치 않아서 잘못인 줄 알면서도 주야로 입시 공부를 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그건 교육자로서 직무 유기이며, 그 직무를 다하지 못할 바에는 하루빨리 교단에서 내려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따지자면 대한민국에 제자리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할 테지만 그 또한 더 비겁한 핑계일 뿐이다. 어쨌거나 이런 일은 모두가 체육(體育)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리라 짐작된다.

체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건전한 신체, 건강한 정신´ 즉 행동력(실천력)의 함양에 있다. 행동철학을 가르치는 수단인 것이다. 동양식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무(武)의 철학, 즉 상무숭덕(尙武崇德)의 정신을 배양하는 것이다. 배운 지식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습관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지(智)와 체(體)를 길러서 덕(德)을 쌓는다고 하는데, 이 덕(德)이니 도덕(道德)이니 하는 것은 행위를 통해 결과로 나타난 것을 가리킨다. 도덕 시험에 만점을 받았다 해서 그 사람을 도덕적인 사람, 도덕성이 높은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행동으로 옮겼느냐 못 옮겼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예법을 잘 안다고 해서 예의바른 사람이 아니라, 예(禮)가 몸에 밴 사람을 예의바른 사람이라 하듯이. 언행일치(言行一致), 지행합일(知行合一), 문무겸전(文武兼全)하지 못한 ´똑똑한´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을 우리는 매일같이 보고 있지 않은가.

요즈음 새로이 지은 학교에 가보면 시설들이 너무 좋고 편리하기 이를 데 없다. 심지어 교실마다 화장실이 설비되어 있는 초등학교도 생겼다고 한다. 글쎄, 나 같으면 옛날처럼 운동장 건너편 끄트머리에 만들어 놓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는 시간에 그곳까지 뛰어갔다 오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면 교실에서 밀린 숙제를 하거나 엎드려 자거나 수다 떨지 못하게 모조리 교실 밖으로 내쫓아 강제로라도 몸을 풀게 하고 난 뒤 교실에 들여보내야 한다. 불편함과 부족함의 교육도 조금은 시켰으면 한다.

부모의 마음이야 아끼는 정(情) 때문에 자기 자식이 나중에 좋은 직장에서 남보다 편히, 남보다 잘살게 되기를 바라는 욕심을 가지는 것쯤 이해해 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자식에게야 물론 좋은 부모는 될 수 있을지언정 무조건 훌륭한 부모라 할 수는 없겠다. 그렇다고 교육자들까지 내 제자 운운해서는 곤란하다. 먼저 사회가 필요로 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며, 사회를 위해 힘든 일 험한 일 가리지 않는 적극적인 인재(그냥 평범한 시민이라 해도) 양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좋은 대학 합격해서 저 잘살고 출세하는 일은 그 다음의 문제가 아닌가. 성적이나 재주가 뛰어나고 안 뛰어나고를 따지기에 앞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 학교의 첫째 의무라 생각된다. 그냥 버리는 쉬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개의 유럽 학교들도 쉬는 시간이면 모든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내쫒는다

습관이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한국인들은 자식의 이름에 문(文)자나 영(榮)자 넣기를 좋아하고, 일본인들은 무(武)자와 웅(雄)자를 선호한다. 부모의 바람이 서로 다른 까닭이리라. 몸은 부실하고 정신은 나약한데 영화(榮華)를 바란들 그게 온전히 제것이 되겠는가.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도 입식 생활을 하였는데, 유독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모두가 좌식 생활을 하게 된다. 침대나 걸상이 없어지고, 온돌방 앉은뱅이 생활이 정착된 것이다. 왜 그렇게 변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마도 과거 시험을 위해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글만 읽어야 하는 선비 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책도 읽고 밥도 먹고, 아무튼 모든 것을 방 안에서 다 해결하였다. 심지어 방 윗목에 요강 단지를 두어 해가 지면 오줌을 누러 갈 필요조차 없었다. 학자들은 이 온돌문화의 효율성과 과학성이 우리 민족의 지적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열을 내어 자랑한다. 그야 어련할까마는 한편으로 이 온돌문화가 유교문화와 결합하면서 한민족의 진취성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 거든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침대와 소파는 자기 전에는 신발을 벗지 않는 입식 문화권에서나 소용되는 가구이다. 언제든지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지만 좌식 온돌에서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한다. 방 안으로 들고 나가는 것이 불편하다. 온돌이 전래되어 온 북방에서도 좌식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온돌 방식 자체는 분명 우리 민족의 지혜로운 에너지 사용법이라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사람의 실천력(행동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고 하지 않던가. 한번 따끈따끈한 온돌 아랫목에 엉덩이를 붙이면 여간해서 일어나기 싫은 법이다. 그러다 보니 말만 많아지게 되고, 모든 일을 턱짓으로 시켜먹으려 든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면 내일로 미룬다. 그러면서도 앉아서 천리를 내다본다며 세상일에 온갖 간섭이다. 수다를 떨다 보면 안할 말까지 내뱉게 된다. 변화를 싫어하고, 있는 그대로에 안주하려 든다.

