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전승이냐? 복원이냐?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8-11-14 20:52     조회 : 5289    

문화란 과거와 현재 모두에 있어 우리가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개념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정의들은 계속 발전되어 가고 있고, 또 세련되어 가고 있다. 무예 또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작동해왔는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개념 중의 하나이다.

무예의 목적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상대(적)를 살상케 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보다 나은 기술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속성을 지닌다. 현대의 최고 과학기술이 먼저 국방에 소용되듯 전통무예 역시 고대에는 최고의 과학이었다. 따라서 무예정신은 곧 ‘과학 하는 정신’이어야 했다.

때문에 전통적으로 무예계는 남의 기예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여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비록 적군의 것이라 해도 그 중 좋은 점이 있으면 제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정통성만 고집하여 오직 현재의 기술에만 만족한다면 그는 반드시 머지않은 장래에 보다 우수한 기술에 제압당해 밀려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죽은 무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무예에서 떨어져 나온 체육(스포츠, 혹은 놀이)이라면 다른 기예를 받아들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배타적인 성질을 지니게 되어 정해진 룰에 따라 단순하게 정해진 기술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유지하려 애쓰게 된다. 단지 보다 많은 애호가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운영의 묘만 살리면 되는 것이다. 가령 축구가 비슷한 공을 다루는 배구나 농구에서 받아들일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전통적인 동양의 무예에는 누천년 동안 축적된 무예에 대한 경험적 이론들이 무수히 많다. 음양(陰陽), 표리(表裏), 허실(虛實), 강유(剛柔), 종횡(縱橫), 내외(內外), 입원(立圓), 장단(長短), 기락(起落), 쾌만(快慢), 난나(攔拿), 소말(消抹), 삼절론(三節論), 오법(五法), 경론(徑論)… 등의 수많은 원리들이 전해온다. 모두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단련과 실전 경험에서 추출된 지혜들이다.

이런 것들은 누대를 이어가는 구전심수가 아니면 전승될 수도 없을뿐더러 어느 한 개인이 일생동안 독자적으로 터득하기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또한 그 바탕 위에 당대에 스스로 익히면서 체득한 지혜가 있을진대, 이러한 것들이 계속 누적되면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 정신까지도. 현대 체육계에서도 이런 이론들을 가져간다면 더없이 유용할 것이다.

그리고 예로부터 전통무가(혹은 도가)에서는 반드시 무예만을 가르치지 않았다. 무예수련의 목적이 가장 먼저 내 몸을 강건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종 양생법과 전통의학 등 인접 학문을 함께 공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때로는 그 반대로 무예를 통해 정제된 건신법이 글 읽는 선비는 물론 도가(道家)나 불가(佛家), 한의학계에 전해지기도 했었다. 조선시대 무구옹 이창정 선생의 <수양총서>에 나오는 양생법, 퇴계 선생의 <활인심방>, 북창 선생의 <용호비결>, <동의보감>에 실려 있는 각종 양생술 등을 통해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따라서 태권도처럼 이 땅에서 누천년을 독자적으로 전해져 왔다고 하는 주장은 문화적 상식으로 전혀 가당치가 않다. 전통무예라면 비록 하찮은 것이라 해도 《무예도보통지》에 실려 있는 십팔기의 권법이나 그 외의 수많은 건신법에서 많든 적든 영향을 받았어야 했다. 이런 경험에서 나온 축적된 지혜를 받아들인 적이 없고 호신술이나 경기체육으로 흐르다보니, 오직 근(筋)만을 단련하고 골(骨)과 막(膜)을 단련하는 데에는 소홀해 왔기 때문에 일찍 몸이 쇠하게 되고 만다. 결국 내용적으로는 전혀 전통적인 것을 흡수하지 못했으면서 오히려 그 연원만을 전통적인 것으로 꾸미는 바람에 웃음거리를 자초한 셈이다.

