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십팔기협회 :::


   
  성(誠), 신(信), 의(意)
  글쓴이 : 신성대     날짜 : 08-11-14 20:51     조회 : 5572    

전통적으로 흔히 우리는 ´수양한다´는 것을 ´도(道)를 닦는다´라고 해왔다. 종교적이든, 건신(建身)이든, 학문이든, 아니면 어떤 기술을 익히든 한길을 쉼없이 가는 것을 두고서 이르는 말이다. 그 중 가장 일반적인 ´도닦음´은 예나 지금이나 천도(天道), 즉 하늘의 이치를 깨우치는 것을 말한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은 이미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뿐만이 아니라 신(神)의 역할까지 해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고대 조상들이 현대인들보다도 우수한 지혜를 가졌을 것으로 미신하여 옛 무덤을 뒤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하여간 끊임없이 탐구하고 새로운 무엇을 찾는 인간의 지적 호기심은 끝이 없다. 그렇지만 어떤 것을 잡고 수행을 하든지간에 그 목적은 기예의 깊이를 더하고, 홀로 자신을 바르게 하여(獨善其身) 덕(德)의 폭을 넓히는 것일 게다. 도량(度量 혹은 道場), 즉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것 말이다.

흔히 우리는 도덕(道德)이란 말을 많이 쓴다. 그러니까 글자 그대로 말하자면, 덕(德)을 닦는(쌓는) 길이라는 말이다. 또한 덕을 존중하고 따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동안 수양을 한다는 많은 사람들은 이 덕(德)을 닦는 일에는 소홀하면서, 술(術)을 닦는 것을 ´도닦음´의 목적으로 했던 듯하다. 도인(道人)이란 도술(道術)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덕(德)을 닦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덕(德)도 모르면서 도(道)를 닦겠다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사주(四柱), 관상(觀相), 풍수(風水), 역점(易占) 등 이런저런 방술들을 주워 모으는 것을 무슨 대단한 도(道) 닦음으로 착각하고 있다. 모두 벼슬 못한 옛 선비들의 군것질용 잡기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리고 속담에 ´하던 짓도 멍석 깔아 놓으면 안 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뭐든 멍석을 깔아 주지 않으면 절대 안한다. 그래서 온갖 선원, 기도원, 건강원 등이 생겨나 성업 중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모두들 한결같이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똑같은 방법으로 집단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수행이란 단독행(單獨行)이어야 할 텐데도 말이다. 석가모니가 언제 단체로 교육받은 적도 없고, 무리지어 수행한 일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현대인들은 인스턴트식 집단 수행을 선호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요즈음은 그렇게라도 수행하겠다는 사람도 많고, 또 득도(得道)를 했다는 도인, 도사들도 많은 걸 보니 도(道) 장사가 제법 잘 되어가는 모양이다. 겨우 몇 가지 방술을 익혀서는 순 조선옷 걸치고, 수염 기르고, 죽장 들고 도(道)를 팔러 다니는 글자 그대로 길거리 도사(道士)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산골짜기는 뱀 똬리 틀듯 앉아 안개구름을 피워 올리는 그럴 듯한 도인들이 다 차지해 버려 신장개업하기도 쉽지 않아졌다.

글쎄, 글쓴이가 아는 수양하는 이들 가운데 아직까지 수양한다는 말조차 입에 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아마 그분들 아직 도(道)를 못 이룬 모양이다.

해범 선생께서는 항시 무예를 자기 수양의 방편으로 삼으라고 하였다. 무예 수련을 통해 몸을 강하게 하고, 덕성(德性)을 기를 것을 끊임없이 주문하였다. 단순히 옛 기예를 익히는 것이 이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삶 자체가 수행이어야지, 꼭 어디에 가서 별난 재주를 익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보내면서도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유지하면서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무예를 하건, 깨달음을 추구하건 먼저 건신(建身)과 양생(養生)은 기본이다. 달마가 《역근경(易筋經)》을 남긴 것도 그 때문이다. 앉아서 오랫동안 정진하기 위해선 먼저 몇 가지 기본적인 도인법(導引法, 원시요가)을 반드시 익혀야 했다. 요즘은 불가에서조차 그 법을 잃어버렸다. 그 바람에 참선중 졸음을 쫓는다고 죽비를 치는 황당한 일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겨우 화두를 잡아나가는 데 죽비 소리에 깜짝 놀라 다 도망가 버린다. 참선하는 데 있어서 지극히 금해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아랫도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저려 죽을 지경인데도 꾹 참고 용맹정진하다 보니 두 다리가 다 썩어 문드러진다. 제대로 수행이 될 턱이 없다. 그래서 큰스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신부, 목사들까지 건강 상태가 말이 아닌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니 다들 수행할 생각은 않고 그저 바깥으로만 나돌려고 한다. 정신만 중히 여기고 몸을 천히 여기는 데서 온 폐단이다.

또 시중에는 단(丹)이다, 선(仙)이다 하면서 건강 기공법(氣功法)을 팔고 있는 곳들이 수없이 많지만, 아직까지 도인(導引)과 인도(引導)를 구분할 줄 아는 이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동작에 따라 역근(易筋), 인도(引導), 도인(導引)을 구분해서 호흡해야 하는데도, 모조리 도인법으로 하고 있다.

처음 숨길도 제대로 열어 주지 않고 복식호흡을 한다고 아랫배만 볼록거리고 있다. 호흡법의 기본도 모르면서 남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오로칠상(五勞七傷)도 모르면서 수양한다고들 하는 판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모두들 어느 문중에서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양생법들을 주워모아 제 마음대로(수준대로) 해석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겨우 소화 기능 향상과 자기 최면,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 정도의 효과밖에 못 얻는 것이다. 심지어 남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고 단전호흡 수련 열심히 하던 모그룹 회장도 오히려 남보다 일찍 가고 말았다. 엉터리 호흡법으로 스스로 명(命)을 단축한 줄은 저승가서도 모를 것이다.

 

다행히 해범 선생께서는 십팔기뿐만 아니라 《권법요결》을 통해 문중의 비결서인 북창(北窓) 선생의 <용호비결(龍虎秘訣)>을 공개하였고, 또 아직은 공개하지 않은 ´오금수희법(五禽獸戱法)´을 비롯해 여러 가지 양생도인법은 물론, 더하여 수많은 도가의 한방약학까지 가르치고 있다.

《본국검》에 소개한 도인법인 ´내장(內壯), 외용(外勇)´은 무예인에게는 꼭 필요한 동작만을 선별해 놓은 것이다. 특히 ´외용´은 검법을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기본공 훈련법이다. 무예를 익히더라도 반드시 이러한 양생법들을 병행해서 수련할 것을 권하고 있다.

어느 날 선생님에게 수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을 여쭈었더니 ´성(誠), 신(信), 의(意)´를 꼽아 주었다. 다시 이 세 가지가 도가(道家) 문중에만 해당되는 것인가를 여쭈었더니 "그렇지 않다. 유가(儒家)든 불가(佛家)든 무가(武家)든 도가(道家)든, 심지어 글공부하는 선비라 해도 옛사람들은 이 셋을 중시하였다.

성(誠)이란 지극한 정성, 다른 삿된 잡생각이 들어 있지 않은, 바람이 없는 무념의 정성을 말한다. 신(信)은 두 마음이 아닌 것을 말한다. 마음 다르고, 말 다르고, 행동이 달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의(意)는 마음의 자리이다. 너그럽고 크게, 바른 뜻을 가지되 절대 옹졸하지 않아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사람됨의 기본이다"라고 하였다.

 신성대 (데일리안 경기 논설위원)