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병장 무예와 개인 무예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8-11-14 20:53     조회 : 5633    

고대 무예의 여러 가지 특징을 논하자면, 먼저 군사 무예냐 일반 무예냐에 따라 약간씩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군사 무예, 즉 병장 무예는 적의 살상에 중점을 두는 반면, 일반 무예는 그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에 우선을 둔다. 또한 군사 무예는 조직적인 집단 무예이지만, 일반 무예는 개인 무예로서 독립적이다. 이에 따라 같은 기예라 하더라도 그 운용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전쟁에서 병졸이란 무기, 말, 보급품 등과 함께 언제나 소모품일 수밖에 없었다. 양 진영이 싸워 서로를 살상한 결과 많이 살아남아 있는 쪽이 이기는 것이다. 똑같은 조건이라면 군사가 수적으로 많은 쪽이 당연히 이긴다. 상대가 5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왔을 때, 이쪽에서 10만을 동원해 일대일로 서로 죽여서 군사 5만 명이 남았다면 이쪽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적으로 열세여서 전쟁을 피하거나 미리 항복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온갖 무예와 기상천외한 병법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전력 면에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이겨야 하니까.

군사 무예는 우선 수많은 병사들을 통일되게 훈련시켜야 하므로 기법이 비교적 단순하고 힘이 있어야 한다. 또한 집단적으로 전투에 임하기 때문에 무예와 진법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병졸 모두를 하나같이 단숨에 뛰어난 무예인으로 키울 수는 없다. 그래서 최소한의 꼭 필요한 실전 기예만을 가려 뽑아 반복해서 훈련시킨다.

따라서 일단 적보다 먼저 찌르거나 베고 볼 일이다. 본인이 살고 죽고는 그 다음 문제이다. 따라서 전투에 임하여 상대편 한 명을 죽이고 자기도 죽으면 그 병사는 자기 몫을 다한 것이다. 둘을 죽이고 자기가 죽으면 공을 세운 것이다. 그래서 병장 무예는 방어 동작보다는 공격 동작이 많다. 병졸간의 간격을 최소한으로 좁혀서 열을 지어 신호에 따라 앞만 보고 들고나야 한다. 앞을 보고 움직이는 동작이 많고, 뒤로 돌아서는 동작은 가능한 한 없앤다. 물러설 때에도 뒷걸음으로 물러서야지 등을 돌리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

반면에 개인 무예는 상대를 죽이기에 앞서 먼저 자기부터 지켜야 하다 보니 무예 동작이나 수련 범위가 다양하여 화려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완력이나 과격한 기술을 습득하기보다 멀리 내다보며 건신과 양생까지도 염두에 두어 수련한다. 전쟁이 있건 없건, 자신이 군인이든 평민이든 평생을 수련하여 무공을 계속 상승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도 매우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결코 소모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로부터 명문가의 무예를 상승 무예로 높이 받들어 일반 혹은 병장 무예와 크게 구별하였다.

본질적으로 동양 3국의 무예가 병장 무예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검(刀)으로 대표되는 일본 무술은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이웃 성(省)과 전쟁을 치르면서 전통적으로 병장 무예로서의 특징이 매우 강하고, 중국 무예는 수많은 무예 문파만큼이나 다양한 개인 기예가 크게 발전하여 화려할 만큼 섬세하고 복잡하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남아있는 대부분의 중국무예는 국가의 병장무예가 아닌 민간무예이기 때문이다.

흔히 검도(劍道)를 통해 일본 무도를 접한 이들이 그들의 강인함과 처절함을 나타내기 위해 "내 팔을 하나 내주고, 상대의 심장을 찌른다"라는 말을 자주 인용하는데, 이 말은 전형적인 군사 무예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병졸은 곧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 무예에서는 절대 가당치 않은 말이다. 설령 상대를 죽일 수 있더라도 그로 인해 내 손가락 한 마디라도 잘릴 것 같으면 결코 상대를 찌르지 않는다.