게다가 태권도나 택견이 무예로서의 권법이었다면 웬만한 병장기는 다룰 수 있어야 했다. 사실 중국의 어떤 무가(武家)라 해도 권법만 익히고 병장기는 다루지 못한다는 곳은 없다. 당연히 권법만 가지고는 어떤 문중도 스스로 무가(武家)라 칭하지 않는다. 태권도가 일본 오카나와에서 시작된 호신술 카라데(空手道)가 그 뿌리였고, 택견이 구한말의 민속놀이였기 때문에 이런 기예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또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았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근자에 들어 십팔기의 재등장 이후 자칭 한국 전래의 무예, 혹은 전통 건신술이라 주장하는 건강상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모두 그 연원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십팔기는 조선시대 임란 병란을 겪은 왕조가 2백 년 동안 이 땅의 모든 무예를 발굴하여 18가지 종합병장무예로 정리해놓은 조선의 국기였었다. 당연히 병역의무를 지닌 대부분의 백성들이 이를 익혔을 터이다. 따라서 설사 민간에서 흘러온 어떤 무예가 있다하더라도 십팔기와의 상호연관성 없이 독자적으로 전승되어 왔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과학, 아니 모든 학문이 그렇듯, 보다 우수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받아들이는 것이 무예의 원칙이다. 이는 비단 기예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보다 우수한 무기나 전략전술도 마찬가지이다. 십팔기를 만든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순전히 조선의 것만으로 십팔기를 만들지 않았다. 중국은 물론 적국이었던 일본의 무예까지 두루 찾아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전래의 것을 내던지고 맹목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없던 남의 것은 우리 실정에 맞게 체계화시켜 조선의 무예로 거듭나게 만들고, 전래로 내려오던 것은 보다 정밀하게 다듬어낸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통적인 무예 명가에는 수백 년 동안의 경험적 지혜가 축적되어 전해지는데, 무엇을 익히든 무예인이라면 당연히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옹색할 이유가 없다. 비록 고대에는 이러한 기예가 한 개인의 생명은 물론 한 국가의 흥망까지도 결정지울 수 있는 중요한 것이어서 누가 원한다고 언제든지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현대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려면 먼저 옹졸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TV의 <진품명품 쇼>라는 프로가 있다. 여기에 출품되는 것들 중에는 진품이 대부분이지만 가짜도 있다. 그것을 가리고 가격을 매기는 재미로 만든 프로이다. 대개 진품일 경우에는 가격이 엄청나지만 복제품일 경우 가격은 형편없이 매겨진다. 설사 진품보다 더 잘 만들었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복제품임이 확실한 물건에는 그만한 가격, 즉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공예품으로서의 가격을 매겨주지만, 가짜, 즉 위작으로서 옛것인양 의도적으로 만든 것은 가격이 없다. 0원이다. 가짜는 그 제작비용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반드시 가려져 없어져야 할 물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술이 발달되어 옛것보다 더 잘 만들고, 더 잘 할 수도 있지만 굳이 옛 것과 전승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왜냐하면 옛 것에는 그 시대만이 가지고 있는 멋과 지혜의 역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계승, 거기에는 또한 자긍심이 있다. 그것은 곧 그 민족의 정신이자 주체성의 근간이다.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해범 선생에 의해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던 조선의 국기 십팔기가 이 땅에 다시 전승 재현되어 차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하자, 수년 전부터 난데없이 이를 흉내 내는 무예단체들이 생겨나 자신들도 십팔기를 전승했다거나 복원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해범 선생이 책을 펴내고 실기를 공개하기 전까지는 그 어느 누구도 십팔기를 우리 것이란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중국무술로 치부하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너도나도 십팔기를 한다며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차마 십팔기란 명칭을 사용하기가 부끄러워 엉뚱한 이름을 들고나와 역사를 임의대로 조작하거나 억지로 해석하며 사람들을 우롱하고 있어, 간신히 주체무예로서 제자리 잡아가는 십팔기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게다가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닌 흉내로 익힌 것을 다시 남에게 가르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을 골병들게 하고 있어 안쓰럽기 그지없다. 앞으로는 십팔기의 구체적인 기예를 예로 들어 전승과 복원, 그리고 가짜의 차이를 설명해 나가겠다.

<진품명품>에서와 같이 무예도 진짜와 복제(혹은 가짜) 사이에는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전승을 그토록 중시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문무(文武)를 대별해온 무예문화를 언제까지 저자거리 왈패들의 주먹다짐 정도로 여겨 백안시 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문화적 손실이라 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전통무예의 전승과 복원을 명확히 하고, 과학, 역사,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소개되어 전통문화로서의 십팔기의 위치를 바로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신성대 경기 데일리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