학자연 선비연하면서 자신의 게으름을 가린다. 열강의 수많은 함대들이 문을 열라고 대포를 쏘아대도 누구 하나 내다보지 않는다. 구들장 꺼지기 전에는 절대 엉덩이를 뗄 수 없다. 그런데 이 온돌에 침대와 소파가 들어온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그만 찰떡궁합이 되고 말았다. 온돌 위에 소파와 침대라? 서양 사람들이 희한하게 여기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수백 년 동안 아랫목에 누룽지처럼 눌어붙어 있던 엉덩이가 간신히 떨어지긴 했다. 사랑방 수다가 다방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입식 문화가 동적인 무(武)의 문화라면, 좌식의 온돌 문화는 정적인 문(文)의 문화라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온돌에 소파, 침대 들여놓았다고 해서 문무겸전 문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무실이나 다방의 푹신한 소파에 앉으면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죽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소파가 싫다. 지금의 온돌 방식도 싫다. 그런데 엉덩이와 등짝이 말을 잘 안 듣는다.

내 안에 게으른 무엇이 하나 더 들어앉아 있는 모양이다. 어릴 적부터 함께 붙어 다니던 것이라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일찌감치 회사의 소파를 내다버렸다. 그리고 사무실 소파에 둘러앉아 바둑이나 화투를 하는 거래처와는 곧바로 거래를 끊어 버린다.

재미있는 일은, 원래 육물(六物: 꽹과리, 태평소, 소고, 북, 장구, 징)을 가지고 대지를 힘차게 밟고 천지를 경동시키며 신나게 놀던 풍물놀이마저 사물만 가지고 노는 앉은반 테크노뮤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민중 음악이 드디어 거문고처럼 양반 음악으로 승격(?)되어 마당에서 대청으로 올라간 것이다.

게다가 한창 밖에서 뛰어놀아야 할 청소년들은 앉아서 싸우는 인터넷게임만 좋아한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전쟁도 방 안에 앉아서 치러야 할 판이다. 스포츠 경기도 직접 익히면서 즐기기보다 구경만 하고 훈수만 들려고 한다. 너희들은 열심히 치고받고 싸워라, 난 앉아서 눈으로 즐길 테니 하는 심사다. 시장자본주의가 체육(體育)마저 체희(體戱)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1990년대 이후, 기업을 경영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대학을 나온 신입사원들에 대한 실망감이다. 딴에는 고르고 골라 채용했는데도 깜박 속는다는 것이다. 말을 시켜 보면 다 알아듣는 것 같은데, 막상 일을 시키면 뭐 하나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어, 그때마다 또 속았구나 하고 혀를 내두른단다.

장마철 수박 고르기보다 더 힘들다. 그러다 보니 예외없이 극기 훈련이다 뭐다 해서 한 1년 정도 교육을 시켜야 겨우 오줌똥 가릴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자연히 대학에다 대고 불량품 만들어 내보낸다며 성토를 해댄다. 그게 어디 대학만의 잘못인가. 이 답답하고 굼뜬 ´온돌군자´들은 우리의 글선비 문화가 만들어 낸 것이다. 이들을 밖으로 내쫓아 달리게 해야 한다.

이밖에도 체육(體育)을 신체 발육에 필요한 단백질 혹은 비타민이 많이 포함된, 교육의 보조 식품 정도로밖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희한한 현상은 수도 없이 많다. 모두 생각 없이 받아들인 서양 체육을 그저 동작만 따라 하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체육의 정신, 체육의 철학이 뭔지도 몰랐다는 말이다. 그러니 체육이란 지루하고 재미없는 단순 노동 같을 수밖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체덕(體德)은 곧 무덕(武德)에서 나온다. 먼저 무(武)의 정신을 헤아려 볼 일이다.

요즘 필자의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동문학당´에서는 강좌를 시작하기 전후, 그리고 중간 휴식시간에 옛 선비 혹은 스님들이 공부나 참선 전에 행하던 몸풀기 도인체조를 가르치고 있다. 조선시대 북창(北窓) 선생이 남긴 것으로 앉아서 혹은 제자리에 서서 하는데 다들 신기해하고 효과도 만점이다. 해서 겨울에는 교사들에게 전수해줄 작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어찌보면 하찮은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개개인의 건강한 습관도 천연자원 못지 않은 중요한 국가적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그게 교육이라 생각한다.

[신성대 경기 데일리안 논설위원]


민기식   10-09-25 12:13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학생들 체력을 생각하면 예전의 체력장을 부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강제적인 조건이라도 있어야 몸을 움직이지, 지금으로서는 정말 막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