상대의 목숨보다 내 손가락 하나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랬다가는 열 번 싸우면 손가락 열 개가 다 온전치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다시 칼을 돌려서 완벽한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인 무예는 화려할 정도로 정밀해지는 것이다. 특히 무예를 자기 수양의 방편으로 삼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지역적 특색에 따라서 같은 기예라도 그 운용 면에서 달라질 수가 있다. 춥고 거친 북방 지역에선 단순하면서도 힘 있게 하는 경향이 있고, 더운 남방에선 느리고 화려한 동작을 좋아하게 된다. 또 전쟁 중 성이나 말 위의 적을 공격할 때나 대규모 부대끼리 접전할 때에는 맨 앞에 장창․죽장창․낭선 등 긴 병장기를 세우는데, 이같이 길이가 길고 무거운 병기들을 다루는 데 힘이 들기 때문에 기예들이 단순한 동작들로 짜여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군사용 병기들은 대체로 길이가 긴 반면에 개인용 병기들은 본인의 신체적 조건과 숙련도에 따라 점점 짧아지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오늘날 한, 중, 일의 무예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순하고 엄숙주의로 흐르는 일본 무예, 화려한 기예를 자랑하는 중국 무술에 비해, 한국 무예 ´십팔기´는 매우 실질적이고 힘이 있으며 엄밀하다고 할 수 있다. 십팔기는 세 나라의 군사들이 한반도에서 한꺼번에 회동하여 대규모의 전쟁을 치른 직후 그 경험을 토대로 탄생하였기 때문에, 동양3국 무예의 장단점을 연구하여 적들을 효과적으로 대적키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개인 무예는 말할 것도 없지만 병장 무예라 하더라도 병졸이 아닌 상급 무장인 경우에는 온갖 무예에 정통하여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칼을 들었다고 해서 상대가 반드시 칼을 들고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다 유리한 병장기를 들고 나오려 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칼이 아닌 다른 병장기로 싸워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따라서 평소에 이런저런 병장기를 다루어 봐야 효과적으로 대적할 수가 있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원보대로의 십팔기는 모두 군사훈련용 기예였다. 때문에 <예도> <당파> <본국검> 등 몇 종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예들은 사실 그다지 복잡하거나 수준을 높게 짜놓지 않았다. 왜냐하면 집단으로 훈련시켜야 했고 대부분의 병장기가 크고 길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처음 십팔기군(十八技軍)으로서 원보를 충분히 익히고 난 다음, 능기군(能技軍)으로 불리게 될 즈음이면 그 기예를 보다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조선시대 왕의 최측근 호위부대였던 무예청 군사들은 십팔기 전 종목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본국검과 월도를 주특기로 잘 다뤘었다. 그들은 훈련도감 안에서도 특별히 십팔기에 능한 부대였던 별기군(別技軍)에서 가려 뽑았는데, 무예별감(武藝別監 또는 武監)으로 불리었으며 항상 홍철릭에 황초립을 쓰고서 왕을 근접 호위했었다. 그러니까 이들이 조선시대 십팔기 최고수들인 셈이다.

게다가 십팔기의 각 기예들은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전투도 치르지만 집단적인 군사 무예이기 때문에 원앙진(鴛鴦陣. 낭선, 등패, 장창, 당파를 지닌 병사들이 조를 이루어 서로 도와가며 전투를 치르는 진법) 등의 진을 이루면 각 무기의 단점들을 서로 보완해 주어 그 위력이 배가하게 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느 한 병장기에 자신이 있다 해도 상대방이 어떤 무기를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의 십팔기 시연을 보고서 병장기가 《무예도보통지》에 정해진 것보다 왜 크기가 다르냐? 모양이 똑같지 않느냐? 왜 원보대로 하지 않느냐? 원보에도 없는 교전을 왜 하느냐? 등등 따지는 것은 그러한 무예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상대가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순서대로 공격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기본은 충실히 익히되, 숙련되면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병장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옛 무기들과 갑옷 등을 살펴보면 똑같이 생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만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만든 이에 따라서 그 모양이 들쭉날쭉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지금 박물관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무기들은 일반 졸병들의 실전 무기가 아니라 장군들의 의장품이거나 임금의 하사품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장식이 화려하고 크기도 좀 과장되게 만들어졌었다. 실제 병졸들이 사용하던 무기들은 그저 볼품없는 막칼 정도였다.

오늘날에 무예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의 신체 조건과 무예 실력, 그리고 그 용도와 수련 목적에 따라 적당히 잘 골라 사용하면 될 것이다. 옛것을 고집해서 무리하게 무겁고 큰 것만을 고집하다간 자칫 몸을 상할 수도 있다. 현대의 무예인들은 건강코자 하는 것이지, 옛날처럼 전쟁의 소모품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성대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